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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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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화요일 · PM 7:00 · 저녁말씀 | 김상래 목사 (7.21화)

저녁말씀 | 김상래 목사 (7.21화) - 주께서 가까우시니 관용하라

YouTube 자동 생성 자막을 문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명, 성경 구절 및 전문 용어에는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식사 잘하셨습니까? 예. 어, 여러분들에게 급 긴급한 광고를 하나 드립니다. 여기 등록실이 있는 그 건물이 그라포홀인데 그라포홀 뒤쪽에 주차한 차가 몇 대가 있어요? 어, 여기 나오죠. 여기 캘리포니아, 네바다, 오래에서 온 차 이렇게 아, 세대 그 외에도 한 대가 더 있는데요.요 차를 옮겨 달라고 부탁이 왔습니다. 학교에서 안 움직 안 옮기면 어 토행될 수 있다고 그래서 지금 많이 안 계셔서 예 아무튼 광고를 드리니까 혹시 주변에 아는 분 지인 차면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어 토행되는 그런 일이 없도록 예 이렇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이어서 이어서 계속 순서가 진행되겠습니다. 습니다.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물과 피를 다쏟으시었네.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 죄를 모두 지셨네. 너의 죄인하여 주님로 고난당하시고 나의 무지함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 이셨네. 아무 말도 없이 조런과 열 받으셨네. 나를 향한 사랑때문에 십자가로 향하시네.

너의 죄인하여 주님로 고난당하시고 나의 무지함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네. 아무 말도 없이 초롱과 멸시하셨네. 나를 향한 사랑문에 십자가로 향하시네.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물과 피를 다 쏟으시었네.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 죄를 모두 지셨네. 세상 죄를 모두 치셨네. 아멘. 얼마나 크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울고 해조차 비치리고 온이 비치네.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영원토로 군의 건물 흐르네. 나의 죄, 너희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 다 사하시 십자가 달리신 주 얼굴과 손과 아래 흐르는 그 귀한 피 걸고 더위에 피로 불게 적셨네. 빛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 영원토라 구원의 감물 그리네. 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영원토로 구원의 강물 흐르네 구원의 강물흐 자, [목을 가다듬음] 두 할렐루야 두 트워 할렐루야 주여 함께 할렐루야 아멘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주자 앞에서 택하시는 은혜를 다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마음을 열어라. 할렐루야. 아멘. 온 하늘을 열라. 할렐루야. 아멘. 인도자 되시며 친구가 되신 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 주 찬양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거룩한 집에서 주길리며 다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성도여 다 함께 할렐루야. 아멘. 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주자 앞에서 제가신 은혜를 다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주님의 사랑을 그거 할렐루야. 아멘. 고 전한 우리를 높이시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환호] [환호]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 이름을 송축하리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 이름을 송축하리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내가 영원히 주의 이름을 성축하리라. 주의 이름이 성축하리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 이름을 성축하리다.

주님 은혜로우시며 주는 자비하시며 너하기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신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 이름을 성축하리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 이름을 성축하리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돌아보니 짧은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로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 주인내라. 주인내라. 내 평생 사랑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다이 없는 사랑. 달려갈 길 모두 마친 후 주 얼굴 볼 때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로 말하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양집에 돌아가 아버지 예쁨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주인내라. 주의라 내 평생 사랑계 주 예라. 주의라는 사랑 주의 은혜라. 주의라 내 평생 사랑온기 주의라 주여라는 달려갈 길 모두 마친 후 주 얼굴 볼 때 나는 공여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로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비명] 로라.

[비명] 다 같이 일어나셔서 주제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이제 주님의 새생명 옛진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마음에 감각치리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다. 영생을 맛보며 주님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안에 감추인 새생명 어디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감사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성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님이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산천국 초복도 제것이 되었고 죄인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내 생명 어 평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십리로다. 영생을 맛보며 주님 살리라. 일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거룩하신 여호와 우리 아버지, 우리는 지금 찬양과 기도와 그리고 말씀으로 주께 드리오니 하늘 아버지 영광 받으시옵소서. 아멘. 내일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위하여 오늘 우리를이 거룩한 동산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동산에서 매일마다 시간마닥 생명 얻는 참된 회개의 은혜를 허락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시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이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김상래 목사님 위에 성령의 충만한 능력과 하늘의 지혜를 더하시어 듣는 우리 모두 변화되어 믿음 안에 하나되게 하옵소서. 아멘. 특별히 저희 모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품고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말을 고르게 하고 분을 다스리며 선한 일을 하며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도록 빛의 옷을 입혀 주시옵소서. 아멘. 각 가정과 교회에도 하늘의 평안과 성령의 크신 부흥이 임하도록 축복하소서. 저희를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우리 집사님 아주 간절하고 또 센스 있게 어제 말씀을 아주 압축해서 준비된 기도를 그렇게 드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평생 선생으로 살았기 때문에 또 학생들이 이렇게 그 어떤 강의 내용을 압축하고 이해하고 이런 모습을 보면 예뻐요. 아주 센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을 위한 오늘 그 두 번째 시간 오늘은 주께서 가까 오시니 관용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종말과 재림은 다릅니다. 종말은 약속이 없지만 재림은 약속이 있습니다. 종말은 끝을 바라보지만 재림은 시작을 바라봅니다. 종말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그 동기가 기본적으로 공포이지만은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소망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목적이 재난에서 살아남기이지만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가리쳐 종말론자들이라 그러고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가리쳐 재림 성도라고 부릅니다. 재림 성도들은 종말론자들이 아닙니다. 제 이름의 아름다운 소망을 종말론자들의 현대판 종말론자들인 프레퍼족의 수준으로 격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징조들의 이야기를 마치 늑대 나타났다는 어떤 소년의 이야기처럼 그저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포심 조장의 차원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그리워하는 주님과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이라도 더 비슷해지려고 준비하는 것. 그것이 재림 성도들의 근본 내용이고 동기가 되어야 하지요.

재림 성도들인 우리의 내일을 위한 오늘은 단지 재난에서 살아남으려는 프레포족들의 그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단지 재난을 피하기 위해 출애굽 공동체에 참여한 이들을 성경은 아습섭습 즉 어중이 떠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만나러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 바라기로 예수님하고 비슷해지려고 의식하고 노력하고 뭐 목사가 여러분하고 크게 다른 거 없어요. 똑같아요. 그렇지만 조금 더 알아차리죠. 아 내가 또 실수했네. 이렇게 하고 예수님하고 비슷해져야지. 목사가 뭐 실수가 없어서 여러분에게 이런 설교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저도 배고프면 화가 나요. 그러나 어제보다는 조금 더 주님하고 비슷해져야지 하고 예수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 바라보는 그 심정으로 기별을 전하죠. 오늘을 사는 예수 재림 성도들입니다. 신약에 언급된 인박한 재림에 대한 표현이 여섯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번 야영회가 끝난 다음에 여러분들이 설교 내용들 다 잊어버리셔도 어 김상래 목사가 신약 성경에 있는 재림이 가깝다 가깝다 가깝다라고 표현된 여섯 개 성경절에 관해 이야기했어. 신약 성경에 재림이 가깝다. 앵구스라고 하는 형용사.

앵조 가까이 왔다는 동사에 등등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루어진 그런 구절이 여섯 개가 있어. 아 성경에 그렇게 돼 있어. 가깝다라고 한 다음에 가까우면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아라고 말하고 있는 구절이 성경 자체에 있어. 그 재림이 가깝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이 구절들 놓고 계속 묵상하고 도전으로 삼고 기도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성경 말씀 속에 가까우면 이렇게 살으라는 말씀이 있으니까 어제 구원이 가까우니 빛의 옷 입으라 하는 말씀으로 로마서 13장 11절 14절의 본문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주께서 가까우시니 관용을 알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빌립보 4장 5절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 은퇴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만 5년 동안 어 그 우리 명예 교수로서 계속 강의를 하기 때문에 이제 그것마저도 이제 1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만나는데 신대원에서 뭐 20년 30년 한이 목사 학생들이 우리 대학원에 옵니다.에 에 그 그 그 형제들에게 제가 이렇게 그 성경 구약 추석 과목을 주로 많이 강의하는데 제가 시험 문제를 그렇게 냅니다. 어 얼마 전에는 오경 주석 시간이었는데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창세기 7장 1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노아를 들여보내시고 문을 닫으시니라. 뭐 그런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이 문장 한 성경절을 시험 문제로 내고이 구절을 가지고 용지 100장을 쓰시오. 이렇게 아 미안 열장을

쓰시오 하고 이렇게 용지 열장을 시험 문제 다 답안지로 성경 한 절을 가지고 열페이지를 채우라는 거지요. 기말고사 시험은 신명기 전체를 A4용지 반장으로 요약하시오. 예. 이렇게 그 시험 문제 두 개 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5분 안에 다 설명할 수 있는게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한 구절 가지고 1년 내내 설교할 수 있는게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오늘은 빌립보 4장 5절의 그 짧은 구절을 붙잡고 함께 그 속에 담겨 있는 여러 기별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읽지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이 4장 5절에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하는이 구절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든 대학교 4학년 때 명함 그 어 문서 전도하기 위해서 명함을 만들었는데 그 명함 위에다가 최초로 만든 제 인생 첫 명함에 너희 관용을 알게 하라.

이걸 제가 제 명함의 모토로 이렇게이 구절을 일부러 넣었던 제가 사랑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예.이 구절은 뭐 간단해요. 주께서 가까우시면 두 가지 해라. 1, 기뻐해라. 2. 관용해라.이 두 가지 준비하라는 거예요.이 다 끝났습니다. 설교.이 이게 이게이 이게 이게 이게 오늘 구절의 내용이에요. 첫째 기뻐하라. 여러분 아시는 대로 빌립보서는 기뻐하라는 책입니다. 기쁨이란 카라라고 하는이 헬라어가 1장 4절, 25절, 2장 4절, 29절, 4장 1절 등등의 기쁨이라는 명사가 나타나고 기뻐하라라고 하는 동사가 11장 18절, 2장 17절, 18절, 28절, 3장 1절, 4장 4절, 10절 등등이 빌립보의 기쁨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시는 대로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예요. 이름하여 옥중 서신입니다. 여러분 누가 감옥에 갇치면 면에 가서 감옥 밖에 사람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게 기본적인 인생 사회예요. 근데 지금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 보내면서 기뻐하라.이 지금 차원이 어떻게 된 거예요?이 이 삶의 차원 차원이이 다루잖아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요한계시록 21장 1절 4절 잘 알지요.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하면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고 그렇게 되면 그 세계가 다가오면 눈물이 다 씻겨지고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가 그렇게 바라보지요. 여러분, 그런데이 성경 제일 마지막 책인이 66 번째 책 요한계시록 끝에 나오는이 새하늘과 새 땅에 관한 묘사가 성경 66권을 다 압축해서 작은 성경이라고 불려지는 한 군의 성경 책이 있지요. 성경이 66권인 것처럼 전체 장수가 66장으로 되 있고 구약이 39권의 책인 것처럼 그 제1부가 39개 장으로 돼 있고 신약이 27권인 것처럼 제2부가 2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사야 특별히 그래서 이사야는 이사야 61장부터 66장은 이게 신약의 요한 계시록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이 내용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 61장부터 살펴보면 와우 요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묘사를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그가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곧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이 신랑 신부 이야기 요한계시록의 이야기가이 이사야 61장에 이미 나오면서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그러지요. 다시 이사야 65장에서는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원전 이야기가 여기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눈물을 씻쳐 준다 이렇게 표현했는데 이사야 65장은 뭐라고 묘사합니까?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그렇잖아요.이 이사야가 이야기하는 새하과 새 땅의 본질입니다. 새아과 새 땅은 어떤 곳이에요?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마지막 장인 66장 그야말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해당되지요. 그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66장 10절에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김 목사님 물 한 병 갖다 주십시오. 여기 네. 제가 어 뭐 평생 이제 성경 한 사람의 목회자로 또 성경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늘 성경을 가르치면서 이런저런 책을 봅니다만 제가 제가 생각해도 종전 퇴임 이후에 지금까지 읽었던 성경보다이 성경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습니다. 어 그 늘 성경 강좌가 지금도 여전히 계속 됩니다만 강좌를 하기 전에 근데 뭐 요한복음 3장을가 가르친다. 제가 우리 수업에 함께 참여하는 분들에게도 늘 고백적으로 이야기합니다만 제가 너무 저를 잘 아는 본문이지만은 정말 그 강의하기 전에에 그 본문을 적어도 20번은 읽는 거 같아요.

제가 그런 고백을 했더니 여기 제가 여기 오기 바로 직전에 제주도에서 연합 야영회를 또 이제 목금토 집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제가 이런 고백을 했더니 그분 그중에 한 분이 제게 손편지를 보냈어요. 교수님 성경을 요즘도 읽으시면서 20번 이상 읽으신다 그러는데 뭐 하러 뻔니하는 내용을 그렇게 읽으십니까? 그다음에 제가 평생 생각하지 못한 문장을 썼어요. 설교 임팩트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읽으십니까?이 이렇게 하시더라. 와, 난 뭐 상상도 못 해 본 이야기예요. 제가 정중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어, 지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어머니가 43세 돌아가셨으니까 지금에 저보다 거의 반밖에 안 되셨을 때 돌아가셨고 저희 아버지가 어, 저보다 지금에 저보다 더 젊으셨을 때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어머니 생각하고 아버지 생각하면 그때 어머니가 30대 후반에 나한테 해줬던 이야기 이제 이해가 되고 어느 순간 아버지가 나한테 그렇게 하셨던 말씀 이제 생각나면서 엄마가 그러셨구나. 아버지가 그러셨구나 하고 부모 심정이 세월지나 이제 이해되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의 심정이겠습니까?

성경은 아버지 이건 저의 저만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무슨 책인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의지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처리 드는만큼 그분의 심정이 이해되는 거지요. 아. [한숨] 아, 이렇구나. 그렇구나. 그런 걸 발견하고 있고 느끼고 나누는 건 참 행복해요, 여러분. 그래서 제가 최근에 성경을 이렇게 가르치다가 우리 재림교회 성경 주석 SDABC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레위기 3장에 있는 추가 설명을 제가 정년 퇴임하고 처음 봤습니다. 거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많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화목제 설명하는 중인데 신앙생활에서 행복한 것이 그들의 특권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일찍이 웃거나 심지어 미소를 지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성경에 예수께서 웃으셨다는 말이 없거든요.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이 머리를 비었다거나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웃었다는 기록이 없으니까 예수께서 웃지 않으셨으니까 우리도 웃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목욕은 왜 하냐 이거죠. 예수께서 목욕했다는 말이 성경에 없는데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의 짐을 그들의 어깨에 지려고 하며 휴양에 사용되는 시간은 모두 시간 낭비일뿐만 아니라 불경한 것임이 틀림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지만 행복한 자들은 아니다. 만약 진지함과 침착함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삶을 특징 지어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다. 맞다. 지금은 진지하게 살아야 된다. 다가오는 위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 다 맞다. 모든 경박함을 뒤로 하고 엄숙함이 모든 신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바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입니다. 크고 중대한 사건들이 인박해 있다. 어리석은 것들과 무의미한 것들을 위한 시간이 없다. 왕중 왕께서 문앞에 당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왕의 자녀이며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으며 따라서 행복하고 기뻐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제일 마지막 문장.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엄숙한 사건들의 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다음 뭐예요? 즐거워. 즐거워해야 한다. 아 저는이 마지막 말이 우리 본교 성경 주세 레위기 3장 화목자 설명 추가 설명 마지막이 문장이 너무 좋은 거예요. 솔직히 제가이 문장 읽은 다음에 또오르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예. 맨날 볼 끌어당기면서 웃으시는 목사님. 그때 박준영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나 저는 박준영 목사님 정말 부러워요. 예. 덜 웃으시면서 아 허리가 꺾어질만큼 웃으시면서 이야기하시고 정말 그리스도인 삶에서 죄림을 준비하는 삶이에요. 여러분 제가이 가르침을 배우고 난 다음에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에요. 아멘. 그래서이 땅에서 진지하다 못해. 우리 재림 교 재림 성도들이 진지해요. 근데 그 진지하다는 말이 ser리어스라고 하는 그 단어가 한국말로 번역하면 진지하다라는 단어와 심각하다는 단어로 다 번역될 수 있지요. 근데 우리 재림 성도들은 대부분 진지함을 너무 심각해요. 별 아멘. 어. 예. 특별히 재림 준비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요. 자꾸 다투려 그래요. 지적하려 그러고.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어요.이 고대교 2학인 때 처음 교회 나온 다음에 그때 사라 사라 호텔인가가 불어 가지고 동해 안에 배 한척이 300명 이상을 치는 배가 무너졌어요.

어 그런 심각한 때에 우리 성 안식일 오후에 제가 교회 갔다가 그 성도들이 그 장면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어 그들의 모습 속에 저래도 되나 하는 그런 모습이지요. 그다음 그 남의 재난을 보면서 아 이제 재림이 가까왔다. 아 정말 하늘 갈 때가 가까워왔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아이 슬퍼해야 할 때에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안식일에 와서는 얼굴들이 다 심각해요.이 제가 그때 혼란스러웠던게 남의 재난을 당해서 함께 울어야 할 때는 우리가 하늘 갈 때가 가까웠다고 웃고 있고 함께 기뻐해야 할 때는 심각해 있으면서 뭐 잘못 입고 왔나 뭐 했나이이 왜 이러고 있지? 그 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즐겁고 행복하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잖아요. 그러니까이 땅에서 심각하게 산 사람들은 하늘 가면 적응이 안 됩니다. 예. 하늘이 그렇게 말하고 했으니깐요. 신앙은 진지하지만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 이거 준비해야 합니다. 아멘. 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러분, 성경 보면 같은 사실을 전 위에 반복된 표현이 많습니다. 가장 비교적인 아주 좋은 예로 성경 창세기에 보면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렇게 노아를 설명하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욥을 설명하면서 또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여기 한 가지 사실을 지목하기 위해 반복이 되고 세삼중으로 반복될 때 그것은 뭔가면 각기 다른 개념이 아니고 한 가지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 반복 노아는 의인이야. 의인이 뭐지? 완전한 거야. 완전하게 뭐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야. 이제 그렇게 설명하는 거죠.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는게 뭐예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거예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게 뭐예요? 범사에 감사하는 거야. 이게 각기 다른 국면이 아니라 같은 국면을 다른 관점에서 강조해 주는 거지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너희를 향하신이라고 했는데이 향하신이라고 하는요 전치사가 헬라로 에이스라고 하는데요. 에이스란 단어는 우리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우리를 향하신하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런 뜻이 되잖아요. 근데 현대인의 성경이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오한 무슨 말이에요?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면 이게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그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면 그게 우리에게 행복이 된다라고

하는 의미인 거지요. 아 어떻게 항상 기뻐하지? 기도하면 돼.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지? 범사에 감사하면 돼. 범사에 감사하면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고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면 항상 기뻐하게 돼. 이제 그런 개념을 설명해 주고 있는 거지요.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나이가 들어서 우리 곁을 떠나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한 우리나라가 3면이 바았기 때문에 반은 섬이라 그래서 한 반도 페인슈라 그러잖아요. 한 반도. 그래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대학교 3학년, 2학년 때 이게 열을 아주 특별 추가를 내서 서해 안으로 내려가서 해너미체화대에서 예, 찍은 사진입니다. 그다음에 저 남쪽으로 내려가서 저 호남 쪽에 남 땅 땅끝 마을에서 배 타고 들어가면 망끝 마을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보기를 또 고산 윤선도의 어부 사시사인데 거기 가서 찍은 사진이고 다시 나와서 영남 쪽으로 와서 유순신 장군의 한산섬에 가서 들어가며 찍은 사진이고 부산에 가서 태종대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동해안으로 올라오면서 울진 대개를 바닷가에 새겨 있는 데를 찌 갑자기이 사진 보여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막 그렇게 하고 동해안으로 올라오는데 3척쯤 지나는데 제 7일 하는 소리가 뭐 이게 지어하는데 제 7일 하는 글자가 보여요. 그래서 멈춰서 다시 들어가 봤더니 우리 교회예요. 교회에 제치를 안식일 써 있으니까 우리는 지나가다가도 그런 글자가 눈에 잡히잖아요. 들어갔더니 거기 내외분이서 계신데 아주 반갑게 우리를 맞아요. 그까 우리 학부형이에요. 아 반갑다고 하룻밤 자고 주무시고 가라고 내라 집에 바다에 나가서 뭐 이렇게 그물 건지는 것도 다 보시라고 저도 막 같이 신나서 예 장모님 그렇게 하죠. 이렇게 하는데 아이들 보고 돌아 옆을 돌아다 보니까 두 녀석 다 입이 이만큼 나왔어요. 어 어른들 반가우면 애들은 재미 없잖아요. 자고 가자. 하룻밤만 자고 가자. 다음에 와요. 다음에. 아, 몇 번 설득해도 있는 척들이 말을 안 들어요. 저 속이상했습니다. 할 수 없이 밤늦게 한 10시 반쯤 출발을 했습니다. 저도 화가 나 가지고 일부러 차를 천천히 뭐 시속 한 2, 30km 천천히 2, 30km로 이렇게 끌고 가고 올라가고 있었어요. 이렇게 언덕이 있었습니다. 그게서 출발한지 얼마 안 돼서 여기 가고 있는데 아내는 옆에서 잠이 들었고 아들은 뒤에서 잠이 들었고 딸만 대각선에 있는 딸만 어 전화를 해서 생활관에 있는 선배한테 전해서 오빠 우리 오빠내 집에 어느내 집에 갔다가 지금 가는 길이야 뭐 이렇게

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제가 보니까 마은편에서 차 한 데가 와요. 저는 봤어요. 제가 보고 있는데 그 차가 내려오던 속도 그대로 브레이크도 하나 밟지 않은 태로 돌진에 들어왔어요. 저는 다 봤습니다. [목을 가다듬음] 예. 그래서 이렇게 됐습니다. 왼쪽 끝은 거의 한 100m 가까이 되는 동해한 낭떨어집니다. 이쪽 경계선 선 끝까지 밀려갔지요. 저는 누가 지금 누가이 119를 불러 미국으로 치면 나레을 불렀는지 저는 지금도 모릅니다. 어 두 대가 왔습니다. 예. 문이 떨어졌고 제가 뛰쳐 나가서 뛰쳐 나가서 괜찮아하고 고함을 치는데 아들이 피가 얼굴이 범벅이 됐습니다. 바로 다른 가슴을 부여잡고 있고 어 아이 부딪히고 안에는이 안에 벨트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차가 부딪혔기 때문에 브레이크도 안 밟고 그래서 차 두 대가 와서 저희가 삼척 의료원으로 그 응급실로 이송이 됐죠. 근데 참 제가 제가 생각해도 정말 못 말리는 36인입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 우리는 서울에 있는 36 병원으로 가야 됩니다.

다시 119를 타고 36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래가지고 그해 여름 우리 가족 여행은 약 40일이 넘는 시간 동안 36병원에 입번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게 우리 가족 여행의 마무리입니다. 어 여러분 어이 정말 큰 사고였어요. 어, 근데 아내도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만 어,이 2009년도에 있었던 일인데 어, 참 감사하게도 아내도 아무 후유증 없고 어, 딸도이 입 앞니를 부딪쳐서 많이 힘들었는데 아무 후주가 없고 아들도 머리가 이게 머리를 붙였는데 이게 깨져서 피가 나왔기 때문에 안에 내상이 없이 이렇게 회복이 돼서 온 가족이 멀쩡히 살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 가서이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박수를 적게 치시는 청중 아 그때 별 일이 없었으니까 제가 이렇게 살아 있지요. 여러분이 사고 이후로 저는 지금은 잊어버렸어요. 근데이 사고 이후로 제가 얼마나 [한숨] 놀라운 진리를 하나 깨달았는가 하면 [콧방귀] 감사하지요. 큰 사고 났는데 내 가족도 아무 일 없이 이렇게 지금 살게 됐으니 2009년도니까 지금 얼마나 또 시간이 해가 많이 지났잖아요. 근데 맞은 편차가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전하시면서 독일산 아우디를 몰고 그 해수육 갔다가 졸름 운전하셔서 우리 차를들이 받았는데 뭐 그냥 와서 받으니까 뻔히 제가 보고 있었는데 제가 아무리 천천히 가고 있었어도 방어 운전이고 뭐 소용이 없어요. 와서 받 바로 받으니까 이게 차 각을 받았잖아요.

조금만 지나갔으면 운전하는 저를 받았겠죠. 0점 몇 초만 지났으면 와 그러고 나니까 그다음에 운전을 하는데 그 운전선에 상대편 라인에 차들이 그냥 이렇게 지나가 주잖아요. 와 사고가 났는데 아무 일 없는게 기적이 아니고요. 사고가 났는데 낳는 것보다 사고가 안 나고 지나가 주는게 더 중요한 기적이잖아요. 그니까 차들이 이렇게 지나가 주니까 한대 지나갈 때마다 기적 기적 기적 기적 계속 기적이 기적 기적 기적 기적 와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이 하루가 얼마나 많은 기적이 쌓여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인가? 아멘. 아, 그거 생각하고 나니 삶의 차원이 달라지는 거 같아. 감사하지요. 아멘. 범사에 감사하지요. 살아 있다는 사실 너무 감사하지요. 여러분 야영애를 섬기면서 우리 함께 젊었을 때도 여러분 뵙고 10년 20년 30년이 지나간 세월에도 여전히 우리 함께 만나서 다시 얼굴로 만나고 하니 다 산 자들의 이야기 있잖아요.

요즘 유행하는 법윤수님이 이런 말 했습니다. 인생을 너무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 인생이 초라해집니다. 인생은 그저 길가에 풀 한프기가 나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신앙이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지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느낌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아멘 안 해야들 스님이 하신 말씀 듣고 아멘. 아멘. 여러분,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해요? 주께서 생명싸기 속에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고백하지요. 그래서 뭐라고 노래합니까? 내가 지금 사는 것 주의 크신 은혜요. 거기다가 주를 믿게 된 것은 더욱 크신 은혜라. 아멘. 기뻐하라. 본질적인 요구입니다. 뭘 준비하고 있습니까? 벙커를 준비할 겁니까? 생존 배낭을 준비할 겁니까? 뭘 준비할 겁니까?

우리는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우리가 가야 할 곳이 기쁨의 도성이고 즐거움의 도성인데 그곳에 갔을 때 어색하지 않도록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기쁘고 즐겁게 사는 일을이 땅에서 이미 경험하고 누리고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령 어떻게 하면 범사에 감사하고 어떻게 하면 항상 기도하고 어떻게 하면 항상 즐기 기뻐할 수 있는지 그 권면의 사도의 권면이 우리 삶 속에서 존재로 체험될 수 있도록 연습해야 되지 않겠어요? 아멘. 준비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이 기쁨을 빼앗는 가장 빈번한 핵심 요인은 인간 관계입니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는 가장 핵심적 요소는 깨어진 인간 관계지요. 반대로 깨어진 인간 관계에서 기쁨을 지켜주는 핵심 요인이 뭐죠? 이어지는 본문의 말씀이 왜냐면 환용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 관용이라는 말이 뭘까요?

이케이스라고 불리고야라고 헬라어로 발음합니다. 우리말 [콧방귀] 국어 사전에 의하면 관용이란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선의 관대 아량 자비 포용 자기 권리나 이익을 위해 까다롭게 하지 않음. 여러분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하는요 단어 앞에 가장 가까운 기뻐하라는 그 다음 구절에 바로이어서 4장 5절에서 빌립보 4장 5절에서 한 절 안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희 관용을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재림 준비에 가장 가까운 덕목이 빌립보 4장 5절에 의하면 관용입니다. 관용을 준비해야 됩니다. 관용해라고 관용한 것이 인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신앙 덕목이라는 거지요. 저는 신학과 4학년 때 문서 전도를 위해 명함을 준비하면서 그 지음에이 구절을 만나고 커다란 도전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에 비친 인박한 재림을 믿는 재림 성도들은 대부분 대표적인 특징에 관용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림이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특성을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시는데 하고 자녀들의 의지를 억압하고 주변 사람들을 핍박하고 더 나아가 환용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환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께서 가깝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로 말하면 마아나다 주요. 관용이라는 말을 현대 불로 말하는 오늘 말하는 돌레랑스지요. 저는 그 이름하여 똘레랑스와 마라나타가 여기 한 구절 안에 압축 요약되어 있는 표현이 여기 빌립보 4장 5절입니다. 관용이 뭔가요? 성경을 찾아보면 관용은 첫 번째가 우리 주님의 속성입니다. [콧방귀] 시편 86편 5절에 보면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했는데 여기 사하기를이라고 하는요 단어를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오로 옮긴 70인역 성경에 보면 빌립보 4장 5절에 사용된 관용이란 단어와 똑같은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4장 5절에 관용이라는 그 개념을 시편 86편 5절의 표현으로 옮기면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용서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 그게 관용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세번역 성경은이 구절을 주님은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22절 23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홀래 참으심으로 관용했다고 고백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래 [콧방귀] 참으신다고 말합니다. 3장 15절도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고 말하지요. 디모데전서 1장 16절은 바울이 예수께서 자기에 대해 오래 참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런 구절을 읽을 때 예정과는 달리 자꾸 가슴이 un니다. 그렇구나. 주님이 나를 오래 참아 주셨구나. 속속들이 아시는 주님이 아시는 대로 나를 취급하셨다면 지금에 나는 있을 수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고린도서 10장 1절에 보면이 관용과 쌍둥이처럼 언급되는 표현이 온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표현합니다. 시대 소망 204쪽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복수하는 재판장이 아니요 온유하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며 자기 안에 반사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자비로운 행위로서 낡은 유전과 사람이 맞는 계명의 가혹한 권세를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없는 충만함으로 제시하셨다. 여러분, 그래서 어떤 경우가 됐든 제가 반세기 이상 50년 이상 교 신앙 생활을 해보고 교회 생활을 해 보니까 우리 교회 안에 이렇게 하나님을 엄한 분으로이 소개하는 일에 은사를 받은 분들이 계신 거 같아요. 예. 말씀을 하셔도 분위기를 잡아도이 이렇게 이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꾸만 이게 힘들게 해요. 근데 거의 거의 은사 수준이로 그렇게 하셔요.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복수하는 재판장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정말 따뜻한 공동체가 돼야 되거든요.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보이는 태도와 분위기가 비진리적이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쏘 애들이 하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예. 우리 주님 그게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그렇게 그렇게 가르치시려고 했잖아요.

주님이 우리를 오래 참아 주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얼굴 가지고 이렇게 함께 모여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어요. 다 아시는 주님 앞에 그렇죠. 예. 환용이 하나님의 우리가 섬기는 주님의 품성이라는 거예요. 신앙이 뭐죠? 무슨 조항을 하나 더 외우고 이해하고 지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 신앙이 뭐예요? 예수님하고 비슷해져 가는 거. 저는 재림 교회 기본 브랜드 이미지가 주위에 이웃에이 예수를 엄청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하고 비슷해지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게 우리의 기본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됐으면 정말 좋겠어요. 예수 이야기 많이 하는 사람들. 예수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 예. 관용에 대해 성경은 또 뭐라고 말하나요?이 교회 지도자의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1절. 감동은 책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디도서 3장 2절에 아무도 회방 회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의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라.

어제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이 조금 이제 세월이 지나가면서 저도 처리 드는 것 같습니다. 좀 젊었을 때는 아 우리 신학교 학생들 들어오면 그냥 어떻하든지 제대로 목사 만들겠다고 하는 아주 아 자식 잘 치우고 싶은 애비 마음 막 그래서 조금은 흐트러지게 뭐 어떤 우리 교훈님들이 오셔 가지고 요즘 신학생들이 왜 이런지 몰라 이렇게 한 마디만 들으면 막 속에서 막 이런게 올라오면서 막 너네 자식 못났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막 들려 가지고 막 가슴에서 눈물이 막 나를 것 같고 막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로 불러다가 뭐 영어해라 뭐서 성경절 외워라 말 들 볶꾸면서 그렇게 보냈어요. 그렇게 지난 학번 학생들이 있습니다. 여기 와서도 그 형제들 만나면 내가 약간 좀 얼굴이 떳떳하죠. 근데 참 이상해요. 제가 잠시 신학과를 떠나서 학교 행정 책임을 맡고 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남 신학생들을 봤는데 제가 변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이게 완전히 할아버지 마음이 된 거 있지요.

제가 손자 둘을 낳고 나니까 막 손자 둘만 보면 막 그냥 제가 완전히 무장해제입니다. 근데 신학생들 지나가는 것만 봐도 한참 보는 거야. 이렇게 그냥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하고 고맙고 이쁘고 뭐 그런 마음이 막 생겨요. 야 [콧방귀] 나도이 정신이들은 건가? 철이들은 건가? 아니게 뭐 나이 드는 건가? 지도자는 아무쪼록 환영해야 돼요. 특별히 기독교 공동체 지도자에 대해서 성경 자체가 그렇게 말하잖아요. 바울은 다시 베드로전서 2장 18절에서 사왔들아 범사에 두려워하므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요 구절을 병행해서 살펴보게 되면 관용하는 자의 반대가 까다로운 자지요. 그래서 불이 교회는 까다롭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의 등목, 주님의 등목이 속성이 관용이기 때문에 알지요? 다 그렇게 하시는게 선한 마음으로 하시는 거 알지요? 선한 이들이지만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속성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관용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편하게 해 주는 마음 자세입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 중에 가장 좋은 편을 택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재림 준비. 주께서 가까우실 때 뭘 준비해야 돼요? 관용을 준비해야 됩니다. 관용이 뭐죠? 와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적 319.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은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와 행위에 가장 좋은 해석을 가한다. 김집사 왜 그렇게 빙글빙끝 웃는데? 아이 아들이 이제 믿음대로 살게 됐나 봐.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지. 반장됐대. 왜 요렇게 깎아내렸느냐고요? 뭐가 됐으니까 좋아하지. 뒤만 하는 거지요. 근데 어떻게 해석해요? 가장 좋은 해석을 가한다. 이것은 쓸데없이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지도 아니하고 불리한 보고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좋은 품성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아멘. 여러분, 이런게 관용이라는 거예요.

우리 신앙생활하고 재림 준비하면서 뒤따하지 말자고요. 남에게 좋은 말 할게 없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자고요. 아멘. 가장 좋은 해석을 해야 된다는 거죠. 이게 준비해야 되고 연습해야 된다는 거지요. 여러분 심리 심리학에서 진화 심리학적 이론이 있습니다. 그 진화 심리학의 핵심 이론이 뭔가면 the bad is stronger than the good 나쁜게 좋은 것보다 강하다라는 호즈 퀸드 대학교에 바오마이스트라고 하는 교수 저는이 교수의 연구시를 직접 찾아서이 본인을 좀 만나기도 하고 했습니다. The bad is stronger than the good. 무슨 뜻이에요? 이게 진화됐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남의 좋은 것보다 남의 나쁜 것에 훨씬 더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기울이는가? 예. 이유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속성이 DNA가 됐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게 진화됐다는 증거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기껏 안식일에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 듣고 난 다음에 앉아가지고 점심 먹으면서 남의 뒷담하면 오늘 내가 진화됐다는 증거다 하고 자기 진화 증거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 연습해야 돼요. 이거 관용하기를 준비해야 되거든요. 관용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랬습니다. 관용은 상대의 힘에 눌려서 태도를 바꾸는 타협이 아닙니다. 관용은 분명한 자기 확신을 조절해 주는 절제이기도 합니다. 야고보 3장 16절에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합니다. 여러분 종교 개혁사를 보면이 루터와 깔뱅 사이에 아주 깊은 논쟁이 있습니다. 그 논쟁을 가르쳐 아디아 보라 논쟁이라 그럽니다. 이거는 상식 상식으로 기억해 주실 만한 일입니다. 여기 디아포라는이 말은 뭔가면 성경에서 요렇게 해야 된다고 예배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딱 쓰러지게 언급한 규범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디아포라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아 디아포라 아짜가 붙으면 부정이잖아요. 아디아포라는 말은 하나님이 명령하지도 너 금하지도 않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사항들 본질적으로 선악이나 구원과 관련되지 않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들 이걸 가지고 깔벤과 루터가 정말 피터지게 논쟁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디아 포라 이슈들은 현대 교회도 그대로 나타나지요. 예배 형식과 관련해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찬양을 어떤 스타일로 할 거냐? 이거 가지고 교회가 큰 불란이 생깁니다. 무슨 악기를 쓸 거냐? 보통 이슈가 아니지요. 복장은 어떻게 할 거냐?

여러분 제가 보시는 대로 넥타일을 안 맵니다. 어 제가 한 15년 전부터 넥타일을 안 맺는데이 이유가 있습니다.에 제가 이게 목에 아토피가 있어 가지고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넥타일을 매면 목이 쓰려서 이게 밤에 뭘 발라야 자야 됐습니다. 오랫동안에 힘들어 했는데 제가 강원도로 이사를 간 다음에 한 3개월 전 지났는데 오늘 목을 만지는데 매끈매끈해요. 와우 여러분 제가 강원도로 이사간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15년 동안 달고 있던 아토피가 사라졌습니다. 깨끗해요. 근데 그때부터 넥타를 안 맺은 벌을 씻어 가지고 다시 못 먹겠어요. 근데 제가 이렇게 넥타이 안 매고 뭐 교과 해설도 하고 하니까 어떤 분들이 교과 해설 내용은 안 듣고 김상래가 넥타이 안 맺다는 것만 눈에 보여 가지고 해외에서도 저한테 메일을 보내시는 분. 왜 교과 해설하시면서 넥타이를 남십니까? 뭐 이렇게 여러분 용납해 주십시오. 저 그래서 가능하면 이렇게 정장이 되도록 준비를 합니다. 복장 가지고 이슈가 돼요.

어떤 분들은 기도를 무릎 꿇고 해야 되느냐, 서사해야 되느냐 이거 가지고 다해요. 제가 어느 지역 교회 집회를 하러 갔더니 예배가 마친다면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제 앞에 앉 식 앉아가 식사하던 장로님이 목사님도 단위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기도 하시는데 엉덩이를 장단지에 붙이시더구만요. 이것또 뭔 소린가? 그래 그랬더니이 장로님이 목사님은 [콧방귀] 우리 재림교회 정신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장로님 무슨 뜻이신지요?이 재림 초기 재림 운동 사진을 다 보십시오. 모든 분들이 기도하실 때 엉덩이를 장단지에 대지 않고 이게 여러분 보시죠? 항상 이렇게 하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우리 재림교회 선부자들의 사진이 다 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너는 왜 엉덩이를 장단지에 붙이냐 이거예요. 여러분 그걸 지금 문제라고 앞에 식사하시는 장로님이 저한테 이야기하세요. 제가 장로님 그분들은 엉덩이를 장단지에 붙이고 싶어도 못 붙이는 분들이에요.

그게 안 될뿐만 아니라 양반 다리도 안 되세요. 그분들이 아무도 한국분이 없습니다. 다 서양분들은 이게 안 돼요. 무릎을 접지도 못하고 양반 다리도 못해요. 그 사진을 보고 단위에서 기도는 항상 엉덩이를 장단지서 떼야 한다고 괴롭시지 마세요. 그래 그 그 그 그게 아닙니다. 안 받아들이세요. 여러분 답이 없어요. 그런 분들. 이게 이분에게는 최고 관심 여러분. 현실적으로 예.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 운영 강단 위에 의자를 배치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요즘 많이 내렸지요. 본당 내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되냐 벗어야 되느냐. 여러분 주말 집회 모셨더니 강사님께서 왜이 교회는 신발 신고 들어오느냐고 막 혼내는 분. 저도 봤습니다. 저 동료분 중에 피아노를 갖다가 이쪽에 논이야 저쪽에 논이와 가지고 굉장히 다투니다. 주보 내용에 이름에 목임 목사만 써야 되느냐 장로까지 넣어야 되느냐 뭐 회개까지 넣어야 되냐 이거 가지고 다 둬요.

여러분 여기 오기 직전에 제가 전화받은 내용입니다. 어느 야영 집회 순서지를 만든 분들이 목금 토라고 썼는데 왜 목금 아니라고 안 했냐고. 예.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왜 목금 토라고 했냐 이거. 목금 아니라고 안 하고 목금 안 안 해야 되는데 목금 토했다는 거예요. 안식일 집배까지 하는데 직분 냉비를 1년 해야 되느냐 2년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정말 교회가 이런 거 가지고 너그럽지 않고 관용하지 않는 문제들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됩니까? [목을 가다듬음] 우리가 좀 더 세계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가슴들이 좀 넓으면 안 될까요? 저도 가슴이 좁아요. 그런 제가 답답해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이 가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아멘. 여러분, 이렇게 생각할 수 없나요?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서 사라지는 거 아울러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도 소멸된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데 뭐라고 말하는가 보세요. 많은 부당한 요구 조건을 가진 인간이 고한 제도는 그 주창자로 하여금 상수한 인간의 표준에 미달하는 모든 사람을 비판하게 만든다. 이기적이며 편한 비판의 분위기는 고상하고 관대한 마음을 억누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중심의 판단과 마음이 좁은 정탐꾼이 되게 한다. 잘 들어 보세요. 틀렸다고 말하는데 사실상 들어보면 내가 싫다는 뜻이에요. 근데 내가 싫다는 말을 틀렸다 요렇게 표현합니다. 정말 틀린 건지 내가 싫은 건지 주님 앞에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환영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이런 무리에 속하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내 자신, 내 기분, 내 지식, 내 방법뿐이었다. 나 여러분, 성경에 오로지 관심이 자기에게만 있었던 사람이 있지요.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송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험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나 나 아이 오로지 내 관심 여러분 저는 어느 지역 교회 초학을 받았을 때 그 교회 구석일이 어떤지 그 교회 상태가 어떤지 전혀 모를 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혹시이 교회도이 교회 내가 지은 교회야? 내가 세운 교회야.이 교회는 내 교회야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는 주님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없습니다. 모세 때문에 출애굽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하셔야 되기 때문에 모세를 쓰신 것에 불과합니다. 내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다 주님의 몸된 교회지요. 나 나 나의 도성, 나의 위험, 나의 영광 이렇게 하는 순간 나 오직 자기지요. 자기라고 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두 가지 단어가 있죠. 이고이스트 이고티스트 이고이스트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 이고티스트 모든게 자기 공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 그 말이 입에 있을 때 하늘에서 뭐라고 소리가 났습니까? 네가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 먹을 거야.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짐승처럼 보는 순간은 사람이 자기만 생각하는 순간이 하늘에서 볼 때는 짐승 같은 수준이 되는 순간인 거지요. 짐승들은 자기밖에 안 모르니까. 그래서 짐승 같은 사람이 됐을 때 인면 얼굴은 사람인데 수심 마음은 짐승이 되는 거지요. 어떤 자들은 거짓 시험들을 끌어들렸으며 저들 자신의 개인적인 사상과 의향들을 표준으로 삼았으며 그리스도인 교재에 관련된 사소한 문제들을 확대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무덤 무거운 부담을 안겨 준다. 와이 시대에 그것이 어떤 사람은 옷을 가지고 문제 삼고 어떤 사람들은 사진 찍는다고 문제 삼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이가 벗어나야 되는 거예요. 관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저도 저 자신을 살펴보면서 성찰하는 마음으로 너는 어떠냐? 이렇게 하면 저 잡자고 고백하고 싶어이 말씀을 나누는 거예요. 제가 지금 몇 달 만에 쓰면 저 우리 연세 드신 어르신들 용납하고 들어 주십시오. 저도 몇 달만 있으면 70이에요. 저도 이제 70년 인생 살고 보니 아 제가 되돌아봐도 제가 가슴이 참 좁아요. 제가 많이 반상이 되는 거예요. 가슴이 아플만큼 가슴이 좁아요. 그 제가 누군가를 품을 때는 내 가슴이 넘을 때 넓을 때 품을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누굴 품을 품으려면 내 가슴이 덥고 넉넉해져야 품을 수 있어요. 여러분 재림 교회는 놀라운 교회입니다. 한기 동안에 2천만 성도들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이런 기독교 공동체가 어디도 없어요. 세계 교회 우리들이 정말 가슴이 넓어야 하거든요. 본문을 뭐라고 표현하나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얼마나 넉넉한지 배우자에게 얼마나 넉넉한지 가족들에게 재림이 가깝다고 확 뜨거워지는 순간 멀쩡히 중학교 다니는 아이,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 묻지도 않고 가자. 그리고 끌고 가고 그들에게 아무런 선택하지 않도록 내 신앙에 따라 부모가 선택했던 과거의 잘못들은 그 부모가 진실했는지 모르지만 환영하지 못했던 거지요. 그 열매들이 역사 속에서 하나하나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뭘 몰랐 놓쳤던 부분들이 있는 것이지요. 교회 갈등에 많은 요인들 그럴듯 다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지만 속깊이 들여다 보면 영어에라이크가 있고 this가 있잖아요. 어린아이 같이 되어야지 어린아이처럼 유치해져서는 안 되잖아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바울이 말하잖아요. 예수께서는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했는데 바울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했잖아요. 되라고 할 때는라이크고 버려야 할 것은 차디시에요. 유치한 것 버려야지요. 근데 사실 속깊이 들여다 보면 아주 유치한 작은 자존심 싸움 하고 있는 거 다 알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알잖아요.

가슴이 덥지 않은 거지요. 가슴이 넓은 두 사람을 성경 속에서 주님 구약에서 두 사람을 찾아봅니다. 사실 그들은 외로운 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을 구원하셨고 다니엘 하여금 바벨론을 구원했다. 구원의 실물 교훈으로서 요셉과 다니엘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므로 세상에 주어진 영적 축복들을 예정한다. 어떻해요? 잘 아시잖아요. 나중에 형제들 왔을 때 요셉이 형제들 내려다 보면서 보좌에 앉아서 다리를 떨면서 꿈처럼 됐네. 형님들 고개 들어 보세요. 나 요셉이요. 음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됐네. 다 복수하면서 시하게 일갈했습니까? 이런 부분 보면 눈물이 나지요.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콧방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자기를 가장 힘들게 한 인생의 그림자인 그 형제들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라고 표현하게 되는이 자유,이 차원 그죠?

높잖아요. 그런 자들을 가르쳐 뭐라고 말하지요? 해 불 양수 바다 해. 바다는 개울물 하나하나를 올라선택하지 않음으로 바다가 된다는 거죠. 해불 양수의 도량은 우리에게 공동체에서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볼 수 없는 건가요? 다니엘이 조서의 왕의 도장에 찍힌 것을 알고 또 여러분 그다음 잘 보세요. 메바사이 사람들이 다니엘을 고르기 위해서 조소에 다니엘을 걸기 위해서 한 법을 만들었지요. 왕이 인을 찍은 다음에 다니엘이이 조의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 또 그다음 보세요.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며 우리 다 여기까지 읽죠. 근데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기도했는데 저는이 다니엘서에서 정말 의미 있는 구절이 그 마지막 구절이에요.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가 아니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그다음 그의 하나님께 뭐 하였더라? 감사하였더라.

여러분, 지금 사자굴에서 풀려 나와 감사 기도한게 아니고요. 지금 법이 내려진 상황에서 다니엘이 기도 기도할 때 세 번씩 기도하며 이미 그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뭘 본 거예요? 하나님의 섭리를 본 거지요. 그의 신앙의 관점이 넓고 크게 퍼져 있었던 거지요. 지금 보시는 사진은 저희 고향 사진입니다. 저는 강원도 명주근 왕산면 대길이라고 하는 저희 고향이 저희 고향입니다. 어 대기리 사람이에 집안에 종선이고 맞으라고 하는 이유로 강릉으로 중학교를 보내 주셔서 유학을 갔습니다. 농사 소 한 마리에 닭 몇 마리 조금만 농사 짓던 시골 집에서 중학교를 보내 놓고 어머니가 제가 중 3 때 강릉으로 제 바로 밑에 동생 생일날에 잔치하러 가셨다가 그 선호 시간 걸어 들어와야 하는 산길에 마침 나무배는 산판 트럭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걸 얻어타고 들어오시다가 그 트럭 운전수가 보험도 없는 음주 운전자였습니다.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이렇게 내려달려서 소식을 듣고 저희가 뛰어가 봤을 때 동네 사람들은 다 쓰러져 있고 어 특별히 어 어머니 위로 그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친 소나무가 나무가 서서히 쓰러지면서 어머니 허벅지를 위로 쏟아줘서 어머니 다리가 부러진게 아니라 파스라진 채 의식을 잃고 있었고 그때로부터 부터 병원 생활하시다가 6개월 만에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이 제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극빈 상황으로 내몰렸죠.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에에 전혀 뭐 학비라고는 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고등학교 내내 앞으로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한 번도 예외 없이 1학년 2학년 3학년 한 번도 예외 없이 선생되고 싶다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교육자 교육자 교육자 제 고등학교 생활 기록 봅니다. 그런데 정작제학교 생활 기록부를 보면 2학년 때 가정 사정 괄호 치고 교납금 체납으로 인한 결속 3학년 때 가정 사정 괄로 치고 교납금으로 인한 등교 정지로 결석 일수가 많음 이렇게 했기 때문에 학교로부터 지금처럼 뭐 의무 교육 시대가 아니니까 등록군 못 냈다고 등교 정지를 맡고 꿈은 선생들 되고 싶어 했지만은 그 담임 선생님은 얘가 졸업하면 앞으로 뭐 할까? 졸업 후의 상황, 가사, 조력 이렇게 걸어놨습니다. 집안일 도와야 한다. 여러분 이게 제 고등학교 생활 기록부에 남겨져 있는 저의 영원한 고3 단임 선생님의 제 인생에 대한 기록입니다. 얘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가사 조력해야 돼. 선생님이 몰랐던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고 이때 교납근 체납으로 등교 정지를 맡고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1974년 5월 12일 제 인생을 바꾼 날이 있었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몰랐습니다. 그날 일요일 아침 여전히 아침을 먹지 못한 채 힘없이 마루에 걸터 앉아 있을 때 새 가구가 함께 모여 살던 그 가구의 옆집 형님이 세수하다 말고 빨래빈으로 얼굴에 묻힌

채 고개를 들고 저를 쳐다보면서 상례야 오늘 우리 교회에서 경포대로 자전거 하이킹을 가는데 같이 갈래? 그랬습니다. 여러분 아침도 못 먹고 앉아 있는데 강릉시 내곡동이라고 하는 곳에 전세집에 살고 있는데 무슨 자전거 하이킹을 갑니까?이 형님이 저를 쳐다보면서 점심으로 김밥 준다 그랬습니다. 김밥이란 소리에 뭐 귀가 번쩍 뜨였죠. 이사는 말이 학생들도 같이 간다 그랬습니다. 예. 그 두 가지 사항은 당시에 저로서는 뭐 도무지 어어할 수 없는 끌어당기는 요소였죠. 제가이 고백을 했더니 제 고백을들은 어떤 신학생이 어디 가서 전도회 하면서 여러분 여러분이 우리 김상혜 교수님 김상혜 목사님 잘 아시죠? 그분이 교회가 나오게 된 것은 먹는 것과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 나왔습니다. 여러분 존을 이렇게 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여튼 그날 따라갔습니다. 따라가서 그 바닷가에서 곧 고등학생들이 둘러 앉아 가지고 수건 돌리게 하는 그 분위기에 저는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그게 1974년 5월 12일 일요일 물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 가면 되느냐고. 저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화요일하고 금요일 저녁에 오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음날 학교 가서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내일부터 야간 수업을 못 합니다. 그랬더니까 왜 못 하냐? 그래. 교회 갑니다. 어느 교회? 강릉 교회입니다. 아니이 사람은 강릉에 있는 교회가 다 강릉 교회지. 강릉에 있는 어느 교회냐고? 예. 몰랐습니다. 내 얼핏들은 생각이 안식일 교회입니다. 안식일이 뭐냐? 제가 안식일이 뭔지 어떻게 합니까? 예. 대답을 해야지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힌 대답을 했어요. 지구의 생일입니다. 이서 제가 생각해도 성경 선생이 될 재능이 있었던 거 같아요. 예. 그저 얼마나 다녔니? 어제 갔다 왔습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될 것 같아서 제가 1년 다녔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제가 교회 생활을 시작했어.

제가 오랫동안 선생님에게 거짓말 한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됐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 오기 시작하면서 어느날 목사님이 학생들 불러놓고 성경을 가르치는데 다니엘서를 가르치다가 다니엘서 가르치다가 한 때 두 때 반 때가 나오는데 이걸 탈수로 바꾸면 4두 달이고 날수로 바꾸면 1260일이고 1261을 에스겔 4장 6절을 찾으면 하루가 1년이다 하는데 제가 그 말을 듣는 순간요 제가 1년 동안 가지고 있던 양심의 부담을 들었습니다. 아, 내가 거짓말 하지 않았구나. 나는 예언 해석학적인 대답을 했구나. 예. 제가 신앙생활이 흠뻑 봐줬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교회 생활을 정말 흠뻑 봐줘서 사진에 보시는 대로 학생 친구들과 함께 오봉이라고 하는 작년에 그 감뭄으로 막 그 물이 말랐다고 하는 바로 그 댐입니다. 거기 놀라가서 찍은 사진이지요. 한해가 지난 1975년 7월 11일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예배 후에 누군가 사택 직원회를 저를 불렀습니다. 오라 그래서 갔습니다.

컴컴한 방이었습니다. 그때 누군지 모르는데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상내군, 내일 침례식이 있는데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안식일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까? 와우. 기다리던 질문이었습니다. 성경 연구와 교회 생활의 기쁨의 최고의 위대 최고의 위대한 학자의 지위에 서고자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지만 대학을 가야겠다. 가슴에 포브 위전으로이 젊은이의 마음에 비전으로 다가왔고 여러분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다 등교했는데 턱에 있는 운동장에 늦게 등록금 못 내고 등교 정지받은 친구가 가방을 들고 그 빈동자 한번 지나가 보세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 그 빈 운동장을 지나서 교실로 들어가면서 내 책상과 글상을 선생님이 치우셨으면 어떻게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선생님이 조례를 하고 있었는데 제 책상에 있어요. 앉았습니다. 친구들이 다 보고 있지요. 선생님이 뭐라 그러실까? 고슴도치처럼 날 날 날카롭게서 있는데 선생님이 상대 왔구나.

다시는 등록구 묻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저는 고등학교 졸업 앨범이 없습니다. 죽음 안 내고 그냥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이렇게 다닌 저를 사립고등학교이기 때문에 황용조가 제 7년 후배입니다. 예. 졸업장은 받았습니다. 근데 지금도 제게는 고등학교 앨범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침례를 받은 이후 교회는 제게 생명의 첫줄이 되었습니다. 고3 예비고사를 치르던 그 시즌에 보시는 대로 친구와 함께 열흘 전도회를 계획하고 코삼 교복을 입고 전도회를 운영하고 있는 설교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때 신개훈 목사님이 오셔서 이런 저희들의 모습을 보고 반드시 신학과로 오라고면해 주셔서 저들 신학과로 인도했습니다. 네. 그리고 대학 들어가면서 우리 학교에 대학원이 생기기도 전에 학자가 되겠다는 그 구절을 읽었던 그 꿈이 제 인생의 핏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돈이 없어 유학갈 생각을 못 하고 그래도 한국에 있는 대학원을 가야 되겠다고 준비하고 있던 때 4학년이든 10월 달에 우리 대학교에 대학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3육대학교 교육 역사의 대학원 제1호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정말 기합니다. 그리고 목회를 나왔다가 미국 생활하고 다시 여러 사연 때문에 아내가 질 병에 걸려서 아내를 미국 내파 처가에 두고 저 혼자 한국으로 귀곡해서 어쩔 수 없이 이제 한국에서 공부를 해야 되는가 보다 싶어서 남대극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그때 남대극 교수님이 전화를 끊으면서 김목사 우리 대학에 박사 과정 허가가 나왔네 여러분 그 말 때문에 저는 36대학교 박사 과정호로 입학 되었습니다. 그게 계기가 돼서 36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라운 섭리로 한국 재림 교인으로서는 제1호로 유럽에 성사 박사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난 후에 얼마 전에는 2023년 8월 정년 퇴임하면서 강원대학교에 평화학 박사기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코 최고의 위대한 학자는 못됩니다. Hungry. 여전히 앎에 대한 목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등교 종지 받았던 고3 때 한교를 못 가고 교회에서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을 보면서 받았던 그 놀라운 빛의 힘 때문에 오늘까지 이렇게 이룰 수 있었고 좋은 아내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감히 존귀한 여러분 앞에서 이런 말씀도 증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습니다. 그런데 제가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이 내용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고요.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 제 침내에 얽힌 놀라운 사연을 제가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3대학교 선생이 돼서이 서부 야영회에 와서 말씀을 증거하던 어느 말씀이 끝난 다음에 손만 입고 몸체는 나타나지 않은 그 신령한 목사님의 사모님 목사님은 미국에 오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모님이 집회가 마친 다음에 제 손을 붙잡고 막 그끼시면서 우리 목사님이 [콧방귀] 김목사 우리 목사님이 살아 계셔서 김목사 설교를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 제가이 이야기를 은퇴하기 전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은퇴했기 때문에 이제사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우리 목사님이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우리 목사님이 김목사 침내 때문에 그렇게 힘드셨는데 그래요. 제 발을 붙들고 우시는 사모님을 보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모님, 목사님이 왜 저 침내 주는 것 때문에 힘드셨어요?

왜 그러셨어요? 무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힘 목사가 금요일 저녁에 무슨 일 있어도 교회 나오겠다고 하고 다음날 학교 갔었잖아. 그래. 아, 여러분, 저는 그 금요일 저녁에 저 불러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키며 신앙대로 살기로 했습니까라고 물을 때 저는 그게 다음날 합격하지 말라는 말인 줄 몰랐습니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 내내 교회 와 살았었기 때문에 그때 저보고 제 머릿속에는 학교를 안 가야 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다음날 학교 갔고 당연히 안식일로 오 학생에 와서 온 힘을 다 기울여 교회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거 하겠냐는 질문인 줄 알아들었고 당연히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내일 학교 말라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못 한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 오전에 교회를 가지한 학교를 갔다가 침례장으로 가슴이 설레며 침례장으로 찾아갔던 그 일 때문에 그런데 목사님이 저에게 침내를 주셨던 것 때문에 목사님이 어른들에게 [목을 가다듬음] 많이 힘드셨다는 이야기를 사모님한테 나중에들은 거지요.

만약 여러분 그때 그 목사님이 상례야 너는 오늘 침대 못 받겠다. 그렇게 저를 내치셨더라면 제가 어떻게 됐을까? 아슬아슬한 생각이 저는 기대했던 것만큼 들던 것만큼 좋아했던 것만큼 반비례해서 많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그때 저를 품어 주시고 받아 주시고이 한마디 하지 않으신 채 저에게는 사랑해 주신 목사님 시친 목사님으로만 남아 있는 그 목사님을 생각하면 관용이 이런 거구나. 이게 관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나중에 성경을 읽어 보니까 그게 성경 가르침이었어요. 주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그다음에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가르쳐 지켜서 침례를 주라가 아니고 제자 되겠다고 하면 침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성경 주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행전 2장 41절에 보면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며 그날의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분명히 베드로 설교를 듣고 침례를 받았어요. 그런데 47절에 보면 베드로 설교를 듣고 침례를 받은 그 일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거 사람이 준게 아니라는 거지요. 침내는 하나님의 역사예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이제 우리 현적에 계신 우리 교회 우리 분들에게 정말 이제 좀 호소하고 싶은게 있어요. 목회 및 교회 성장 평가 지표를 침례 자수로 해서는 안 될 거 같아요.

침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거든요.이 이 눈에 보이는 출석 생수로 교회 성장 지표를 바꿔야 어떻게 침내를 줘도 저 목목사님 교인들이 목사님이 자기를 위해 침내 준다 이런 오해도 안 합니다. 그때 목사님이 제게 보여 주셨던 그 기대 관용 용납 그 열매가 제 삶을 지배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 준비할 것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둘째,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즐겁고 행복한 기쁨의 신앙생활 하십시다. 미래를 내다보고 믿어주는 환용의 신앙 하십시다. 확실한 소망이기에 기뻐하고 인박하기에 오히려 관용한 가슴은 곧 사람들의 공동체 따뜻한 공동체 재림을 공동체 그 공동체가 재림교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둘째 날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사도 바울을 주시 통해 주신 메시지를 묵상하고 생각하며 우리 자신들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가슴이 좁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의지로 잘되지 않사오니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너른 가슴을 품게 해 주시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따뜻하게 세워 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เฮ เ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