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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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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수요일 · PM 7:00 · 저녁말씀 | 김상래 목사 (7.22수)

저녁말씀 | 김상래 목사 (7.22수)

YouTube 자동 생성 자막을 문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명, 성경 구절 및 전문 용어에는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เฮ เฮ [종소리] [종소리] 다음 곡은 빈손의 기도입니다. 진정한 기도를 위해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영적 비움과 헌신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이나 세상의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내어 드리고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입니다. 두 손을 모기 위하여 가진 것 모두 다 버렸네. 세상에 눈감고 유혹이 김막고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네. 당신은 내 모든 사랑의 주인 아 당신은 내 모든 소망의 주인 모채울 가슴에 당신께 귀옵니다. 오서 오소서. 주님이여 모체 가슴에 당신되었다소서. 주여. 아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령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Ja. เฮ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เ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믿음이 없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이 세상을 세상 믿은이기는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여기에 모이느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더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라가리니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이 이 믿음 더욱 주가 지켜 주신다. 어든 밤에도 주의 밝은 길 인도하여 주신다. 주님이 뜻하시니 해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하네 내가 있음을 하노라 사랑의 말씀들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함께 계심을 믿라.이 이 믿음 더 고세로 주가 지켜 주신다.

어든 밤에도 주의 밝은 인도하여 주신다. 주의 뜻대로지는 날까지 믿음도 고생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니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마지막으로 연조할 곡은 치론패툰 시온의 영광 나팔을 들어서 크게 불라 매들리가 되겠습니다. 습니다.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다 같이 이루셔서 주제가 부르시겠습니다. 나이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곳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손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면 주학께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안에 감추인 새생명 얻으니 이제 좋던 것 이제는 갑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리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밤새하느리로다 영생을 맛보면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아버지, 세상의 징조들은 예수님 다시 온다고 강하게 알려 주고 있어서 우리 보고 깨어서 준비하라고 이곳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자리에 저희를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아버지 진리를 깨닫고 이곳에 오랫동안 남은 자손으로 지내왔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아는 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을 아는 걸로 알았지만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예수님을 알고 싶습니다. 참으로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 안에 지내고 싶습니다. 아버지 영적으로 갈급한 가난한 심령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여 주셔서 저희를 깨우쳐 주시고 오직 예수님 붙잡고 살고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그리하여 예수님 오시는 날 정말 기쁘게 준비된 자로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곳에 오니 정말 천국의 맛을 경험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모든 사람들이 겸손하게 말하고 정말 기쁘고 행복하게 관영을 베풀고 정말이 천국자리가 이제 우리가이 산지를 내려갈 때 그 마음 그 예수님 닮은 그것을 가지고 각 교회에서 정말 변화된 삶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김성 김상례 목사님 성령께서 임재하여 주셔서 준비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할 때 우리의 가슴이 뜨겁게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변화된 심령으로 우리가 내려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정말 작은 예수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감사하며이 모든 말씀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정말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기를 아끼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방송 네.이 마이크는 좋은데 방송에 또 안 나간다고. 아, 오늘 제가 아주 편해서 이야, 오늘부터 제대로 됐다 생각했는데 뺏 뺏어 가네. 제가 얘기하니까 양순이 편해서 야, 오늘 정말 편하게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자. 어 근데 어 뭐 끝내 끝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제가 연세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른들은 그렇게 묻고 젊은이들에게는 자네 몇 년생인가 이제 이렇게 물은 다음에에 자네 예를 들어 뭐 1900에 뭐 60년생이다 했다 합시다. 뭐 뭐 요즘이니까 1902년생이다 했다 이렇게 하면 어 자네 그렇게 예수님 부인하더니 조금 전에 2,년 전에 예수님 오셨다 이렇게 말했네. 예. 그러잖아요. 자기 자기 탄생 연도를이 BC 연대, AD 연대로 쓰는 순간 기월력에 근거해서 쓰는 순간 예수님 탄생을 기준으로 표현한 거잖아요. 사실 그게에 너무 싫어서 자네 정 당신 선생님 정 그렇게 예수님 부인하고 싶으시면 당근력을 쓰세요.

아니면 불력을 쓰시든지 이런 표현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bc라는 표현을 B라고 표현하고 AD 대신에 표현합니다. CE는 common error 공통인데 B before common error C 대신에 C 우리 학문적인 기사를 영어로 쓸 때 BC와 AD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압력을 느끼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서 공통 연대 이전 공통 연대 이렇게 이제 바꿔서 쓰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초림마저 부인하는 시대입니다. 쉬운 말로 어 제가 한 교단의 이름을 굳어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종교를 늘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되기 때문에 한 세계적인 기독교 교단은 1944년 7월 29일 교단의 공적 결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적 재림은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결의했습니다. 예. 그렇지만 성경의 모든 약속은 전체 내용이 다 재림으로 향하지요. 성경을 믿으면서 재림을 안 믿는다는 것만큼 그 논리적 충돌도 없습니다.

성경은 재림을 첫날 말씀드린 대로 의롭고 복스럽고 영광스러운 소망이라고 부릅니다. 더군다나 성경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어차피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고 어차피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이 지구가이 상태로 가면은 영원하지 않을 것은 너무 분명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들도 지구가 영원하지 않고 지구가 마지막을 맞을 때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것을 준비하지요. 프레플족이 대표적입니다. 소위 종말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약속하는이 재림의 약속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이 재림 성도들은 재림의 약속을 그들의 궁극적 소망으로 바라보고 간직하고 있지요. 그런데 지난 두 시간 동안 말씀드린 대로 재림의 소망을 종말론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정말론의 수준으로 격화시키는 실수를 범하고 범하기 쉽습니다. 종말과 재림은 다릅니다. 종말은 약속이 없고 재림은 약속이 있습니다. 종말은 끝을 바라보고 재림은 시작을 바라보고 종말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재난에서 살아남아야 되기 때문에 근본 동기가 공포입니다.

그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리워하던 다시 오시는 주님을 뵙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근본 동기가 소망입니다. 여러분 제가 저는이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종종 춘양이 이야기를 합니다. 춘양이가 기다린 것은 옥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도령이었을까? 춘양이가 이도령을 사랑하지 않고 옥에서 나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도령이가 아닌 사람이 와서 나오라 해도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춘양이는 옥에서 나오는게 목적이 아니라 이도령을 만나는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도령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목적인가요? 당연히 준비하는 동기도 내용도 다룰 수밖에 없지요. 재림 성도인 우리들의 내일을 위한 오늘은 단지 재난에서 살아남으려는 프레포족들의 그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단지 재난을 피하기 위해 출애굽 공동체에 참여한 이들을 성경은 아 숲 가톨릭 성경 번역으로 어중이 떠중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재림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종교적 어중이 뜨중이들이 되어서는 안 되지요.

경제적 위기나 정치권의 음모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근데 그런 것들을 나는 아무리 알아봐도 성경에서 이렇게 준비하라는 것에 관심이 없으면 어쩌면 우리는 호기심 많은 어중이 또들인지 모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기도 긴장하고 주의도 긴장하게 만들면서 정작 성경이 말하는 환영하라 깨여 빛의 갑옷을 입으라에 별 관심이 없고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전형적인 어중이 떠중이들인지 모른다는 거지요. 주님의 약속 안에서 주님을 만날 소망을 가진 재림 성도인 우리는 분명히 그들과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차지에 성경이 말하는 재림의 징조에 대한 선명한 성경적 이해가 필요할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지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어 오리까?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거짓 선지자와 사람들을 조심해라.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주님이 이런 것들을 언급하신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이어서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전쟁, 지진, 기근 우리가 흔히 재림의 징조라고 언급하는 이것들은 본문 그대로 표현하면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들이지요.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재난의 시작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이어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 끝이 언제 올까? 천극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러분 우리 한국말로 똑같은 끝인데 제자들이 말할 물을 제자들의 질문 속에 포함된 끝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시면서 언급하시는 끝이 성경 신약 성경 원어인 헬라로 보면 다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서 언급한 끝은 순텔레아 그렇게 부르고 예수께서 대답하실 때 언급하신 끝은 텔로스라고 합니다. 왜 그 뭡니까? 염기서열이 세포의 제일 끝을 텔로미아 뭐 이렇게 하 이렇게 표현할 때 그 텔이란 단 텔로스란 단어가 다 여기서 왔습니다. 다시 말해 순텔레이아는 좀 긴 끝입니다.

텔도스는 그 긴 끝의 끝입니다. 그 제자들이 물은 것을 저는 이걸 항상 항상 설명할 때 제 나름의 용어로 표현합니다. 제자들은 말세에 관심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새 말에 대해 답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말세가 언제 시작됩니까? 전쟁 지진 기근 뭐 이런 그러면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런게 있다고 바로 끝이 아니야. 이것들은 재난의 시작이야. 요런 재난이 언제 끝날까? 텔로스가 있어야 끝나거든. 그 텔로스가 재림의 순간이거든요. 근데요 텔로스의 제 징조는 뭐예요?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렇게 합니다. 정리하면 어 끝이 두 가지입니다. 긴 끝인 순텔레이아 그리고 그것이 끝나는 펠로스 요건 저의 제일 아래 칸을 보시면 요건 말세입니다. 텔로스는 세 말입니다. [콧방귀] 전쟁, 지진, 기근 이런 것들은 다 뭔가 하면 순텔레이아가 시작되었다는 징조입니다. 소위 말세의 징조지요. 근데 새 말의 징조는 천국 복음의 전파입니다. 무슨 뜻이에요? 전쟁이 아무리 일어나도 지진이 아무리 많이 일어나도 태풍이 아무리 일어도 내가 가만히 앉아서 전쟁이 나고 지진이 났으니 내가 하늘나라 하늘 갈 때가 가까왔다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게 안 끝납니다. 재난이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천국 복음이 다 전파되어야 그제야 텔로스가 오기 때문에 전쟁이 나고 지진이 나고 바람이 불고이 모든 일들을 들으면 우리는 우리가 하늘 갔다고 하늘 갈 때가 가까워졌다고 좋아하고 박수치고 웃고 있을 때가 아니고 어찌 천국 복음을 나눌까이 모든 걸 끝내고 함께 주의 나라에 이루려면이 복음을 어떻게 나눌까라고 하는 깊은 영적 도전 과 부담을 느껴야 하는 징조라는 말씀이인 거지요. 예. 그래서 저는 살펴야 할 징조가 있고 이루어야 할 징조가 있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전쟁, 지진, 기근은 다 살펴야 할 징조고요. 천국 복음을 나누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징조 징조입니다. 사실 마태복음 24장 이후에 주님께서 열처녀 비유 그다음에 달란트 비유 그다음에 이웃을 나누어 주는 지극히 작은 자의 비유이 모든 내용들은 뭔가면이 천국 복음을 이렇게 전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내용에 관한 본문들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성경을 보면 재림 기별 앞에서 두 가지 마음 자세를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다시 말해 재림에 관한 이야기예요.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재림 얼마 안 남았어. 5년밖에 안 남았어.

10년밖에 안 남았어. 뭐 이런 이야기 해 가면서 경제 위기가 어떻고 트럼프가 뭐 정치적 음모가 어떻고 뭐 저쪽으로 로마가 어떻고 뭐 이런 얘기 해 가면서 막 하고 난 다음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이거 전에 계약 한글에 저는 쉬동심하거나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저는 옛날 계획 한글 번역이 더 좋아요. 심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잘못된 기별 때문에 마음들이 뭐 이랬대 저랬대 하고 마음들이 쉽게 동심해서 마음들이 막 흔들져 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반면에 예수께서 뭐라 말씀하셨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이 이 두 가지 고민을 추약하면 재림 기별 앞에서 동심하지 말고 각성해야 합니다. 하지 말고 요약하면 성 성경 본문 속에서 재림 기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려면 흔들리고 초급한 심적 불안의 동기가 아니고 침착하고 그리고 결련한 영적 각성의 심령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거지요. 여러분, 성소적 재림 기별은 마음을 흔드는게 아니고 영적 각성을 이루어내는 것이 성경적 기별이에요.

우리는 정말 기별로 쉽게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고 성소적 재림 기별로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본문 속에 성경 속에 그 기별들이 너무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신약에 언급된 인박한 재림에 대한 본문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 김상 목사님으로부터 내일을 위한 오늘이라는 주제로 예 2026년 서부 연합이 하영에 말씀을 섬겨 주십시오라고 전화를 받는 순간 내일을 위한 오늘 그 주제가 평생 도전으로 생각했던 주제입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겸손하게 더 좋은 분 초청하십시오. 양보도 하지 않고 덥썩 전화를 받았습니다. 정말 나누고 싶은 기별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몇 시간이 하루하루이 기별 묵상하며 준비해 왔던이 기별을 한시간 한 시간 증거하는 그 시간이 저도 기다려 주고 여러분도 기다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오늘 그 세 번째 시간으로 하나하나 다루어 보면서 히브리 10장 25절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또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에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 성경을 이해할 때 가장 가까운 문맥과 조금 뭐 문맥, 조금 더 문맥 어떤 구절을 이해할 때 그 본문 리터리 그 문학적 본문 문단 안에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고 그다음 범위 안에서 책 안에서 그다음 예를 들어 창세기면 오경 안에서 그다음 구약 안에서 신약 안에서 이렇게 넓혀 가는게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에이 본문을 읽으면서 그 가장 가까운 본문의 범위 안에서이 각각의 의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깊이 이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 본문의 권면은 모의를 패하지 말라라고 하는 권면이 가장 가까운 권면이지요. 가까울수록 [헉 소리] 어이 시대는 정말 모의기를 패하는 시대입니다.이 이 히브리서가 쓰여지던이 시대의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표현을 썼을 때는 AD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을 앞둔 그런 시대였지요.

어 우리는 코로나 시대 때 코로나 사태 때 코비드 19틴 시대 때에 교회 모임이 위법이 되는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때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뭐 우리가 계속 모일 수가 없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우리 한국 연합회도 모이지 말자 하고 결의를 했는데 저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많이 아쉬웠어요. 개인적으로. 야, 모든 종교 집단이 교단이 사회적 필요와 뭐 우리가 중세대 시대처럼 할 수 없으니까 안 보이는 건 당연한데 우리는 조금 달리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 공식 모이는 예배는 중단하지만 재림교회 목회자들은 비어 있는 강단에서 제 시간에 강단 앞에서 똑같은 예배 순서를 혼자 진행하십시오. 제 시간에 기도하고 제 시간에 설교하고 성도들은 비록 함께 모여들지 않지만 목회자가이 시간 똑같은 시간에 강단을 지키면서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여러분의 집에서 똑같이 교회에 모이는 것처럼 예배드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이 시간에 사회를 위해이 국가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그 결림문 속에 그런 내용이 들어갔었더라면 우리는 좀 차원이 달지 않았을까? 뭐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 모이기 어려운 시대를 경험했었지요. 또 모이지 않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사회에 한 잡지에서이 프로그램이 부분을 땄는데요. 그래서 세상에 유행하는 용어가 혼술. 혼자 술 먹기. 혼영 혼밥 혼자 밥 먹기. 혼영 혼자 영화보기. 영화보기. 혼곡 혼자 노래 부르기. 이 이제 이게 세상의 세태라는 요즘은 혼자 있는게 외로운게 아니라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시대가 됐어요. 다 혼자 혼자 모이기를 패한다 할 때 그 패하다라는 말을 어 앵카탈리포라고 이제 헬라로 부르는데요.요 말은 패하다, 포기하다, 버리다. 요즘 가나안 성도 시대라 그러잖아요. 여러분도 다 아시죠? 가난한 성도가 뭔지 안 나가는 교인은 교인인데 신앙은 포기하지 안 나가요. 그래서 안나가를 거꾸로 이제 가나안 이렇게 이게 한 거 한 모르셨어요? 어 모르시는 분도 계시네요. 예. 아, 미국은 미국이네요.

확실히. 예. 그래서 한국에서는이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이제 보편 보편적이 기독교 용어가 이미 됐습니다. 안나가 교인, 거꾸로 가나안 성도. 이렇게 교회를 떠난 크리스천, 교회 안 오는 교인. 이렇게 부르죠. 그야말로 가나안 성도들의 시대가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어서 여기 국민일보에 보면 가나안 성도 5년 세배로 5년세 배로 늘어이 한국 모든 교단 기독교 교단의 하나의 세태입니다. 또다시 청년 가나안 성도 늘어 그래서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나는 비유를 보세요. 급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 모이는 거예요.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이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했는데 시대가 [콧방귀] 안 모이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 여러분 연합 야영에 하시기에도 예전하고 다르죠. 안 보이는 거예요. 보통 정각 출석하라는 말을 듣는 분들은 다 청각 출석한 분들만 듣죠. 그렇죠? 오신 분들이 안 온다는 말을 듣잖아요.이 문맥을이 본문을 이제 조금 먼 본문에서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히브리 10장 23절에 보면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니이 미쁘다는 한국말 익숙하지 않는 분들 계시지요? 예쁘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미쁘다는 말이 뭘까?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자. 왜? 그날이 가까울수록 이렇게 옵니다. 여기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다 할 때 미쁘다는 말은 그야말로 신실하시니믿기에 충분하시니ful 그야말로 신실한 분이 분이시니 예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는이 사실을 어 바울 서신에서 여러군데 반복하지요. 어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4절 너희를 부르시는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은 하셨다 하면 하시는 분이에 다시 오신다 하면 오시는 분이시다 그 말이지요. 디모데후서 2장 14절은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우리 주님은 정말 믿으 믿기에 충분한 분이라는 뜻이죠요. 예. 미쁘다는 말은 믿음성이 있다는 뜻에 순 우리 말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이라고 표현하면 그 말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아, 지금 어제 우리 집회가 마친 다음에 김상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 제가 만든 ppt가 하얀 바탕에 까방글씨로 돼 있다 보니 쳐다보는 분들이 눈이 피곤하시다고.

이렇게 그래서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뜻이냐 그러니까 그 파탕을 좀 바꿔서 다시 해 보겠냐는 이제 그 제안이신데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아이 근데 이게 뭐 워낙 작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어렵겠죠. 그러고 가셨는데 아 그 말이네. 야 이거 바꾸라는 말보다 더 부담이 되는데 제가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이거 작업하는데 시간 많이 걸렸어요. 여러분 제가 내내 준비해 왔던 거 다시 다 바탕 바꾸고 글 바꾸고 하느라고 근데 그렇게 했는데도 다 못 했어요. 하다가 바뀌더라도 그런 줄 아십시오. 그 지금 까만바탕에 하얗게 글 있으니까 좀 보시기 좋습니까? 덜 덜 피곤하신가요? 또하시면 나머지 또 내일 거 제가 내일 것 또 해야 되고 아 뭐 못 하더라도 주어도 좀 쉬워야 되니까. 로마서 3장 3절.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패하겠느뇨?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마음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다시 말해 사람은 변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게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어 구원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하나 우리의 확신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미쁘십니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하나님은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보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자 그날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생각을 하면서 믿는 도이 여기 믿는 도이라고 번역된요 단어는 우리가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로기아라고 하는 아주 소중한 중요한 단어인데이 호몰로기아라는 믿는 돌이라고 번역된이 단어가 히브리서에 집중적으로 반복됩니다. 10장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4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시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 예수께서 승천하셨다 한 다음에 호몰로기야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이 믿는 도리가 계속 뭐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3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에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 호몰로기아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와우 그래서 믿는 돌이 호몰로기아라는 말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예수입니다. 3장 1절에서 이미 그렇게 정의해 놓은 그 표현을 내려오면서 4장 1절에서 4장 14절에서 그리고 10장 23절에서 약속하신이는 믿으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라고 말할 때 약속하신이가 뭐예? 누구? 누 누구세요? 예수 예수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믿을 만하니 정말 페이풀하신 분이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 즉 그분을 붙잡는 소망이 말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믿는 도리의 소망. 흔히이 호몰로기아라는이 말을 흔히 기본 교리라고 번역합니다. 문자적으로 틀린 말 아닙니다. 근데 히브리서의 본문 안에서 호몰로기아이 믿는 도리라고 번역된 도리 혹은 교리라고 번역되는이 말은 히브리 자체 속에서 조금 전에 살펴본 것처럼 3장 1절에서 말하는 대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에요.

가뽑 기별 2권 87쪽 모든 교리들은 금사술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산 중심체로 하여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교리가 오라서가 아니고요. 교리가 예수 논리적으로 맞아서가 아니고요.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라는 거지요. 2009년에 하와드 대학의 하와드 신학 대학원의 한 유명한 교수가 어 정년 퇴임을 했어 어 퇴임을 했습니다. 그는 뭐 어 우리하고는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입니다. 유명한 저서 두 가지만 소개해 드리고요. 드렸고요. 1988년에 뉴욕 타임즈에 의해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에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그가 대임하면서 어 퇴임 기념 서적을 하나 썼습니다. 그 책의 이름이 The Future of FA 이게 번역됐습니다. 우리말로 종교의 미래 이렇게 번역이 됐는데 직격하면 그 종교의 미래라고 번역한이 그 번역 표현이 저는 그 개념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이 하비스 교수는이 책에서 영어 believe라는 단어와 faith란 단어를 구분해서 정의합니다.이 이 한국말로이 책을 번역한 저자는 faith를 믿음이라고 번역하고 그다음에 bel리프를 신앙이라고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번역하는 것보다 요렇게 번역하는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말로 번역할 때 신앙이라고 번역할 수 있고 belief라는 단어는 하비스의 주장과 논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 한국말로 신념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할 때 신념이 투했죠. 예. 기독교인들이 신념이 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신념은 어떤 이대 올로기에 대한 자기 확신입니다. 어떤 이념에 대한 자기 확신이에요. 사상에 대한 자기 확신이에요. 근데 신앙은 인격에 대한 신뢰입니다. 기독교는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인격적 관계지 어떤 사상에 대한 이념적 확신이 아니라는 거지요. 이론을 우리가 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은 적어도이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생각할게 참 많습니다. 우리는 단지 안식일이 옳아서 그게 옳다라고 지적으로 이올로기적으로 확신하고 인식하는 것에 불과한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인격적으로 사랑하는가? 나는 확고한 안식교인인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인인가? 깊이 성찰해 봐야 할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요.에 에 하비스 교수의 이론을 받아서 종교의 미래라고 번역된이 책이 신앙의 미래라고 하는이 책의 역사를 정리해 본다면 AD 4세기까지 기독교 4가 시작되기 전까지 AD 4세기 이후는 이상하게 신학 교육할 때도 복음의 시대라고 부르지 않고 복음 역사 이렇게 부르지 않고 기독교 사상사 이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기독교 사상을 따르지 복음을 배우는 시대가 아니라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진리라고 이야기하려면 인격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의 중심으로 가고 있는 내용 하나하나에서 인격 진리이신 예수가 체화되도록 스스로 알아차리고 자기를 성찰하면서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 그 삶이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하는 거지요. 확실한 안식일 교인일수록 굳어져 보인다면 이데올로기가 확실한 사람이 아닐까요? 복음에 사로잡힌 사람일까? 페이에서 블리 시대로 갔다가 다시 페이스 시대로 회복할 때 어쩌녁 저는 나는 우리 내 인생을 바친이 교회가이 교회의 브랜드 이미지가 재림 교회 하면 제일 먼저 떠른 이미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말 예수를 담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단 그게 우리 브랜드 이미지가 됐어 면 참 좋겠다 하는 소망을 평생 가지고 있지요. 성경 자체가 말하지 않습니까?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랬습니다.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라는 말은 재림이 가까울수록 정말이 모든 신앙의 시체이신 예수님 안에 살아야 돼. 예수 안에서 예수 때문에 예수와 함께 예수를 향해 그렇게 모든 삶의 가치가 결정되어 살아가는 그런 삶이어야 하거든 그 말씀을 여기서 하고 있는 거지요. 마태복음 24장 25장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재림의 약속을 주신 다음에 이렇게 살아라고 하는 그 내용들 비유로 계속 두 부류로 나누잖아요. 이름을 맞이하는데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 그 두 부류로 나누는 그 모든에 이야기들을 딱 종합하면 그 준비해야 하는 차원이 딱 둘러 나나니다. 소위 수직 국면과 수평 국면이 있지요. 예. 어제와 오늘 우리 권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성령께서 도와주셨나 보다. 와 제가 우리 권목사님 강의에서 많은 영감을 또 함께 나누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함께 역사하셔서 같은 말씀을 준비하게 해 주셨 용어가 비슷한게 있는 걸 알고 저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제 2에 얘기하면 열처녀의 비유는 재림 준비에 있어서의 수직 국면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까? 그다음에 달란트 비유와 작은 자 돌봄의 말씀은 재림 준비에 있어서의 수평국면 이야기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10장이 본문에서 그날이 가까울수록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는 재림 준비에 있어서의 수직

국면을 이야기하는 거지요.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본문은 재림 준비에 있어서의 수평 국면을 이야기합니다. 본문입니다. 24절. 서로 돌아보아. 지금까지 23절에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소망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 굳게 잡으라고 말한 다음에 24절에서 곧바로 국면을 바꾸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하고 곧바로 그날이 가까울 때 준비해야 되는 우리 국면의 차원을 수평 국면으로 곧바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24절에서 서로 돌아보아라는이 단어를 헬라 원어로 읽으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여기 서로 돌아보아라고 말할 때요 돌아보라고 하는요 단어가 카타노에오라고 하는데요 카타노에오라는요 단어가 히브리서 3장 1절에 우리가 잘 아는 아까 조금 전에도 읽었던 우리의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그다음 깊이 생각하라라고 번역된 그 단어가 헬라로 똑같은 단어입니다. 깊이 생각하라 같아 노예요. 서로 돌아보라 갖다 놓여요. 다시 말해 우리가 형제를 예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그 차원 그 수직 국면의 준비와 수평 국면에 서로 돌아보라는 그 명령이 같은 단어예요.

하나님 앞에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영적 도전만큼 내 주변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 준 수평 국면의 동료 인간들과 이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예수를 히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를 히 생각하라는 거예요. 히브리 3장 1절의 번역에 의하면 이건 굉장한 도전이지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영적 국면인 거지요. 더더군다나이 시대를 살펴보면 정말 더더욱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이 시대는 정말 고립의 시대가 아닙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모이기를 패하는 정도가 아니라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그게 보편화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희키코모리 그러잖아요. 일본어 잘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혹시 아 아무도 안 계시나요? 예. 히키코모리 그렇죠. 영국에서 늑대 서양에서 외로운 늑대 현상이라 그러잖아요. 그래서 영국은 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까지 임명했잖아요.

여러분 제가 여기 오기 바로 지난주에이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7월 11일자 중앙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한국의 히크 코모리 현상이 한국의 현실이 되는 거예요. 잠시만 잠수 탄다 그러죠. 요즘 젊은이들 20대 30대들 아무도 안 만나고 방 안에 콕 틀어 바뀌는 걸 잠수 탄다 그러잖아요. 근데 잠시 잠수탄다 그러더니 8년째 지팡 안에만 있는 거예요. 한국에 30대, 20대, 30대, 40대이 젊은 세대 중에서 방에 갇혀서 몇 년째 나오지 않고 동굴처럼 방 안에만 갇혀 있는 청년들이 54만 명이나 된다는 거예요. [콧방귀] 여러분 이게 방안에 갇힌 청춘 54만 명 선택한 은둔인가 내 몰린 고립인가? 아, 돌아봐야 하는 일들이 너무 시급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이 도표는 보시는 대로 2005년을 기준으로 2007년에 아이폰이 나옵니다. 아이폰이 나오면서이 까만 줄은이 고립감 of fail I left out.

내가 이렇게 고립되었다고 느끼고 of fail lely 외롭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비율, 외롭다고 느끼는 비율이 아이폰이 나오는 2005년 2005년과 2010년 사이 2007년을 기점으로 아이폰이 나오면서 어 feel left out웃ly 느끼는게 급증해 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서로 돌아보는 일이 같아 노예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거를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건 구절만 보느냐고요. 똑같은 동사가 서로 돌아보 똑같이 쓰였는데 서로 깊이 생각하라 똑같이 번역할 수 될 수 있는 단어거든요. 우리 여기에 영적 부담을 느껴야 돼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인 강원도 강원도에서 제일 큰 군인 명주군. 용주근에서 제일 큰 면인 왕산면 왕산면에서 제일 큰 리인 백일이 사람이에요. 저는 중학교 시험올 때까지 전기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자동차도 못 봤고 뭐 졸업할 때까지 책보 가지고 여학생은 허리다 차고 남학생 이렇게 차고 그렇게 살았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강원도에서 살다가 근데 강원도를 떠나서 예 긴 세월 서울에서 그다음에 뭐 이것저곳에서 살다 보니 그렇게 고양이 가고 싶어요. 그래서 은퇴하기도 전에에 제가 어떤 그 행정 책임의 집에서부터 그야말로 릴리스 되고 난 다음에 풀어지고 난 다음에 아 고향 다 가면 너무 멀고 그래서 고향과 서울 가운데에 주민 횡성 먼주 행성에 자리를 잡고 시골로 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 너무 좋은 거예요. 집지하고 옆에 조금만 개울이 흐른는데 겨울에 갔더니 가제가 막 바글바글해요. 그래서 다 개을 돌리다가 가지한테 탁 손이 물렸는데 그 가지에게 딱 물리는 순간 그 50년 전 어릴 때 계곡에서 가제 잡던 그 통증이 그대로 살아나면서 나재 물렸어. 너무 좋은 거예요. 시골에 가서 이제 사는데 그 가까이 있는 제자 제가 주례하고 어 주 이렇게이 주중 중매도 하고 주례도 하고 뭐 이렇던 제자 목사가 이제 섬기는 교회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 교회 나가서 같이 섬기기도 하고 그는데 그래서 시골 생활 조금 하다 보니까 와우 깜짝 놀랐어요.

초등학교 학생들의 80% 이상이 조손 가족이에요. 여러분 무슨 말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뭐 못 알아들으시죠? 조손 가족 무슨 말인가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 사는 아이들 되게 다문화 가족들인데 엄마가 동남아 어 출신 엄마들이고 그 엄마들이 대부분 많이 집을 떠나서 할아버지 할머니 돼서 아이들이 살다 보니까 아이들이 거칠어요. 그래서 제가 있던 그 막 조그만 시골 교회 어린 어린이 아아동 센터가 있는데 거기 와 있는 아이들이 많이 거칠어요. 아내가 아이들이 거기 교회 와서 놀다가 집에 갈 때 데려다 주는 그 버스 운전 자원 봉사를 집사람이 신청했어요. 저 사람이 휴걸 가더니 두 가지 꿈이 생겼어요. 가장 큰 꿈은이 포크레인 운전하는게 꿈이랬고 두 번째는 그 마을 시내버스 운전하는게 그게 두 번째 그 저 아주 약해 빠져 보이는 여인이 그 두 가지 꿈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다고 당신 할 수 있냐고 물어나고 [콧방귀] 아니 자기만 꿈을 가지면 되지 왜 나와보고 중장비 기사가 되라 그래요? [한숨] 예. 저도 같이 가서 이렇게 돌아보고 그 아이들을 보니까 많이 불 정말 불쌍해요. 또 살펴보니까 독고 노인들이 너무 많아요.

아, 우리 보니까 교회 나오시는 노인들도 어떤 분들은 혼자 사, 할머니가 혼자 사시고 할아버지가 혼자 사시는데 한번 방문가 봤더니 할머니 한 분이 10년 동안 이부자리 펴고요.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 한 번도 개지도 않고 밥을 해 두시는데 그요 얇은 양은 그렇다닌데 밥하고 물 보고 밥하고 밥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래서 밥을 양은 냄비가 싹감해요. 와우. 제가 막 너무 가슴이 아파 가지고 우리 교 젊은 집사님들하고 교인들에게 우리 이런 다른 거 하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한번 우리 동원 될 수 있는 이런들 다 찾아가서 한번 한번 덜 썩 들어다 놓자. 그래요.이 몇몇 젊은 집사님들 하고 뭐 이렇게 좀 연세 드신 분들도 같이 자원하는 분들 해 가지고 할머니 집에 갔어요.가 가 가지고 막 10년 있던 그 입을 막 끌어내 가지고여 집사님들은 남 방 청소 남자들은 바깥 그 마당 뭐 다 총사하고 가서 입을 갖다가 햇볕에 말리고 그다음에 부엌 그릇 다 막 반짝반짝하게 닦고 한 열명 넘게 달라 붙으니까 순식간에 집이 싹 돌변내 버리죠.이 할머니 집사님이 어떻해 어떻게 끝난 다음에 밥 먹고가 그래요? 무슨 그 집에서 어떻게 밥을 먹어요? 우리가 갖다 줘야 되는데. [한숨][헉 소리] 아 아니야. 집사님 괜찮아요. 할머니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니야 그러면 가서 때 내가 밥 사 줄게. 아니야. 무 말씀하세요 여러분. 그런데이 할머니가 진짜 오려고 하니까 웃실 것 같아요. 어 그래서 그래. 할머니한테 얻어 먹자. 얻어 먹고 예 그래서 가서 식당에 동네 식당에가 가지고 할머니가 점심 사 주는데 막 우리 맛있게 찌개 얻어 먹고 물론 이제 더 많이 도와드릴 생각을 하고 이제 그렇게 했지요. 와우 여러분 그렇게 할머니 한번 도와드리고 오는데 저도 그렇고요. 함께 참여했던 집사님들도 그렇고요. 야 잘 살았다. 인생 이렇게 사는 거지. 막 얼마나 막 기쁨이 충만하고 막 보람이 내가 신앙하는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래도 뭐 저절로 우리 이거 계속해요. 저절로 소리가 나와요. 그래서 오케이. 그다음에 뭐 면사부석 가서 이런 할머니들 우리 교인들만 하지 말고 다른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찾아봅시다. 뭐 이렇게 되고 그다음에 다시 한 주 지나서 다시 찬에서 만났는데 아 교수님 기왕 이러지 말고 우리 한번이 모임 이름을 하나 만들어요. 아 나도 생각했어.

그래. 아 벌써 지으셔서 나 지웠어. 그 뭐예요? 할봉단 그랬던게. 할봉단이 뭐예요? 그래요. 할아버지 할머니들 할머니들 위한 봉사 단체. 아, 이거 멋있네요. [콧방귀] 활봉단이 아니고 할봉단 그랬어요. 할봉단. 그러면 단장은 누가 해요? 아, 뭐 누가 되게 눈치 없네. 이름 지은 사람이 해야지. 제가 하고 싶었어요. 어 여러분 제가 그래서 평생 뭐 이런 장 저런 장 해 봤지만 할봉단 단정 한게 저 행복했어요. 근데 한 발 더 나갔어요. 어 여러분 아시는 대로 제가 대학 뭐 행정 섬김을 잠시 하는 하면서 달리기 시작했잖아요. 그데 제가 달리기 시작할 때 저 한번 하면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목숨 걸고 해 보겠다고 하면서 마라톤 해 가지고 제가 어느덧 마라톤 풀코스 뭐 5km 10km 25km 이런 건 뭐 수도 없고요. 풀코스만 제가 22번 했습니다. 이게 이게 뭐 목숨 걸고 한 거예요. 근데 그 시골에 갔잖아요.

야 시골 사람들은 막 영어를 막 막 스트업 막 이렇게 막 부여 가지고 달리게 하자고 여러분. 그래서 평창 동계 올림픽 할 때요. 그 둔내 교회 80 먹은 할머니 집사님들까지 해 가지고 한 40명이 알몸 마라톤 대회 참석했어요. 남자들은 우통 다 벗고 여자 여자분들은 물론이 이게 적당히 가릴 건 가린 채 예 그렇게 해 가지고 여러분 그 영 스키 대회까지 취소된 그 추운 날에 서로 알몬 마르톤 뛰고는 막 하이파이브 하고 막 난리가 났습니다. 너무 좋아 가지고 그런데 그 모임에 동네 사람아 몇 분이 참석했어요. 이분들이 막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자기 그 목사 보고 우리 이걸로 끝내지 말고 계속 해 보자. 그래 그러면이 모임 이름을 뭐라고 짓지? 내가 지어 볼게. 그래서 좀지 다음에 마 건달 이렇게 하는 거야. 그 마마 건달이 뭐예요? 교수님 그러길래 마음도 마을도 건강하게 달리지 여러분 그래서 마마 건달 마음도 마을도 건강한 달리기 그래서 여기 참석하면 우리가 참갑이 교회가 다 돼 줄게 어 그렇게 하고 화요일 저녁 예배는 교회에서 모이지 말고 동네 그 마을 운동장에 모여 가지고 저녁 예배를 달리기 예배로 대신한다. 여러분 이런 거 이노베이션이에요.

예. 말 그대로 처음에는 한번 해 봐. 그러니까 아, 교수님은 교인 장로님들이 다 봤냐? 그래 반대할 거야. 그분들이 와 가지고 시작한 참미할 때까지 눈 뜨고 있다가 참미 설교하면 주무시기 시작했다가 그다음에 설교 끝나면 눈 뜨면서도 예배는 교회에서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야. 다음에 한 번 더 할 때 내가 제안했다고 한번 말해 봐요. 그랬더니 아 교수님이 뭐 생각이 있어서 했겠지. 그래가지고 화요일 저녁 했어요. 여러분 화요일 저녁 예배를 운동장에 모여 가지고 달리게 한 잠시 한 5분 동안 예배드리고 달리게 하고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봐서 한 명 붙고 두 명 붙고 세 명 붙고 붙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은요 어떤 분이 와 가지고 교회에서 이런 거 합니까? 우리가 여기서 저녁 아에 먹고 김밥 주면서 합니다. 그랬더니 10만 원을 다 주면서 너무 좋은 일 하네요. 이거 가지고 김밥 사세요. 응. 어, 여러분, 한국에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요. 어느 마을에 우리 마을에 꼭 있어야 하는 기관들 이게 당연히 파출소, 학교, 우체국, 은행, 그다음에 농협 하나로 마트 교회가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겠어요?

교회는 없어도 된다가 아니라 없으면 더 좋겠다 해. 여러분 오늘 우리 어제 오늘 우리 그 우리고 목사님 그 영상 보여 준 거 보면서이 그 마지막 그 그 AI가 하신 넌 저는 그 진짜 처음에 립싱 아니고 진짜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김 목사님 오셔서 그 AI라 그러시더라고요.이 마 우리 마을에이 교회가 있는 것이 저는 그 한마디에 그냥 얼마나 꽂혔는지 몰라요.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교회 서로 돌아보 이게 재림 준비라는 거예요. 뭐가 재림 준비예요, 여러분? 재림 준비. 뭘 하는게 재림 준비예요? 본문이 말하잖아요. 서로 돌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놓고 서로 같아 놓고 돌봄이 필요하다는 거죠. 여러분 제가 시골에 갔는데 어느 한 장로님하고 떡반기를 걷게 됐어요. 근데 뚝방기를 나련하게 걸으면서 이렇게 그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그 뚝방길 위로 뒤에서 본거 차가 하나 왔습니다. 그래서 길을 옆 옆으로 이렇게 비겨섰는데 차가 이렇게 지는데 어느 계신 교회 차예요.

근데 지나가다 말고 그 차가 서더니 장로님 그래. 그러니까 우리 장로님 보고 장로님 그러더니 어 목사님 그러더니 어이 두 분이서 가지고 막 얼마나 친하게 신나게 어떻게 지내세요 모르고 이야기하고 그리고가 제가 옆에서 부끄러움이 보다가 아니 언제 그렇게 어느 특정 교단 이름을 제가 대진 않겠습니다. 그게 목사님과 어떻게 그렇게 친해지셨어요? 아, 사연이 있어요. 그래. 예. 강원도 눈이 많이 옵니다. 눈이 오면 차들이 사륜 구동이 아니면 못 다녀요. 근데 그 장로님이 사륜 구동을 몰고 있었어요. 그분은 외지에서 강원도로 이사가신 분이에요. 근데 어느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눈이 가득 왔어요. 그래서 사륜 구동을 몰고 장로님한테 사륜 구동이 있은 거예요. 그 파뜩이 장로님이 생각이 그 마을은 전체가 다 우리 한국 그 기독교 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거기는 장로교회 뭐 감리 교회 두 언더드와 아펜젤러가 선교 구역 나누다가 거기는 감리교 구역이에요.

그 동네에 할머니 권사님들이 많이 계셨어요.이 장로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눈이 온 걸 보니까 갑자기 퍼뜩 생각이 난 거예요. 아이고 우리 권사님들 교회 어떻게 가시나? 우리 장로님이 자기 사륜 부동차를 몰고 나가 가지고 그 동네 권사님들을 태워 가지고 그 할머니 권사님들 다니시던 교회 마당까지 이렇게 모셨다 드리는데 눈이 오니까 목사님이 밖에 서서 교인들 기다리다가 자기 교인들이 내리는데 그들 표현대로 안식교 장로가 일요일에 권사님들 할머니 권사님들 모시다 내리는 거 보고이 이 목사님이란 토전을 받은 거예요. 여러분, 제가 그 마을에가 보니까이 장로님은 성을 붙이지 않은 그냥 장로님으로 불려요. 교파를 막론하고 장로님 하면 이분이에요. 홍장로님, 박장로님, 김장로님이 아니고 장로님 하면 그분이에요. 제가 그분 이야기를 듣고 수가 높다. 나보다 차원이 높다. 야, 여러분, 감리교회 할머니 권사님들이 눈이 와서 일요일에 교회 못 갈까 봐 사륜 구동차를 몰고 있는 재림교회 장로님이 자기 차를 몰고 가서 할머니 권사님들 모셔서 교회 가도록 모셔다 드리는 그게 영적 도전 아니에요?

우리 그 정도 수준으로 높아져야 되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아, 멋있는 거 아니에요, 그거. 아멘.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사랑은 [콧방귀] 성도의 마음가짐이고 선행은 성도의 삶이죠. 행동입니다. 말세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 그러잖아요. 여기 격려하며라고 하는요 말이 바로 스스모스 정확한 개념을 알기 위해 제가 가끔 헬라를 인용하는 걸 용납하고 들어 주십시오. 여기 경려하며요 똑같은 단어가 경려하며로 사용되는데요 파록스스모스라고 하는요 단어가 사도행전 15장 39절에서 저 유명한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다투어 헤어질 때 심히 다투어라고 번역된 단어가 파록수스모스예요. 무슨 말 무슨 말인가면 똑같은 단어가 긍정적일 때는 경매라고 번역되고 부정적일 때는 시타투어로 번역되는 거예요. 프록스 모스를 우리는 다툴 때만 열내고 정말 열심히 다툴게 아니고 그 파록스모스의 수준으로 경려해야 되는 거예요.

힘이 다투어 갈라지는 정도로만 끝나지 말고 파옥 쓱 못 사면서 서로 돌아보아 같아 노예요. 사랑과 선행을 파록 스스보스하고 이게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준비 내용이라는 거지요. 잘 안 돼요. 저도 잘 안 돼요. 저분은 [콧방귀] 왜 교회를 나오는지 몰라. 날 괴롭히기 위해서 나오시나 그런 생각이 들만큼 부담이 되는 분들이 젊을 때 있었어요. 총 보기 싫으면 기도 중에라도 하나님 그분 정말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자기 영적 수준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도록 주님 앞에 씨름하고 싸워야 돼요. 뭘 준비할 거예요? 생존 배낭 준비할 거예요. 온갖 정치적 음모 다 깨달아 가지고 비밀 다 알아 가지고 호기심만 잔잔뜩 충족시킨 다음에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 깨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다 내려놓고 그 그건 뭐 당연한 것 이렇게 생각하고 지나가실 거예요. 뭘 준비해야 됩니까? 이런 거 안 되는 거 준비해야지요. 영적 도존으로 삼고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격려하라는 거죠.

여러분, 제가 선생으로 30년 넘는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제가 선생으로 어떻게 사는지를 좀 간증하는 걸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는 이런 도표가 두 개 있습니다.이 이 도표는 1999년도부터 제가 행정 책임을 맡게 되던 2012년 바로 직전까지 10년 동안 제가 우리 신학과의 입학한 연도 학생들의 리스트입니다. 제가 신학과 선생이 된 일래로 초기 때는 초기 입학 때는 제가 서기 교수였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후는 제가 학과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이 이 학생들 도표 학생들 명단을 도표로 다 만들어서 제가 총장으로 가면서 시거를 떠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이 도표를 만들어서이 종에는 지금 99학번부터 2011학번까지 입학생 명단이 다 기록되 있습니다. 여기 보면 공공학번에 박성숲 뭐 구구 학번의 제일 전현욱 뭐이 이렇게 보고 제가 목회하는 친구들은 뭐 알아서 잘 살아갈테니까 그래서 목회 현지 목회하고 있는 친구도 근데 신학과 졸업했다고 다 목회하는게 아니잖아요.

교회를 떠난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 어디 가는지 연락도 안 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이 명단을 봅니다. 이렇게 살펴놓고 책장 앞에 붙여 놓고 그리고 누군가이이 친구 어떻게 사나 싶으면 제가 떠올리면서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어떻하든지 연락처를 알면 제가 전화합니다. 제가 전화할 때 그럽니다. 제가 행정 책임을 맡고 있을 때 한 형제가 도무치 연락이 안 되기 때문에 전화를 했지요. 보세요. 그 누구세요? 그래요. 잘 지냈는가? 누구야? 섭섭하네. 김상혜 교수님 그래요. 잘 살았어. 죄송합니다. 죄송할게 뭐 있어?이 사람아. 그러면서 제가 늘 그럴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이 사람아 사람이 말이야 하나님을 떠나 살더라도 선생님 떠나 살면 안 되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밥 사. 예. 사겠습니다. 언제 살 거야? 시간 내 주십시오. 뭐 다음 주에 사자. 만나자. 그래 가서 [콧방귀] 아내를 데리고 둘이 가서 만나요.

그러면 나중에 만났는데 여러분 참 그중에 한 형제로 완전히 교회와 신앙을 떠나 있다가 만나 가지고 뭐 이렇게 다 냄새나는 입에서 냄새나는 그런 상태였다가 절 만나기 위해 양치를 몇 시간을 하고 그러고 만났다. 그 형제가 결혼식할 때 저희를 꼭라 그래서 가고 뒤에 가서 조용히 봤습니다. 신앙을 회복했을 때 당연히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을 했지요. 선생으로서에 내가 내 뭐 어느 한 시절 내 가르침을 받고 나간 우리 제자들이 학생들이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고 할 때 막 그렇게라도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살펴보면서 기도하고 그렇게 해 보는 거예요. 부족하지만 여러분 의식적으로 우리가 자꾸 연습해야 되지 않아요? 각자 자기 형제를 격려하여 자기 곁에 서서 위대한 사업의 동력자로서 열심히 흥미 있는 봉사를 하게 하라. 두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동력자의 충분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혹지 또 다른 우리 형제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나면 그 형제가 어디에 있나 하기서 늘 제가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늘 다리면서 열어서 또 보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조악한 것을 정년시키고 거친 것을 부드럽게 하며 이기적인 것을 관대하게 하면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것의 외적 역사는 형제가 형제에게 친절한 경려의 말과 무화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내는 정중함과 부드러운 관심에 보여진다. 좀 시간이 지금 지나서 제가 마음이 조금 급해지는데 천천히 말씀드려도 괜찮죠? 뭐 저녁 다른 순서가 있는 거 아니죠, 김 목사님? 예. 어제도 제가 조금 시간이 길어지니까 자꾸 마음이 급해져서 이분들이 시간 안 끝내나 그럴까 막 그러는데 예, 준비한 말씀이 있어서 일찍 일찍 가시면 뭐 주무시는 것밖에 없으니까 괜찮으시죠? 예. 하단 빨리 마치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가 살림살이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해요. 제가 전전번 야영의 집배 때도 요요 말씀을 저 아래 강단에서요 말씀 풀이를 해 드렸었습니다.

살림살리 이건 9월 4사절에 나오는 풀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만의 언어 감각에 의한 저의 풀이에요. 한국말 순수한 한국말 살림살리. 아, 어느날이 단어를 묵상하다가이 목목사의 본능으로 묵상이라고 표현하네요. 생각하다가 아,이 단어는 두 동사의 명사형의 합성어구나. 살림은 살리다라는 타동사의 명사형 살림이고 살인은 살다라는 자동사의 명사형이구나. 그러므로 살림살이라는 말은 살리면서 살아가기라는 뜻이구나. 와, 그러고 보니까 주부들의 인생을 살림살이라고 표현한 건 너무나 맞는 말이구나. 주부들이 밥을 하면서 식구들 평생 먹이고 살아가는 것. 누군가 식구들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거잖아요. 여러분 코로나 코ov 때 그 다음 해에 어느 교회에서 전도에 하러 오라 그래서 갔다가 금요일 저녁에 코가 뱅해요. 집회 하고 났는데 그래서 담임 목사님께 전화했더니 죄송합니다. 오늘 사실 점심 시간에 그 코비드 걸린 장로님 두 분하고 같이 식사하셨습니다. 아이 양반님 무슨 생각으로 하 한 거예요?

그 김치 농치매를 같이 떠 먹었거든요. 그러더니 [콧방귀] 뭐 아 아무 말씀 하지 마시고 집회를 좀 맞춰 주십시오. 그래 알았다고. 그래도 이상하네요. 그 그렇게 하고 아시를 설교하고는 점심도 먹고 그냥 큰 일이 있어서 그냥 빨리 가야 된다 하고 떠나 주십시오. 그래서 알았다고 하면 [콧방귀] 그렇게 하고 점심 쏴 주는 거 가지고 왔다가 그날 저녁에 저하고 아내하고 둘이 코드 19틴에 걸려 가지고 온 방을 헤매면서 둘이 앓기 시작했어요. 막 저는 뭘 한번 알으면 제대로 알거든요. 아줌마 그 다음날 아침이 됐는데 일어나 보니까 집사람이 아침밥을 하고 있어요. 와 앞침밥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제가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똑같이 코비드에 걸렸는데 저 여인은 무슨 힘으로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을 하고 있는가? 자기가 코비드에 걸려 있어도 남편에게 밥을 해 줘야 되겠다고 하는 그 스피릿이 그로 하여금 밥을 하게 하는구나.

내가 저 여인 때문에 40년을 살아왔구나. 저 여인은 나를 살리면서 살아가는구나. 저 여인은 정말 살림. 김상내를 살림 하면서 자기가 사하는구나.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이 살림살이에요. 다 살아봐야 아무리 잘돼 봐야 다 자기 위해 사는 인생이에요. 무슨 멋있는 직업 가져봐야 다 자기 위해 사는 인생이에요. 그걸 통해 누군가를 살리면서 살아가야지요. 이게 재림 준비라는 서로 돌아보아 같아 노예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살림 살이 그게 재림 준비라는 거지요. 예. 마지막으로 25절 본문입니다. 모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이 본문은 사도행전 2장의 반대잖아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이게 초기 교회 모습이었잖아요. 패하다 그랬습니다. 그게 그야말로 가나안 성도입니다. 여기 본문은 사도가 모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습관. 여기 습관이란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왔지요. 실물교훈 356쪽에 Y한 유명한 말씀이 있죠.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품성을 이루게 되어 그 품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현세적인 또는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모이는 것은 습관이 돼야 하고 모를 모이기를 패하는 것도 습관이 된다는 거예요. 그 이런 습관 드리지 말라는 거지요. 그래서 습관은 반복 와이의 정의에 의하면 습관은 반복된 행동이에요. 행동은 관심의 열매예요.

그게 결국 운명을 결정하지요.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그 관심 앞에 가치가 있다 그래요. 사람 행동은 관심의 열매고 관심은 가치의 열매라는 거지요.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느냐? 결국 우리의 모든 습관은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의 가치관의 결정체가 결국 습관이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만든 저의 자원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제가 붙인 김상 자원입니다.이 자원도 제가 전전번 야용했 때 아래 강당에서 소개드렸던 강당입니다. 어느날 학생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일이 바빠 가지고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제 연구실로 막 돌아와서 돌아오는데 전화 배 올렸습니다. 받았습니다. 헐떡이며 김상례입니다. 받았는데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인 때 담임 선생님이 전화했습니다. 성희 아빠시죠? 목사님이시죠?네 김상례입니다. 빨리 학교로 오십시오. 성이가 지금 토사 광란이 나서 큰일 났습니다. 여러분 제가 그 전화 받자마자 그 제가 있던 연구실에서 3층을 막 날듯이 뛰어내려가서 거기 제가 있던 사무실에서 태강 36 초등학교까지 뭐 얼마 안 걸리는 거리지만 마음이 급혀서 그냥 뛰어갈 수가 없었어요. 차를 몰고 갔습니다.

가서 아이를 보니까 아이가 널 부러졌어요. 아이를 씻겨 가지고 데리고 나와서 차에다 태워 가지고 정문을 막 나오는데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너 지금 어디 와 있니? 너 조금 전에 학생한테 전화해서 약속 취소했잖아. 바쁘다고. 근데 지금 그 다 잊어버리고 지금 어디 와 있는 거야? 그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들어요. 아 그럼 [콧방귀] 제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저의 인생 교훈을 잠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제가 잠언 1장 저의 잠언 1장 1절이에요. 그때 제가 만든 문장이 이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항상 시간이 있다.이 [콧방귀] 짐상 참원 1장 1절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항상 시간이 있다. 가치관의 문제예요. 5분 기도할만큼 바쁜게 아니고요. 일이 많은게 아니고요. 아직 그게 내게 가장 소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예배 못 드리고 뭐 뭐 교회 가지 못할만큼 많은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요. 아직 그게 내게 가장 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가치가 머물러 있는 곳에는 항상 시간이 있습니다.

가치의 문제. 무엇을 가치게 여기느냐? 가치 때문에 행동이 결정되고 행동이 반복되면서 습관이 되는 거예요. 예수께서 아름다운 습관을 가지고 계셨지요.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남산에 가셔서 기도하며 기도가 습관이 돼야 한다는 거지요. 뭘 준비할 거예요, 여러분? 무슨 정보를 더 찾으려고 그러세요? 필요하겠지요. 아는게 중요하겠지요. not a but b니까 나론니 a 알기도 하고 이것도 해야 되니까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그것만 알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습관이 없다면 쏘왓 그래서 뭘 어쩌자고요? 그날이 가까울수록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본문에서 그날은 어떤 날인가요? 그날 하면 대속죄입니다. 우리 흔히 대자를 묻히죠. 속죄입니다. 하염. 근데 성경에서 그 책 하면 성경입니다. 더부 하세. 그 왕멜렉 그 왕 하면 메시아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날 하면 속조일입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 수적 의미지요.

두 번째는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의 날입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에서 그 날이 어떤 날인지를 말하지요. 25절에서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하다가 27절에서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이 있으리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그 날은 저 이름의 날이라고 하는 사실을 본문 자체가 선명하게 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자. 개인 영성이 아니고요. 함께 모이는 영성이 재림 준비라고 하는 사실 앞에이 시대 모의기를 패하는 것이 습관이 된이 시대에 모이는 것을 습관으로 삼는 준비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재림 준비인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지요. 모임은 유대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모세 시대를 회막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회당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은 교회라고 합니다. 여기 단어 속에 다 모일 회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막 회당 교회 그럽니다.

회막 시대에는 성회로 모이고 성회로 모이고 성회로 모이고 회당 시대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 교회 시대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모여야 합니다. 교회가 모일 때 세 가지 기능이 있다 그러지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세상에 봉사하고 선교하고 성도끼리 친교하고 그렇습니다.이 세 가지가 교회의 본질적 기능입니다. 예배와 봉사 선교와 친교이 삼각 관계가 어느 것 하나도 기울어져서는 안 되지요. 예배와 친교와 봉사는 다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초기 교회는이 세 가지 기능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친교지여 하나님을 참여하며 예배주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더라 선교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이 모든게 모여야 이루어지는 일입니다.이 자리 함께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영상으로 함께 보시는 분들 반갑습니다. 내년 44회 서부연합 이야용회는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더 함께 더 많이 모여서 기도하는 그런 야용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무디 목사님이 어느 날 겨울에 집에서 사택해서 머물고 있는데 한 성도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 못 나가겠습니다.

서 혼자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혼자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빼치카에서이 화덕에서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장작을 하나 둘 꺼냈습니다. 장작을 꺼내자 날로 불이 꺼졌습니다. 목사님 추운데 왜 불을 끄시나요? 형제여 날로의 베치카에 불을 태우기 위해서라도 장작은 모여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게 답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일을 따뜻하게 지려면 장작이 모여 있어 불이 붙어야 합니다.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예배드리는 곳으로만 모이는게 아니라 아까 보셨잖아요. 우리 오전에 캐나다에 800명 모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 이야기 들으셨잖아요. 한국의 어느 신학교에서는 300교회 운동을 벌써 30년 전에 시작했어요. 그 300교회 운동이 뭔가 하면은 기도원 300에서 가져온 이론인데 교회 성장 이론인데 제가 서기 교수할 때 그 다른 대학의 신학 교육 상황 파악하기 위해서 신기훈 목사님과 함께 살펴봤던 내용이에요.

아버지, 엄마, 자녀 한 명까지 합쳐서 그렇게 300명이 되면 해외 선교까지 다 가능한 힘 있는 교회가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교회가 제대로 교회다운 우리 마을에 이런 교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막 숫자가 그리고 목회자가 모든 성도들과 인간적 내양과 내 목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적어도 300명이라는 거지요. 재림 교회가 각각의 지역에서 30명 교회로 그냥 자연 소멸되 가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300명 단위에 건강한 교회로 하나가 돼요. 다양한 기능을 감당하는 전문 목사님들이 함께 교회를 섬기면서 그런 교회로 곳곳에 자리 잡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함께 창작이 타는 그런 모습으로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잠시 잠깐 후면 오실리가 오시리니 1985년 9월 28일이었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입니다. 1985년 9월 29일이 주석이었습니다. 그날 28일 안식일 오후까지 저는 교회일 때문에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드렸죠.

아버지 아무래도 이번에는 호향에 못 갈 것 같습니다. 강릉에 계신 아버님이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면서 그래 바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어쩔 수 없지 하는 그 마지막 말 어쩔 수 없지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서운한 목소리에 그래서 전화를 끊고 아버지의 그 마지막 목소리가 가슴에 계속 맺쳤어요. 그래서 안식일 오후 내내 지냈는데 아 그 아버지 목소리가 교회 쟁해서 이게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상 보시는 대로 표를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추석이 집에 가려면이 이렇게 교회 고향 가든 시절이거든. 예. 이 갈 수가 없어요. 제가 어차피 터미널에서이 터미널에서 강릉까지는 못 가니까 가운데 원주까지 어떻게서 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달려가는 거예요. 자, 고향은 좋은 곳이죠.이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다가 원주 가서 원주에서 강릉에 내렸습니다. 강릉에 내려 내려서 밤 늦게 집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렸어.

아버지 저 강릉에 왔습니다. 왔어. 어떻게 왔어? 그래. 저 지금 막 찾다고 집에 갑니다, 여러분. 그래서이이 버스가 그때 그 버스는 아니지만 비슷한 거 제가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래서 1985년 9월 28일 추석 전날이 강릉에 있던 그 시대 신의버입니다. 보면 강원 여객 뭐 이렇게 돼 있을 겁니다. 여기 여기 그렇죠. 강원 여객돼 있죠. 예.이 이이 강원 여객 타고 경포니 송정 바닷가 내 그 우리 집 솔밭에 내린게 그 11시 뭐 12시 가까웠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막찰를 타고 갔으니까 솔밭에 내리고 솔바 버스가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솔파에서 한 한 10분 걸어가야 됩니다. 집으로 근데 솔파티 내서 막 가려고 그러는데 애비 왔나 이래. 아버지가 나와 계셨어요. 그죠?에 비 왔나? 이렇게 한돼 그렇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1985년 9월 28일 안식일 밤 거의 12시 넘어가는 그날 밤 그 송종 솔밭 버스 터미널 총점에서 그 소나무 밑에서 있던 아버지가 저를 보고 앱이 왔나 하는 그 목소리가 평생 제 귀에 쟁히 울리는 소리 중에 하나입니다.

아버지는 그 후에 얼마 안 돼서 어 제가 예 [콧방귀] 목회하는 중에 이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 그때 참 귀한 걸 깨달았어요. 부모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선물 뭐 제가 미리 선물 다 보내고 추석 뭐 하시라고 돈도 보내 드리고 했거든요. 부모가 제일 기쁜 거는 자식이 눈앞에 와 있는 거예요. 예. 우리가 하늘 아버지 앞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효도는 우리가 그 앞에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날 거기 가는 것보다 더 좋은 보답은 없어요. 믿는 도리의 소망인 예수를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자. 우리에 모이는 그 자리가 아버지 앞으로 우리가 직접 가는 그걸 습관으로 드리는이 땅에서의 연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보다 우리가 직접 아버지 앞에 가는 것이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더욱 모여두는 모이는 그 것이 습관이 되도록 도록 준비하는 것이 재림 준비입니다.

아름답게 준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사도가 예루살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절박한 마음으로 정말 절전한 심정으로 그 당시 성도들에게 권면했던 말씀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했던 말씀들을 함께 살펴보며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이 기별이 우리들의 기별이 되게 해 주셔서 영적 도전으로 삼고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 둘 적용하고 살펴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감동해 주옵소서. 남은 야영의 모든 일정에도 주의 은혜가 함께 해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십시오. เฮ 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