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เฮ 올라서서 계시다가 피아노 연주 끝나면 기도하시면 되겠습니다. 왔습니다. 예. 괜찮아. 마이크 테스트하. 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토록 간절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오늘도이 자리 서보양행이 함께 하시는 하늘의 우리 아버지 참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우리 모든 참석자들에게 오늘도 새생명을 허락하시고이 자리에 오게 하시니 그 은혜 감사함을 드리옵나이다. 아버지이 야영장에 약 천여명의 당신의 아들 딸들을 보내 주시고 시간 시간마다 말씀으로 먹여 주시니 또한 저희들의 마음에 문을 열어 주시니 그 놀라운 당신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강구하웃기는 이곳에 모인 어린아이들, 중고등학교 학생들, 대학생, 그리고 30대, 40대, 50대의 청작년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당신의 자녀들인가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기억해 주시고 그들이 참으로 당신을 알게 하시고 내일에이 교회의 지도자들로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아멘. 그들을 지도하시는 여러 당신의 종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하늘의 지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당신의 귀한 양들을 선한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오늘도 귀한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실 김정군 목사님의 입을 주관하시어 여기에 머리 숙인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을 깨출 수 있도록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섭리하여 주시옵소서.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리옵나이다. 아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그 온전하고 그 사랑스러운 충만함. 사실 저희가 일상을 살다 보면 그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 다음 혹은 그리스도인 다음을 지켜내는 임계점은 어딜까요? 혹시 고민해 보셨습니까? 내가 일상에서 평강을 누리고 기뻐하고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고 싶은 그리고 살아왔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풍이 불고 고난 가운데 역경 속에서 견뎌내는 임계점에 연수원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이 이 하루는 일이 좀 버거웠던 거 같습니다.
일도 일이었지만이 영적인 부담이 커서 종일 이런저런 이제 그 연수 과정 지쳐서 산을 타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월떨결에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좀 피할 길을 좀 주십시오. 그 연손에 있으면 곧 하늘 갈 준비가 다 돼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 그러지 않을 때가 있는 겁니다.에 참 힘들게 이렇게 바빠서 식사도 잘 못 했습니다. 예. 그리고 이제 지쳐서 저녁 집에 다 마치고 제 사무실에 와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기도하려고 하고 사무실 이렇게 들어왔는데 제 사무실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게 식당 아 이건 그때 그 밥상은 아니고요. 인터넷에서 가져온 거고 어느 분이 와하고 감락을 하시 아 뭐 저런 식으로 이렇게 누군가 같이 책상 위에다가 이렇게 아 참 순식간에 순간적으로 그 임계치에서 이렇게 열이 훅 내려가는 아이 마음이 푸근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근데 그 식탁 앞에 메모지가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메모지에 이렇게 돼 있었어요. 아빠는 내가 지킨다.
아 당시 대학을 다니던 딸아이가 이제 잠깐 시간을 내서 와서 이제 원장으로 근무하는 아빠 이제 좀 돕겠다고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식당에서 보니까 아빠가 안 보이는 거예요. 예. 자 아빠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밥도 안 먹고 산에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딸아의 입장에서는 좀 뭐라도 하나 챙겨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밥을 갖다 놓고 거기다 패 여기다 이렇게 아빠는 내가 지킨다. 어 시집을 미국으로 오는 바람에 근데 지금 또 출산한다고 한국 저희 집에 와 있습니다. 아, 이거 딸 없는 분은이 느낌 잘 모르실 겁니다. 근데 사실 누가 누구를 지키나요? 사실 제가 제 아이를 그날도 그 과연 분명히 제 관사에서 지금 자고 있는 거고 밥도 아빠 때문에 지금 먹는 거고 학비도 지금 제가 한국은 아직 학비를 대학생들 부모님이 종종 냅니다. 제가 되고 있는 거고 그나마 서울서 원주 내려오는 교통비도 아빠 돈 붙여 주세요. 제가 보내서 이렇게 온 아 그런데이 한 줄로 그날의 모든 피로가 잊혀지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침착하고 겸손하게 하실까? 에스겔 1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30째 해 넷째 달 초다세에 내가 그발 강과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어 에스겔은 유다의 멸망 역사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그 역경을이 경험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역사적이고 외부적인 고난도 고난이었지만 그의 일상 그의 실제 개인적인 삶도 고난이었습니다. 공공연한 반역이 마른 뼈들 같은 존재들에 의해서 이렇게 자행되던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그가 받은 기별은 인기가 별로 없는 기별이었어요.이 이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자고 하는 것이 당시 공공이 연한 반역과 범죄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경고가 실어 버린 바된 시대의 목사님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 포로잡힌 바된 어떻게 보면 고향을 떠난 이런 타지에서의 삶도 힘든데 그 눈에 기뻐하는 유일한 위로 요소였던 아내가 젊어서 죽습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야 이러면 임계치에 도달한 거 아니겠습니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나라 전체가 망하고 교회가 불타고 그래도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끌고 가셔서 그 어려운 환경에서 뭐 미국이라는 곳에서 한 교회를 섬기도록 주의 종으로 부르셨는데 아내마저 죽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 봄 보다의 명사형 미음을 붙이면 가다 감사하다 감사함 보다 봄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을 내게 보이셨다. 이게 에스겔 1장 1절에 나오는 가장 어렵고 힘든 역경 속에 있던 그에게 자전적인이 그 성경을 기록을 남길 때 그의 기억의 첫 번째 기억은 내가 봤다는 거였어요. 뭘 받느냐? 빛난 광체의 모양을 받는데 그것이 무지개 같았고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이었다라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그의 삶과 환경과 그의 오늘은 일상은 임계치에 이게 치받을만큼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이 본다는 것에 경험적 이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성경은 어 이렇게 기록합니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셨다.
지금이 목사님의 현상은 현실은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그는 나는 이런 경험을 했다라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최고치의 영적 경험을 할 때도 하기 힘든 주의 영이 나를 근데 실제이 말씀은 그 앞에 하나님의 명령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인자야 너의 발로 이루어서라. 하나님의 명령은 원래 이거였어요. 너 알아서 일어나. 지금 힘들고 어렵고 하지만 일어나. 이게 아버지 말씀이었어요. 그런데 쓰는 것은 능동태가 아니고 수동태로 이렇게 경험적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이걸 또 다른 성경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주의 영이 나를 일으키셨다. 하나님의 명령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 남에 대해서 나쁜 말 하지 마. 뭐 이렇게 탐내지 마. 견뎌. 이게 다 이렇게 견디고 해야 하늘나라 내가 데려가 줄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에스겔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들어올리셨다. 하나님이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말씀이 내가 어떻게 해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나를 그렇게 하셨다라고 경험한 것이 그의 목회 경험 30년 차 때 그리고 가장 일상이 가난하고 외롭고 힘들 때 나는 봄으로 경험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이 역경을 두려워 말고 그들이 하는 말 그다음에 그 말 속에 있는 그 잔인하고이 집한 흔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아,이 참 바라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중요한지를 에스겔은 충분히 경험하고 그것을 기록했는데 그게 경이 된 것입니다. 성경.이 위대한 표현,이 위대한 계시, 박퀴 속에 박퀴. 나는 정말 고난 가운데이 정로가 아닌 이상한 길로 가는 거 같았지만 그러나 큰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보면 결국 내 인생은 하나님의 큰 바퀴 속에서 하나님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얼마나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그 삶에 희망을 줬던이 이상 이것은 그가 가장 힘든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이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너는 살아 있으라. 아,이 참 부모로서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뭘까?이 죄만은 인간도 자녀들에게이 말 이게 입에 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야, 너는 살아 있어. 여기 점점점에 뭐가 있는지 기억 다 하시지 않습니까? 너는 역경 속에서라도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봄과 봄. 어, 에스겔은 하나님을 그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그가 견뎌내는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그 뜨거움을 시원하게 하시는 생수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무지개 같은 걸 봤어요, 여러분. 이 성경을 제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겔만 봤을까? 하나님도 보고 계셨어요. 창세기 9장에 보면 이런 글이 성경에 기록되 있습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의 겪는 역경과 죄의 문제를 다 끝내시고 난 다음에 자신의 형상과 거룩한 언약을 보이시는 상징으로 무지개를 보이셨는데 여기에 보고는 노아가 보는게 아니고 그 무지개를 하나님이 보고 계셨어요.
우리가 뭔가를 볼 때 제가 어느 날 청년들 데리고 수련회를 가서 뜨거운 그이 곳을 시키려고 이제 이렇게 물을 뿌리는데 무지개가 이렇게 뜨는 것입니다. 그 제가 이렇게 무지개를 보면서 우와 하고 이렇게 무지개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그걸 누군가가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저한테 선물로 보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본다라고 해서 우리가 신앙 삶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이 에스겔처럼 은혜와 기쁨과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는 경험을 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데 사실은 그 같은 순간에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신다. 우리의 오늘을 내가이 면에서 내 인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다른 면에서는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계시는 거예요. 그 언약을 보고 계시고 기억한다 말씀하시고 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은혜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 임계치까지 내몰린 한 목사님의 역경 속에 가르침으로 치료적인 어떤 폭력적이고 징벌적인 의미가 아니라 치료적인 공의 속의 자비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본교 주석은 그렇게 씁니다.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역경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느냐?
가르침으로 혼내는 것이 아니고 치료적으로 그리고 공의를 지켜내시지만 그 가운데 자비를 표현하시는 자꾸 누군가가 생각나는 엄격한 재판관으로서의 여호와의 모습이 에스겔이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라 바람직함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내 나의 나의 모든 것을 기대하고 내 미래를 책임지고 나를 사랑하시는 참된 교사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며이 본다는 것은 전제가 하늘이 열렸다는 것이었어요. 하늘이 열리며 이것은 예수께서 경험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시대 소망 포함해서 하늘이 열렸다라는 것의 표현 가운데 나타난 주인공들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이 목사님이 계시는 거예요. 하늘이 열리는 가운데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은혜의 표증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 혹시 혹은 지난 시간 동안 혹은이 산을 내려갈 때 겪게 될 내 삶의 일상에서 역경의 폭풍 가운데 계시거나 계시게 될지라도 그 가운데 우리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언약의 표증을 보여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 모두가이 아침에 내 삶의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분이 누구로 보이십니까? 아,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은 어, 우리 한국에 있는 어 선배님들,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 가운데 군에 가서 고생하시면서 안식일을 지키고 집총을 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냈던 분들의 역경을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이만큼 두껍습니다. 거기에 이름들이 정말 특별한 이름들이다.이 목사님들 이름도 있고 장로님들 이름도 있고 그 책을 제가 읽으면서 나도 열조의 믿음을 따라 이제 그걸 읽고 두 번째 책이 I will die이 프리였습니다.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이때를 했어요. 그리고 선배님들처럼 으악 하고는 저도 교도사 한번 갔다 왔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제대를 했는데 제대하고 그 해에 한국 액트에서 강사 목사님을 초청해서 이렇게 여름에 어 청년들이 집회를 연다고 했는데 그 강사로 아이윌이프리 저자인 노블레 알레안도로이 목사님이 한국 오신다는 거예요. 야 제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분 만나려고 이분을 보려고 그때 당시에 강원도의 그 청수원이라고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한 100명 들어가는 조그만한 집회 장소인데 이분 온다니까 그때 대학생들이 400명이 넘게 모였어요. 그러는 바람에 정규 집회 장소에서 집회를 못 하고 그 앞에 있는 비닐 하우스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이렇게 긴 비닐하 여러분 8월 달에 비닐하우스에서 한시간 동안 예배드려 보셨습니까? 에어컨 없고 400명이 그 안에서 주고 저는 제일 앞철에 가서 산습니다. 8월 달인데 반팔 입어도 더운 상황에서 저는 군복을 입고 갔어요. 군대에서 입었던 야전상이라고 외투 이게 겨울에 외투어 입는 걸 입고 왔습니다. 왜냐면 한국에도 당신 같이 믿음을 지키는 사람 있어. 이거 보여 주려고요. 그 군복 입고 가서 8월 달에 그 비닐라서 앞에 안에 앉아 가지고 땀 뻘뻘 흘리면서 제압절에서 그분 얼굴 보려고이 목사님 얼굴 보려고 야 참 아무 생각 없는이 신학생이었습니다.
예 말씀하시는데 그 책 내용에 보면 이런게 나옵니다. 뭐 그 캐비닛 조그만한 캐비넷 안에 그 쿠바에서 벌거벗겨진 채로 갇혀서 하루 종일 이렇게 뜨거웠다 추웠다 그이 고문 당하는 얘기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하면서 이렇게 손 관절 하나씩 하나씩을이 망치로 이렇게 부지는 그리고 치료해 주지 않는 얘기 이런 얘기들이 이제 그 산 증인이 눈앞에 이렇게 오는 겁니다. 진짜 하늘이 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끝나고 난 다음에 제가 후다닥 뛰어갔어요. 뛰어가서 이제 만져 보려고요. 저는 도마 같은이 사람인가 봅니다. 그분의 손을 이렇게 탁 만졌습니다.에 저는이 한국 재림 청년이고 앞으로 목회를 하고 싶은 신학생이다. 이분이 저를 이렇게 보시더니 손을 꽉 이때는 이미 쿠바에서 이제 미국으로 망명을 오시고 난 다음에 이제 손을 꽉 잡는데 저도 그분 손을 꽉 잡았는데 그때 그 책에서 읽었던 고문 받고 깨어지고 상처받지 치료받지 못해서 그대로 굳어 버린 그이 관절마다 이렇게 불쑥불쑥한 그분의 거칠고 험한 손을 제가 이렇게 꽉 제 손을 잡더니 딱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뭐 한 문장이죠. 자네 꼭 목사가 되게 저는 보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 믿음의 열조들이 되시고 그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주의 교회를 지켜내는 한 목사님의 가치. 여러분 주변에 한번 돌아보시겠습니까? 여기 보면 지금 아침에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는 목사님들이 계실 겁니다. 목사님들한테 한번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한번 쳐다봐 주시고 이렇게 사랑합니다. 목사님 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이천왕 목사님 사랑합니다. 정말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불처럼 태우는 한 목사의 가치 그 얼마나 귀할까요? 그런 삶을 살아가는 한 장로님의 그 놀라운 영적인 무게감을 그 하나님이 개이 계수하시는 아 그 감사함을 우리 하늘에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어머니가 새벽에 교회와 가족을 위해서 조용히 무릎 꿇고 온 가족의 아침을 이어는 그 어머니의 한 여집사님의 기도. 그걸 경험한 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쓴 겁니다. 은혜로운 보호.
에스겔에게 있어서 그 임계치를 견뎌낼 수 있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으키시는 영의 경험을 하는 것은 첫 번째가 봄이었어요. 그리고 다음은 찬송이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아 여기 앞에 부부로서 수없이 이런 장소에 가면 만나는 두 분이 계십니다. 참 이분들은 늙지도 않으시고요. 한 20년 더 더전에 벤 거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찬양하면 근데 그 찬양하는 삶이 언제나 행복해서 찬양하셨겠습니까? 제가 기억하는 어떨 때는 정신 없셔서 시차도 끝복 안 된 상황에서 앞에 나오셔 가지고 음악회를 30분이 진행하는 그랬던 사람이 성경에 기록되 있더라고요.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올리셨다. 아까 제가 이걸 끊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근데 그 성경절에 전문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들어올리는 경험을 했다. 그다음 내 뒤에 크게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는데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뭐 하라.
아 그 역경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뭘 말씀하셨냐면 내가 너를 들어올리고 이렇게 세워 줄 테니 너는 견뎌내 건축해 이런게 아니었어요. 찬송하라. 그리곤 이렇게 성경이 말합니다. 에스겔을 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나도 그렇게 인정해라고 에스겔을 어 하나님이 이해하시는 방식으로 설명한 사람에 대한 어 정의가 나옵니다. 에스겔 33장 32절에 보면 너는 사랑의 노래를 하는 사람이다. 그냥 노래를 해하는 사람이다. 이것만 해도 대단하게 보여요. 노래의 주제가 주여 밀려오는이 슬픔을 우리 김희상 목사님이 찬양 노래를 저 부 들으면서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이런 노래만 불러도 매일 매 순간을 살아갈 때 시련 속에 힘이 있다네. 이런 참미만 불러도 땡큐일 것 같은데 에스겔은 그 역경 가운데서도 뭘 노래하는 사람이요?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근데이 말을 누가 한 거냐면 하나님이 하신 말이에요. 아, 저희가 볼 때는 에스겔 정말 고난 가운데 있는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걸 또 이렇게 본교 주석은 야 참 친절하게 저희들에게 설명해 줍니다. 고난과 역경의 역사 속에서도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리에 함께 있는 제사장이었다. 찬양대가 찬양할 때이 목사님이 거기 가서 같이 여러분 아침에 일찍 와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박성 목사님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피아노 찬양하는 그 찬양의 소리를 다 들으셨을 거예요. 에스겔이 그런 사람이었다. 여러분 교회에서 한 목사님이 찬양을 하고 계시면 지금 저분이 역경 속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거구나. 한 장로님이 예배가 마치고도 다 떠나셨는데도 떠나지 않고 남아서 조용히 찬송가를 읍조리고 계시면 저분이 살아내야 될 일주일이이 교회를 위해서 짊어지고 있는 영적 부담이 얼마나 컸으면 아 에스겔이 그랬다는 거야.이 이 찬송은 더 놀라운 기록입니다. 이사야 6장과 계시록 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존재들의 성령과 뭐한 것이다. 같은 노래였다.
이게 어떤 가치가 있냐면이 이사야 6장과 계시록 4장은 죄가 없는 곳에서의 찬양이에요. 여기서 우리끼리 부르는 뭔가 좀 죄가 섞여 있는 아니면 회개하는 그런 찬양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곳에 거룩한 찬양의 이것과 에스겔의 찬송이 같은 것이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거룩한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의 찬양이 어느 날 하늘에서의 찬양 같은 그래서 우리가 하늘에 가서 다시 만나실 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장로님들이 쭉 둘러서셔서 이런 찬양을 부르실 때 나도 세상에서 저런 가사와 저런 곡로 노래를 불렀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오늘 얼마나 가치고 견뎌낼 만한 하루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찬양이 가득하게 되기를 오늘 아침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찬송이 되기를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 하나님을 사랑했던 여정은 이렇게 씁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우리의 희망과 용기와 믿음은 증가될 것이다.
식당 가실 때 오실 때 홀로 조용히 산책 가실 때 찬송하는 우리 서부 야행에 참석한 남은 자손들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을 주의 종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노래로 하늘과 교통을 뭐 하는 사람? 유지하는 사람. 야, 이거 참 정말 우리 교단에 하나님의 여정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어떻게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노래로 하늘과 교통을 유지하는 사람들. 그런데이 비슷한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시대 소망에 보면 그분은 노래로서 하늘과의 교통을 유지하셨다. 에스겔은 예수님처럼 은혜를 경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 하나님의 열린 하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보고 그분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는 거예요.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도 잠미하고 나아가셨습니다. 역경 가운데서도 찬양하는 한 분 한 분의 삶이 그렇게 찬양하며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하심과 그 넓은 품 안에서 같은 화음 예수님과 화음을 맞춰서 십자가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고 우리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어,이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이 청년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을 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에, 천명 선교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저에게 자신이 있는 선교지로 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갔더니 아 그 역경 가운데 있던이 청년을 하나님이 만나시고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것을 직접 저도 보게 됐습니다. 한편 한 여자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결혼을 하고 남편은 전문직기에 종사하는 분으로서 재정적으로 안정이 돼 있고 자녀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좀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갔더니 암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신앙이 있어도 당황스러운 거는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통증이 있고 우리 가운데도 그런 아픔과 역경 속에서도이 자리에 와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들에게는 저희에게 주신 은혜에 천배나 만 배나 더 은혜를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분은 그런 하나님을 이렇게 매달렸는데 금방 해결이 안 된 거 같아요. 그런데 걱정을 안 했습니다. 집에 이렇게 치료를 위한 재정적 여유가 좀 있고 그리고 남편이 의사니까 걱정을 안 하고 뭐 어떻게 되겠지 치료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치료가 이게 뭐 1년 2년 가는 겁니다. 그리고는 점점 심해져서이 암세포들이이 내이 안쪽에 있다가 이게 피부 밖으로 이렇게 터져 나오는 지경까지 이분이 이르게 됐어요. 고통스럽고 힘든 가운데 이렇게 어느 날 이렇게 누워 있는데 어 그 가족 회의가 열렸습니다. 나가봤 침실에서 나가 봤더니 거실에 남편이 앉아 있고 애들이 이렇게 앉아 있고 당신 저기 좀 앉아라고 하더래요. 그래 앉았습니다. 아 큰애가 이제 결혼을 해야 되고 둘째는 아직 대학 다니고 있고 막내는 아직 어리고 당신을 위해서 더 이상 돈을 쓸 수가 없다. 집에서 나가라. 어 뭐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 같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미래를 보기를 했어요.
자녀들 키워야 되니까. 근데 아내가 더 충격을 받은 건이 아내가 너무 놀라서 속상하고 화도하고 해서 밖으로 나가는데이 자녀들이 아무도 말리질 않는 겁니다. 아빠를 말리든지 나가는 엄마를 붙잡고 엄마 진정하세요. 치료 받으셔야 해요. 아빠는 화가 나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면은 뭐 이렇게 해야 되는게 정상 아니겠어요? 근데 자식들이 안 말하놓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나 결혼해야 돼. 나 대학 가야 돼. 그 엄마가 심각한 심리적인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속기상해서 죽으려고 자기가 살던 곳에서 배 타고 뭐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 며칠을 가서 태평양 한 가운데 아주이 오지의 섬에 가서 자기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으려고 갔는데 죽으려니까 죽을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이 사람이 선택한 방법은 굶어 죽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림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냥 아무데나 가서 들어누었어요. 그리고 굶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아침에 어 어느 한 주변에서 이렇게 나무 산에서 나무를 해서 숱을 만들어서 파는 산을 타는 한 남자분이 지나가다가 숲에서 안 나는 이상한이 살 썩는 냄새를 막고 두이번거렸더니 한 사람이 이렇게 그 이렇게 버려진 채로 누워 있는 겁니다. 보통 산에서 사는 분들이 마음이 좋으시잖아요. 이분이이 아주머니를 거뒀어요. 내가 당신의 마지막을 챙겨 주겠다 하고는 그 옆에다가 설기설 얼기설기 이렇게 나무를 가지고 운 비슷한 걸 하나 만들고는 그 여자분을 거기다 놓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여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지나가는 사람이 이렇게 눕혀 놓고는 어느 날 이분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계속 비명을 지르다가 하나님께 비명 같은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면 하룻밤만 안 아프게 해 달라고 오래 살게 해 주세요도 아니고 치료도 기도가 아니고 그냥 안 아프게만 오늘 하룻밤만 좀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기절을 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기절을 했다가이 정신을 차려 보니까 해가 막 뜨는 새벽이었어요.
근데 동쪽 해가 뜨는 동쪽에서 어떤 피부가 하얀 번쩍 반짝반짝 빛나는 천사가 자기를 향해 이렇게 걸어오더래요. 부모 사문간에 오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이렇게 하더니 자기 옷을 이렇게 해치더랍니다. 그리고는 손을 자기 가슴에 이렇게 갖다 댔는데 통증이 사라졌어요. 한편 삶이 어려웠더니 한국 여청년이 천명 선교사를 가서 훈련을 받고 한 섬 오지섬에 반령을 받아 갔습니다. 하루 아침에 마을 촌장님이 오시더니 선교사님 저기 산 두 개를 넘어가면 한 사모님이 계시는데 형편이 참 기구하다고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몸은 아프고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 섬에서는 교인 그니까 하나님과 연결되는 사람이 당신밖에 없으니 가서 임종을 좀 맞아 달라고 부탁을 한 거예요.이 책은 2살이에요. 2살. 근데 직분이 선교사다 보니까 2살 여청년한테 촌장님이 와 가지고 주고 가는 한 사람에 가서 임종을 막 이렇게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어요. 자기도 사는게 힘들어 가지고 지금 하나님 만나려고 여기 왔는데 벌벌 떨면서이 친구가 기도를 철기도를 하고 새벽에 산을 넘어갔습니다. 보통 거기는 이렇게 해가 뜨기 전에 움직입니다. 너무 더우니까.
그리고 해가 뜨는 지점에 한 밀림 가운데 운에 도착했어요. 거기에 있는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그 기도드렸던 하룻밤만이라도 안 아팠으면 했던 그분. 그분을이 사람이 가서 만난 거예요. 왜 천사 갔다 쓸까요? 그분은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분들의 피부색이 검기 때문에 그분들이 볼 때 한국 여자들은 백인처럼 보이나 봐요. 피부가 하얀 천사가 자기장에 걸어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이 선교사가 영어를 잘 못 해요. 그래서 가서 보니까 한국말로 성경을 읽어 주고 있더라고요. 영어 쓰는 사람한테 한국말로 읽어 주니까 그 사모님 입장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도 불러 주는데 한국말로 그대로 불러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분은 노래도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는데 하늘의 소리처럼 들린 거예요. 아, 제가 그렇게 만나서 치료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이 선교사가 저한테 전화를 해서 와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거길 갔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제가 좀 찍었습니다. 잠깐 영상을 좀 보여 드리겠습니다. 치료 과정이 나오는 부분이 있으니까 조금 어떤 험한 부분은 해량해 주시고 아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는 표현이다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바세리 딴 나 아주 만족 반찬걸로 하자. 반찬고 반찬 반찬고 먼저 해야 돼. 반찬 여기 니다. 엄마야. 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이 세상의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포기된 사람, 버림받은 사람, 역경 가운데 죽기를 소망했던 사람이 그런데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이 두 여성이 저 태평양 끝에 오지에 밀림에서 만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거를 통역을 해 주는데이 여자분이 펑펑는 거야. 어, 이제 봉사 활동에 마치고 떠날 때 이분이 그 아저씨 옆에 있던 아저씨의 등이 옆에서 교회를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예배가 마치고 난 다음에 저에게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살고 싶어요.이 마음을 하나님은 아셨던 겁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이 최후의 시간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되풀이하여 찬양하는 일에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참미하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그 최후의 시간. 그 시간은 고통과 자기 연빈과 증후의 시간이 아니라 찬양과 감사와 자녀들을 향한 무활한 사랑으로 행복한 시간이라 그거예요. 우리 주님이 하신이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오늘 우리에게 행하실이 일을 보라. 우리 하늘 가족 여러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과 함께 오늘 그분을 바라보며 행복하고 찬양이 가득한 하루를 멋지게 사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함께 기도하고 하루를 열겠습니다. 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