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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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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월요일 · AM 6:00 · 새벽말씀 | 김정곤 목사 (7.20월)

새벽말씀: 성소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YouTube 자동 생성 자막을 문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명, 성경 구절 및 전문 용어에는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저희들의 아버지이 아침에 저희들을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을 더 허락하셔서이 아침 말씀을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접근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귀한 목사님 보내 주셔서 귀한 말씀 저들에게 준비하여 주신 것 참으로 감사드리고 또 그 말씀을 사모하여 이렇게 앞자리부터 모인 우리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겠사오니 주여 생명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로 모인 우리 성도들을 볼 때 참으로 하나님의 보좌에서 다시 만난 줄로 믿사오니 주여 오늘 우리 목사님께서 우리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콧방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께서 하신이 귀한 말씀이 오늘이 아침에 저희와 저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이 성경대로 이루어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벽에 혹은 나의 인생에 우리 주님을 닮아가고 따라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는 빛과 어두움을 저희는 조화롭게 이해하고 신앙 가운데 예수님의 삶을 그 빛과 어둠 사이에서 찾아가며 그렇게 새벽을 엿보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참 어려울 때가 많은 거 같습니다.이 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신앙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믿고 다시 한번 심내야지 하지만 이게 잘 안 될 때 감정에 의해서 의지가 흔들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 번에 집회가 마치고 난 다음에 보통 이제 이렇게 말씀 마치고 나면 뒤에서서 이렇게 인사를 나누시지 않습니까? 뒤에 서서 이제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머리가 이렇게 백발이신 한 큰형님 같은 장로님이 키도 그신 분이 제 옆에 소개하셨어요. 반가운 분이라 또 존경하는 분이라 장로님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런저는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한 여집사님이 다른 사람이 다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목사님 반갑다고 하면서요. 먼 거리를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교회가 예배 마치고 은혜 가운데 젖어 있다가 갑자기 큰 소리가 나는 바람에 다 저희들 이렇게 주목을 하셨습니다. 저는 당황을 했습니다. 저분이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도대체 저분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이제 기억을 찾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서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난 다음에 이분이 어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아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봐도 목사님 같다고 이게 칭찬일까요? 안 칭찬일까요? 저는 칭찬으로 그날 느꼈습니다. 당신은 언제 봐도 그리스도인 같다. 어 그 저는 굉장히 기분 좋게 아 그렇죠. 어, 이제 신앙한지도 한 60여년 되고 목회한지도 30년이 넘고 그러면 뭐 걸음거리도 목사처럼 그럴 테고 뭐 밥을 먹어도 뭘 먹고 안 먹고 지도할 때도 굳이 경건하게 보이는 단어 선택해서 내가 누군지가 이렇게 드러나도록 그러지 않겠습니까? 언제 봐도 목사갔다.

근데 이분이 저만 반가운게 아니셨어요. 옆에 있는 장로님한테도 똑같이 막 [콧방귀] 그래서 아유 그런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분이 뭐라 그러셨냐면 아 장로님 진짜 장로님은 참 언제 봐도 예수님 같으세요 그러셨어요. 저희 둘이서 있는데 아 PPT 중심으로 화면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언제 봐도 목사 같은 사람이고이 장로님은 교회에서 큰 소리가 나도 별 말씀 안 하시는 분이 그냥 그럴 수도 있지요. 결정적일 때는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뭐 이러는 분이에요.이 이 집사님이 저한테는 목사님 같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그 장로님한테는 야 언제 봐도 예수님 제 그날 저녁에 잠을 못 잤습니다. 이게 뭔가 잘못된 거 같긴 한데 인정하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언제 봐도 안식 교회. 토요일마다 성경 들고 교회 가고 자식들이 볼 때 아침 예배드리고 저녁 예배드리고 심할 때는 금식 기도도 자주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삶에서 아 저 사람 정말 안식일 교회 답도 못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근데 그날 저는 목사 같다는 말보다 아 당신은 언제 봐도 예수님 같다. 그걸 못들은 드는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이 말을 만약 내가 내 자식에게 들었다면 심판이 없겠구나. 그 집사님이야. 집회 가서 잠깐 만나고 그냥 잊어버리게 노력하면 잊혀지는 그런 존재지만 만약 하나님이 저를 봤을 때 너 평생 목사로 잘 살았어. 하지만 예수는 담지 않았어. 너 아우 이게 우리 인생에서 종종 어 빛 가운데 살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생에게 어떤 삶으로 우리를 이렇게 다가오시고 접근하셨을까? 어둠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으로 그들의 삶을 이렇게 이끌어 가시는 모습. 새벽빛같이 어김 없이 우리 삶에 나타나시는 하나님. 아, 저는 성경 편을 참 좋아합니다. 어김 없이 어김 뭐에 대한 어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어김 없이 새벽 빛같이 어둠을 조용히 밀어내는 급격하게 뭐 벼락치듯이 사람 기겁하게 우리에게 접근하실 때도 있으시겠지만 어떨 때는 새벽 빛같이 그저 잠을 깨서 여기 오는 것만으로도 땡큐인 저 같은 죄인에게 천천히 이렇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어김 없으신 근데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이 성소라고 하는 개념을 우리에게 설명하실 때 내가 너희 가운데 있고 싶어 그래서 그런 장소를 만드는 거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소가 처음 우리 사람에게 소개될 때는 진과 멀리 떠나서 장막이 세워졌어요. 원래는 이렇게 돼야 됐습니다. 12 지파 세 지파씩 사방에 있고 그 가운데 레위 지파가 있고 그다음에 목사님들이 사시고 그 한 가운데 성소가 있고 그곳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그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백성들이 사방에서 보면서 아 우리가 이렇게 피 가운데 사는구나 하는 거를 하나님이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소는 진에서부터 멀리 떨어지 그래서 오늘날 꼭 저 같은 내가 사는 진 집과 교회를 갈 때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게 정상으로 느껴지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용서받고 난 다음에는 다시 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떠나도 이게 규정 관래 관습에 의해서 아무렇지도 는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에 없어도 전혀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아. 정상적으로 보이는 안식일 교회.이 왜 그랬을까? 아시는 대로 똑같은 시간에 다른 종류의 예배가 드려졌습니다.이 급격한 우상숭배가 아니었던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즉 뭐 이런저런 종파에서 혹은 하나님을 모르는 삶에서 나를 이곳으로 구원하신 출애굽해 주신 하나님을 눈에 좀 볼 수 있게 해 달라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당시 종교적 관습과 습관에 의해서 그래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너희들이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이런 모습일 거야 하고 그들이 평생

이렇게 익숙하게 접해 왔던 종교 방식으로 그저 나타냈을 뿐이었습니다. 우상숭배라고 우리 지금이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단지 자기 방식대로 내가 익숙한 방식과 편한 방식대로 목사님도이 목사님은 말씀을 진리를 전한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나하고 친하냐 혹은 내 스타일이냐 그거에 따라서 미국은 교회 옮기기가 쉽지 않으시죠? 한국은 쉽습니다. 한 버스 오선에 교회가 열몇 개가 있으니까요. 그러면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야, 너희들 이런 상태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수가 없다. 죄와 의가 함께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진과 멀리 떠나서 야, 이거 참 속상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는 오늘날도 이러지 않나? 완전히 종교적으로 떠나진 않지만 진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삶과는 교회 혹은 하나님 혹은 하나님 적이 이렇게 좀 거리감이 있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으로 모셔올까를 생각하다가 그 당시에 세상의 삶과 상관없이 새벽에 하나님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그런 종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장막의 사람들. 첫 번째 무료는 성경 표현 그대로 헌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한글로 헌신이라는 단어를 찾으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한 즉 비교적 종교적인 그러나 진리와 조금 섞여 있는 그런 어떤 종교적 삶에서 가담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 편에서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은 헌신했다라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뭔가를 도네이션을 크게 한다든지 자신의 삶을 선교적 삶으로 내던다든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죄와 자신을 분리하고서 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고르셔서 내가 너희들에게 성소를 맡기겠다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레위인이 성소봉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악과의 사이에서 자신이 어느 편에 서는지를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그것이었어요. 하나님은 그들을 헌신했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는 요즘에 아무것도 꽃사 헌신을 붙입니다. 하다 못해 무슨 무슨 집회 끝나고 날 때도 헌신 예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진짜 헌신은 하나님 편에서 오는 거였어요. 단순했습니다. 두 번째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소를 짓고 싶은데 기술 좋은 사람을 하나님이 택했다라고 성경에 기록되 있지 않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브사렐과 오홀리암아 아시는 대로 이게 기능직 전문인들로 보입니다. 마음에 원하는 사람, 지술 좋은 사람, 건축 경험 있는 사람,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마음에 원했다. 오늘 아침에 마음에 원해서이 자리에 오셨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성소의 사람들로 구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두신 사람들은 마음에 원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 건축 경험 있고 기술적인 사람에게 건축 막히는 것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로 생각해 보면 기술직 사람들은 저 소득층 혹은 어 이렇게 계급으로 따지면 상위 계급이 아니었던 건 분명합니다. 최상위 계급 성직자들 뭐이 유대인뿐만 아니고 저쪽 애굽 문화도 성직자가 최상위 그다음에는 왕족들 뭐 그다음에 귀족들 그다음에 뭐 뭐 이런저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접받은 역 시간적 역사가 그리 길이지 않습니다. 인류사 그런데 지금부터 몇 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기술직 빼놓고는 어디를 봐도 이름 한번 들어 본 적 없 오홀리아 그런데 그들의 특징이 마음에 원했다.

시켜서가 아니고 아 수석 장로님이시니까 그죠 도와주십시오. 아, 장로님 수십년 동안 이렇게 존경받고 뭐 학유도 있으시고 그러니까 이거 좀 도네션 해 주십시오. 이런게 아니었어요. 야행이 한다 그러면 먼저 목사님 찾아가서 목사님 제가 뭘 좀 도와드리면 좋겠어? 43년이나이 일을 반복해 오면서 목사님들도 이제는 장로님들도 이제는 관습적일법 한데 여전히 마음에 원하는 사람들 아이 새벽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길 원하는 한 분 한 분을 하나님이 성경에다가이 성경 그대로입니다. 마음에 원하는 사람. 그리고 제가이 표현에서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음의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여인들. 이때 당시에는 사람 숫자 때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애들, 노인들, 여성들은 다 아웃이에요. 여기 있는 분들은 숫자 세면. 손석코 1번. 저도 카운트에 들어갈까 말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이 시대에 보통 성경 표현상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할 때는 하나님과 이렇게 관련이 됩니다.

이런 시대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슬기로운 여인들. 아, 장막의 사람들이 성소의 사람들이에요. 이들이 진 멀리 떠나 있던 성소를 진 가운데로 모셔오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예요. 모세 같은 위대한 사람만 그렇게 그 일을 한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잘 보지 않으면 눈에 뛰지 않는 그런지만 묵묵히 헌신하는 마음의 원함을 여전히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이 푸른 그리고 이런 시대에 마치 모세처럼 마음의 감동, 성령의 감동을 받는 슬기로운 어머니들이 자리에 계신 어머니들이요. 자매들이요 마음의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여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모세입니다. 그 유명한 기도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를 포기하시고 저 대신에이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서서 많이 듣던 길도 아닙니까?이 이 사람들 때문에 성소가 진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내 삶의 조심으로 성소가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 출애굽하는 것은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이 아침에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출애굽의 완성은 여호와의 임재하심이었습니다. 가난에 가는 것이 완성이었다. 모세 실패했을 것이고 여호수와 갈렙은 다 실패 아니었던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 가운데 그 뼈를 땅에 묻었지만 출애굽의 완성은 여호와께서 내 삶의 중심에 들어오는 거였어요. 친히 보는 것이었습니다. 먼 훗날 예수께서 친히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셨어요.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렇게 기도하며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어떤 죄인 목사에게는 주께서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희망이고 비친 것입니다. 아 그분이 기도하시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이런 기도 아버지 저 용서해 주세요라는 기도 말고요. 아버지 내 아내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 제 남편을 좀 긍휼히 주십시오.

아버지 예. 저 밖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 자식들 우리 자녀들. 제가 70년 80년 하나님 믿었지만 헌신도 많이 했지만 저 다 잊어버리셔도 제 새끼를 살려 주십시오. 이게 부모맘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러셨다. 이게 뭘 하는 거였냐면 모세처럼 하나님이 저 멀리 있는 그러면서도 안식을 지키고 교회 지어놓고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들어오시고 그 삶의 중심이 되는 과정에 어 예수님이 옛날에 표상으로 보였던 그 모습을 다시 보이신 겁니다. 그 죄많은 곳을 내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교회를 이렇게 한 발 멀리 서서 보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교회의 타락을 마치 남의 일처럼 교회가 타락하면 내가 타락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은 시대에 여러분과 제가 삽니다. 다물며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치어 해도 내 삶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제는 아프지도 않아요.

그래 너 인생은 너 인생이야. 이게 미국식 방식이야. 예수님께서이 땅에 계실 때 성전을 우리 삶으로 중심으로 가지고 오시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죠. 어 정결케 하셨습니다. 예배 방식에 복잡하고 이게 관래적이고 이게 규정적인 이런 것들을 많이 없애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셨으면이 큰 소리를 내면서까지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게 다 뭐냐? 성전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구별하는 과정이었죠. 그렇게만 하신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무시받고 철학적으로 가치적으로 혹 경제적으로 이게 이렇게 선을 그어진 그런 한 노머니의 혼신을 예수님께서는 주목해서 신앙의 중심으로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이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이렇게 내 모시는 것만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인 정신과 하나님의 주목하시는이 사랑을 이렇게 끌고 들어오셨습니다. 교회 안으로. 굳이 규례대로 안식일마다 교회로 가셨어요.

훗날 이게 율법주의로 오해되고 외도될만큼 의도적으로 주님이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건 훗날 저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교훈일뿐만 아니라 실제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내 삶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으로 와야 되는 것에 대한 모본이셨습니다. 그리고 실제의 봉원은 그 자신이셨습니다. 너희 지금이는이 교회 포로 지금 네가 믿고 있는이 종교 방식 신앙의 어떤 습관 혹은 이렇게 새벽에 이렇게 나오는이 헌신적인 어떤 결심까지라도 내려놓고 자기 육체를 가르쳐 다 받쳐서이 사람들을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신 우리 아버지 그 삶에 결국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전을 우리 마음에 모시는 성전의 주인 되신 그분이 내 삶의 가운데 계시는 은혜를 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봉원이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면 내 의지와 내 의도에 의해서이 새벽이 하나님 앞에 나오면 이런 삶이 가능할까? 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이른 아침 순종한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하여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저희들에게 주고 계셨을까요? 나와 이렇게 가자. 이렇게 훈기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진간 멀리 떠난 장막이라는이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떤 은혜가 있었을까? 종교 주석에 보면 또 부주 선지자에 보면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이거는 모세를 배려한 긍휼이었다. 제가 이게 뭐지? 싶어서 이렇게 딱 들어가서 봤습니다. 이게 뭘까요? 모세가 지금 나이가 최소 80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보자 하면 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되는 거예요. 지금 저희가 여기 야행에 와서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것도 지금 방이 1층 배정됐으면 좋겠는데 모세는 하나님 만나려면 시내산 정상을 올라가야 되는 겁니다. 그것도 가면 한 번 가면 40일을 먹는 것도 없이 마시는 것도 없이 버텨야 돼. 조복음자 그렇게 하라 그러면 여러분이 그 여기 서부 야행애를 오기 위해서 김정근 목사 40일 동안 산에 꼭대기 올라가서 금식 기도하셔. 그럼 제가 그 다른 분을 모시죠요. 뭐 이러지 않겠습니까?

모세 입장에서 봤을 때 힘든 충성과 헌신이었을 것 같다.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하나님 믿으면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지. 내 무릎 관절이 연골이 다 나가도 가야지. 내가 어제 10시안을 차를 타고 왔어도 새벽도 가야지. 와서 앉아서 좋을지 언정.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예배라고 말씀 안 하시고 고마워. 한 번, 두 번 이거면 됐어. 이제 내가 내려갈게. 그거였던 거야. 모세 할아버지가 힘들까 봐. 전 그렇게 생각하니까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거예요. 아버지 마음이 이거 맞아. 고 죄가 있는 곳에 들어갈 순 없고 그래서 산꼭대게 해놓고 구름으로 둘러싸서 너희들 올라오지 마 모세만 올라와 이렇게 해서 만났는데 모세가 힘이 들고 40일 동안 말씀 받아잡고 비틀거리고 보다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그러면 내가 내려갈게 하고 내려오셔서 진으로는 못 들어오시고 조금 멀리 떨어진데 형편 없는 텐트 쳐 놓고 뭐 무슨 금으로 만든 텐트도 아니었어요.

처음에 장막은 그냥 그래놓고 거기서 만나 주시는 우리 아버지. 또 다른 편이 이런게 있습니다. 모세가 산에가 있는 동안에 40일이 걸리니까 그에 밑에 있는 백성들이 아까 말한 엉뚱한 짓을 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모세하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누가 흔들릴 수 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아시고 모세를 그들의 눈에 보이는 곳에 그래서 그들이 지도자 없는 것처럼 모세도 올라가서 이제 안 내려옵니다. 이런 말 안 나오도록 모세가 백성들을 가까이서 케어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 만든게 그 진에서 멀리 떠난 장막이었어요. 저 같은 죄인 목사가 볼 때는 하나님이 죄 있다고 너 나하고 떨어져 이렇게 나를 무시하고 멀리 둔 그런 입장이 아니고 가까이 할 수 없지만 최대 가까이 와서 배려하고 베풀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사람의 걸음도 헤아리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죠. 힘써 여호와를 알죠.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같이 조용히 이렇게 밝아오는 어김없나니 우리에게 임하시리라.이 말씀이이 일주일 동안 우리 삶에서 앞으로의 남은 우리의 인생에서 성경대로 이루어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 이 사진을 아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이 사진은 한국의 소록도라고 하는 한센병 나 환자들의 어 진성 환자이 전염되는 환자들의 격리된 장소입니다.

그런데이 소록도에는이 진성 환자들이 격리가 되지만 그들 중에 어떤 어머니들은 그 안에서도 가정 생활이 이루어지고 임신을 합니다. 추산을 하고 보니까 대부분은 전염이 돼요. 그래서 자녀들도 이렇게 한샘병에 걸리는데 어떤 경우에는 자녀들이 기적처럼 건강한 경우가 종종 있나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격리를 해야죠. 부모님은 한생병이고 자녀는 건강하니까 격리는데 아이들이 미성년 나일 때는 그렇다고이 육지로 다시 보낼 수 없고 가까이 두는 거예요. 진 멀리 장막 있는 것처럼. 그래서 소록도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육지에서 격리된 한샘병 환자들의 장소지만 그 안에서 또 건강한 아이들은 또 격리가 돼요. 근데이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얼마나 자식에게 보고 싶고 아빠 엄마가 보고 싶겠습니까? 저 사진이 뭐냐면 왼쪽은 아이들, 오른쪽은 아빠, 엄마들. 일주일에 한번 면하는 거예요. 서로또 안에서. 수탄장이라는 여의도 광장처럼 수탄 이름만 들어도 벌써 한이 매친 거 같은 광장입니다. 일주일 한번 이제 건강한 애들하고 병걸린 엄마 아빠들이 서로 이렇게 쳐다보면서 이거 이거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아, 제가 저 사진 보면서 마음이 참 꼭 우리하고 하나님 같은 근데 가운데 보면 전기 철성 같은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교육되어진 방법대로 질서를 지킵니다. 넘어가면 안 돼요. 그 교육이 힘이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넘어가면 죽는다. 넌 건강하지만 이거 넘어가면 너 죽어. 그거 아니겠습니까? 나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넘어가면 안 돼라는 교육이 편하고 익숙하고 조리했어요. 지수를 지킵니다. 근데 반면에 오른쪽 사람들은 어떨까요?이 이 사람들도 넘어가면 안 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유는 달라요. 애들이 아이들은 내가 살기 위해서 안 넘어갑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내가 넘어가면 누가 죽는다? 내 새끼가 죽다. 부모들은 질서를 지키는 이유가 교육을 받은 이유가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살리기 위해서.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어느 날 저희들과 거리를 두실 때 그건 하나님이 거룩해서 더럽혀 주실까 봐가 아니고 혹시 우리가 다치고 죽을까 봐.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리를 두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속상하죠.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이게 이해가 돼요. 지켜봐 줘야 될 때가 있고 개가 스스로 일어나야 될 때가 있고 눈물을 스스로 닫고 거칠게 닫고라도 하루를 버텨야 될 때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 아버지의 마음에는 평생 살아야 할 내 삶을 봉헌 헌신해야 할 이유를 품은 거린 거예요. 나 자들은 삶에 희심희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요. 그런데도 버티고 살아내는 이유는 내가 살아야 될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이 잔 옮겨 주세요. 야 예수님이 하나님한테 그런 기도 그것도 세 번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위로 올라가신 이유는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벽 가운데 섰을 때 아시는 대로 성경에 보면 흑암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름이 덮히고 흑암 가운데 있어서 뒤에 따라던 애굽군인들도 전진을 하지 못하고 이런 가운데 아 참 그런데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돼 있어요.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이제 새벽에 뭔가 일이 일어나서 애굽 군대가 다 전멸하는 기록인데이 기록 앞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셨다. 이거 그냥 평범한 성경절이었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은혜의 성경절이었습니다. 홍해 한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군대 사이에 하나님의 구름등과 불기둥이 가운데 존재했습니다. 흑암 가운데였지만 그 가운데에 계시던 그분이 애굽 군대를 보시고 새벽에 여호와의 새벽 임재 오늘 아침이 새벽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보시고 혹은 저희를 쫓아오던 그 많은 세상에 그것들을 보시고 끊어내 주시기를 우리를 를 구원해 주시기를 임재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은혜 종종 거리를 두시는 것도 은혜. 가까이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도 은혜. 혹시 지금 하나님과 거리감이 있으시다면 신학의 연수와 상관없이 오늘 아침에 마음이 어지럽고 평화롭지 못하다면 그럼에도 하나님이 적정한 거리를 두시고 나를 여기까지 이끄셨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놀라운 경험과 감사함으로이 자리에 계시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며이 시간이 임재를 경험하는 새벽이 되기를 그 기도의 순간들이 되기를 우리 아버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자신을 바쳐서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모본을 통해서 표상하면서까지라도 그렇게 하셨던 이유가 뭘까요? 어, 성경은 특별히 모세는 그걸 정확하게 이해했던 거 같습니다. 자식들이 항상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성경 표현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행복이란 단어가 21세기 형, 미래형 아니면 현대적 언어가 아니었다는 걸 저는 성경에서 발견하면서 너무 좋아요. 두 천 년 전에 마치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고 인간들을 시키는 대로 따라해야 하는 그런 군주와 백성 사이의 그런 어떤 신앙이 아니라 그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이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다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어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성산, 집, 나이의 재단이 성소론에 굉장히 중요한 제가 주목해서 봤던 것은 그 이유가 뭐냐? 하나님이 굳이 뭐 교회를 짓고 이걸 내 집이라고 말씀하시고 이런 이유가 뭐냐? 목적이 그들을 그곳에서 뭐 하게 하기 위해서요?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장막에 그들이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헌신하는 사람들, 마음에 원하는 사람들, 마음의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여인들, 그리고 모세처럼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이이 새벽에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 저는 시골 출신이었습니다. 근데 이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36대학 신학가를 입학하기 위해서 서울을 갔습니다. 저는 서울은 다 좋은데 줄 알았습니다. 이제 학생 전사를 나갔는데 서울시내에 천막으로 지은 교회가 있더라고요. 80년대 얘기입니다. 야, 저는 서울은 미국은 다 좋은 것처럼 서울은 다 좋은 데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가 보니까 이거에 한 한 1분 10 정도 될 요만한 한 3 40평짜리 천막 교회에 160명이 와왕 저는 신학가 2학년 때였는데 어른 100명 학생 60명 옛날에 학생반이라는게 있을 때였습니다.

아 지금쯤 여름쯤 되면 냄새 지독히 나고요. 선풍기가 두 대가 있는데 한 대는 어르신들 할머니 앞에 놓고 한 대는 목사님 앞에 나머지는 알아서 땀 닦아가면서 예배드리고 냄새나고이 그 정말 환경은 그랬는데 얼마나 [콧방귀] 신실한 그리스도 바닥에 무릎 꿇고 예배드릴 때였어요. 안식일 학교 9시 반부터 어르신들 한국에 기억나십니까? 저 어릴 때이 무릎 꿇고 예배드리다가 무릎 흐트러지면 집사님들이 저 이렇게 해서 끌고 나가셨어요. 좀 떠들었다 그러면 엉덩이 몇대 맞고 아 여기가 그런 이제 아 뭐 그래도 이제 성도님들의 신앙이 너무 좋으니까 함께 열심히 신앙을 했습니다. 학생들도 하고 워낙 어렵고 힘든 시절 학생들이 헌금될 100원 200원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그 36대학에서 그렇게 가려면 차를 버를 두 번 갈아타는 보통 교통비가 한 4, 500원이 들었습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근데 아이들이 100원 200원 헌금을 못 냈는데 목사가 차 타고 다니면 돼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불람산을 넘어갔습니다. 산을이 삼국대학 뒤에 산이 불람사 넘어가면 서울 중개동인데 그 교회가 서울 중개동 교회였어요. 그 그 넘어가면 한 한 시간 걸립니다. 넘어가서 이제 아이들 앞에 떳떳하기 위해서 저도 이제 그러고 갔습니다. 가서 재밌게 보냈어요. 근데 어느 날 안식일 날 봉사를 마치고 제가 기수에 들어왔는데 저와 같이 방 룸메이트가 그 그 친구도 서울에 좀 큰 교회 지금도 큰 교회입니다. 거기 학생 전사를 나가는데 오더니 저한테 봉투한 날 이렇게 흔드는 거예요. 이게 뭔데? 그랬더니 이렇게 꺼내 보니까 수표 한 장이 나왔습니다. 100만 원. 그때 대학 한계 등록금이 86만 원 시절이에요. 근데 100만 원짜리 수표를 흔드는 겁니다. 신학과 2학년 학생이. 그 이거 뭐냐? 그랬더니 우리 교회 장로님이 나 수고한다고 용돈 주셨다고. 제가 그날 저녁에 잠을 못 잡습니다. 똑같이 봉사하는데 이게 이게 이제 비교가 되면 이제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똑같이 봉사했는데 난 행복했는데 갑자기 봉투를 보니까 너무나 분행한 거예요. 신앙. 그래도 밤새 이제 기도하면서 호 저기 오랫번 가서도 마음이 정리가 안 돼 가지고 호수까지 올라가서 철하기도 하면서 마음을 정리를 했어요. 난 착한 사람이야돼. 나는 모태 교인이야. 나는 대주고기 안 먹고 난 안식 교인이거든. 앞으로 목사 돼야 되거든. 구원받아야 되니까 이거 감정적인 욕으로부터이 시험을 이게 대쟁투를 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승리를 하고 내려왔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일주일 지내고 다시 학생 어느 날 이제 토요일 저녁이 됐는데이 친구 그날 저녁은 밥을 안 먹는 겁니다. 그때는 밥을 굽는 신학생들이 꽤 많았습니다. 고학하는 신학생도 있고 근데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만 해도 땡큐인 시절인데 뭐 피자 시켜 먹고 이런 건 말이 안 되는 시절이었죠. 근데 밥을 안 먹기래도 왜 오늘 하 종일 피곤해서 밥을 먹어야 될 텐데 왜 안 먹어 그랬더니 씨 웃기만 하는 거야.

뭐 그런 밥을 먹고 일요일 아침에 이제 축구하고 그다음에 아침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 친구도 밥을 안 먹는 겁니다. 아 그 제가 이제 뭔가 또 있다서 찔렀습니다. 뭐냐 그랬더니 우리 장로님이 그 용도지 장로님 말하고 또 다른 장로님이 오늘 저녁에 식사 초대를 했대요. 근데 어디로 했냐면 워커일 호텔에서 식사 초대. 여러분 한국의 워커일 아십니까? 이거 미국에도 워커일 있죠? 80년대 워커일은 대단한 호텔이었어요. 거기 부패에서 식사 초대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얘가 그 가서 많이 먹으려고 전달부터 굽는 거예요. 어, 이해되시나요? 저는 이해가 그날 충분히 됐어요. 그 한 번도 못가 본 그 거기 간다니까 토요일 저녁부터 굽는 거예요. 근데 행복한 굶음. 야, 저는 마음에 안 하나도 안 행복하고요. 왜 그랬냐면 제가 나가는 교회 교인들은 한 번도 그때까지 저한테 밥 먹자고 안 하신 거예요. 여러분 교회 돌아가시면 모른 척하고 젊은 목사 한번 불러다가 밥 함께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저희 그때 당시의 교인들은 진짜 살기 힘들어. 천만 오적하면 워커일은 아니어도 그러니까 이제 교회 갈 때마다 부담이 되는 거예요. 저 장로님 신앙 좋은 거 같은데 왜 밥을 안 주지? 뭐 이러 저 집사님은 차는 좋고 타면서 왜 나한테 밥 먹찬 소리를 한 번도 안 하지. 이런 별색 야, 참 이런 사람이 목사된 거 보면 하나님 참 좋으신 분이에요. 그러다 생각이 어디까지 발전을 했냐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나 보다. 그래서 밥을 안 주나 보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목회하면 될까? 안 되나 보다. 그러면 목회 안 할 사람이 신학과 계속 다니면 돼? 안 되지. 생각이 거기까지 발전을 해서 제가 어느 날 자퇴를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자태를 결심을 하고 이제 저기 그 마지막 안식일날 교회를 갔습니다. 교회를 갔는데 교인들이 오셔 가지고 행복한 안 한식일입니다. 하나도 안 퍼 멀쩡이 그리스도인이고 안식 교인이고 주의 종인데 밥한기 때문에 사람이 이렇더라고요.

우리 삶의 중심에 누가 계시냐에 대한 엄밀하고 분명한 준놈한 심판이었던 거 같습니다. 겉으로 종교적이고 누구보다도 율법적이고 완전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금식도 엄청 많이 했어요. 철기에도 타고 근데 죄인이었어요. 저게 기가고 있는데 안식 시작 바로 직전에 그때 당시 아저씨 지금 생각하면 40대 초중반되는 부부가 저한테 오셨더니 전도사님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아 나 시간 많다고 이분들이 놀나셔 가지고 아니 우리가 무슨 말 할 줄 알고 혹시 저녁 초대하는 거 아니냐 그랬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야 저는 그 교회 1년 봉사하고 마지막 식사에 구원을 받았어요. 그 식사기로 전 목사가 된 거예요. 그거 만약 그 저녁을 식사 대전 못 받았으면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됐을지.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봉사하고 이제 오후가 학생방 다 마치고 났더니 그 집사님 부부의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 한삼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 오더니 전사님 가시죠. 그래서 어 가자 그랬더니 학생방 다 오래요. 어 나만 부른 거 아니야? 했더 아닌데요. 학색반 60명 다 부르면서 저는 끼워서 그래도 좋았습니다.

제목은 식사 초대니까 명분을 저 스스로 크게 가는데 제가 교회를 오는 그 불람산을 넘는 그 길을이 아이들이 쭉 따라 올라가는데 마을이 다 끝나고도 계속 산으로 올라가길래 너희들이 지금 어디 가니? 그랬더니 저희 집 가요. 야 나 매일이 교회 이리 오는데 마을 다 끝났잖아. 그랬더니 아니에요. 저기가 우리 집에요. 하는데 보니까 비닐하우스가 하나 있는 거예요. 아, 저는 그때 서울에서 장막 텐트 쳐 놓고 예배드리는 교회도 처음 봤지만 비닐 하우스에서 사시는 분도 처음 봤어요. 요즘처럼 특용 작물 돈 벌기 위한 하우스에서 잠깐 자는게 아니고 가정 집을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칸을 두 개 막아 놓고 앞에는 싱크돼 있는 부엌, 중간에는 아이들 방, 끝은 안방. 아 거기 60명이 꽉 들어갔습니다. 어 제 목회 최고의 식사 일품열이었습니다. 메뉴가 뭐였을까요? 라면 한 그릇이었어요. 근데 어르신들 기억나십니까? 옛날에는 라면도 비싸서 현금으로 사 먹어야 되니까 라면으로는 많은 사람은 먹일 수가 없어서 라면은 몇 개만 하고 나머지는 국수 이만큼 큰 통에다가 라면 스프 맡겨 놓고 향만 나게 하는 그 먹다 보면은 불어 가지고 숟가락으로 퍼먹는 그 한 그릇이었는데 그래도 좋았습니다. 저한테는 구원이었거든요.

사랑을 받는 그 너 아무것도 아닌 죄인이지만 그래도 내가 좋면 나도 네가 좋아 같이 가자. 그런 마음이 이렇게 들었어요. 그 맛있게 감사히 막 먹고 있는데 이분들 그러시더니 저 앞에 요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설명을 하시는 겁니다. 전도사님 저희가 우리 아이를 잘 이렇게 같이 이렇게 케워해 주는 전도사님한테 참 고맙고 감사해서 식사 대접을 한번 하고 싶었는데 전사님은 혼자 부르면 안 올 것 같고 전 혼자 불러도 잘 가는데 혼자 부르면 안 올 것 같고 학생반 다 부르려고 하다 보니 일이 커졌다고 그래서 60명을 먹이려고 하다 보니까 일이 커져서 준비를 세 달 전부터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세 달 전부터 아무도 난 밥 안 준다. 목회를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 이런 고민하는 사람이 근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목사님 아 전사님 저희가 저 시골에 살다가 아이들 3교육 한번씩 시켜 보고 싶어서 서울을 올라왔다고 근데 그때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 학비 낼 때였거든요.

일주일 벌어서 애들 학비 내고 나면 누구를 대접하고 우리가 지금 사는게이 비닐하우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춥고 이런데 우리가 사는 우리 집에 이것도 집이라고 누굴 데리고 너무 창피하고 그래서 마음은 이만큼이었는데 기도하고 기도하고 용기를 해서 식사되라 저 같은 죄인 목사는 그 좋은 거 뭐 한 끼 못 먹는다고 좋은 옷 못 입는다고 라고 그러고 사는데 말입니다. 어 그러시면서 이분이 이렇게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맙다고 오히려 저한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말을 한 마디도 못 하고 그냥 멍하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여집사님이 이렇게 무릎으로 저한테 이렇게 이렇게 오시더니 제 귀에다 되고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콧방귀] 전도산이야. 그래도 전도사님거는 떡나라면이에요. 어 가래떡 이렇게 썰어 가지고 라면에다 떡 좀 넣어서 또 이렇게 포만감을 이렇게 탄수화물 더 이렇게 섭취할 수 있도록 근데 가래떡을 60명 어치는 살 수가 없고 그러니까 이분 요만큼만 어디서 구해 가지고 주의 종이라고 제거 그릇에다가 만숨겨 놓고 라면 위에 덮어놔 제가게 뒤져 보니까 진짜 떡 몇 조각이 있어요.

야, 저는 성소라는게 비닐하우일 수도 있겠구나. 원래 성소는 막 금으로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저는 그날 그 가난한 비닐 하우스 안에서 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게 이런 거구나. 내가 일주일을 내가 이미 와서 크 고생하고 뭐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이 자리에 이렇게 올 수 있도록 제가 그날 그 비네서 안에 앉아서 이렇게 바크 이렇게 보는데 빛이 우리 지난날 그 어둡고 힘들었던 터널 같은 인생들 그 순간들 하나님이 다 지켜보시고 때로는 어느 정도 거리에서 때로는 산을 내려오셔서 때로는 [콧방귀]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셔서 때로는 내 마음에 온 세계가 되어 주셔서 함께 읽어 보실까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 주여 주는 항상 우리의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이 새벽에 우리가 있는이 자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안식처. 새벽빛이 천천히 우리 삶을 따뜻하게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내 평생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들 그 치흙 같은 비닐 하우스 안에서 절망하던 나에게 빛으로 다가오신 그분을 성소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오늘 아침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콧방귀] 조용히 우리 예수님처럼이 새벽에 기도로 우리 삶을 깨우겠습니다. 조용히 개인적으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함께 계셔 주십시오. 저 안에 계신 하나님을 저희 가족 안에 계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귀히 만나게 해 주십시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개인 기도하시고 마치는 대로 우리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습니다.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