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WCKCM Logo

WCKCM

2026년 7월 19–26일

라이브스트림으로 돌아가기
KM Adult
7월 23일 목요일 · AM 6:00 · 새벽말씀 | 김정곤 목사 (7.23목)

굴 속의 영성: 다니엘과 우리 삶의 소망

YouTube 자동 생성 자막을 문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명, 성경 구절 및 전문 용어에는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เฮ 말씀 없이 감사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님 저희이 아침에 불러 주시고이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 뵙게 하신이 크신 은혜가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 저희들에게 이제 오셔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시고 성령의 뜨거운 역사하심이 우리 마음 가운데서 불붙듯이 일어나서 우리가 가진이 사랑을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만큼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님이 시간 주님께서 세우신 말씀의 사자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겠사오니 사자의 그 모든 생각과 또 감정과 그 입을 주장해 주셔서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서 우리의 마음이 다시 한번 오순절의 경험을 하는이 귀한 시간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님 저희들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다 치우고 이제 주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심령을 채워 주시고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되게이 시간 다시 한번 역사 아, 미래가 있을까?

우리에게는 미래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어, 한번 예배드릴 때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는요 등단하신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다 공감하시겠지만 이렇게 올라오면 다 이렇게 눈이 이렇게 모습이 보입니다. 특별히이 말씀 중에 열심히 들으시는 그리고 이렇게 긍정적인 사인과 이렇게 호감을 보이시는 말씀의 은혜를 받고 계시는 표정을 보면 설교를 하면서도 이렇게 아 하나님 역사하고 계시는군요라고 하는 어떤 기도 응답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예배 때가 그랬습니다.이 이 말씀을 전하는데요 근처에 앉아 있던 한 청년이 저를 너무너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저 쳐다보는 겁니다. 아, 지금 이렇게 마음 설교를 전하면서 아, 하나님이 혹시이 청년 하나를 위해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뭐 이런 이제 개인적인 기도 제목이 생길만큼 그 청년의 반응은 영적이고 좋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언제서부턴가 한 설교의 한 영혼 이렇게 이제 기도하면서 설교를 준비를 하거든요.

어떤 선배 목사님이 평생 7천번 설교하셨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한 설교에 한 명만 구원을 받아도 괜찮겠다. 그 청년이 그날 그런 저한테 이렇게 존재감을 주는 청년이었습니다. 예배가 마치고 가서 만나면 기도라도 해 줘야 되겠고 근처를 갔는데 아니나까 그 청년이 저기 다가왔습니다. 그리곤 놀랍게도 선물을 하나 이렇게 줬습니다. 야 이거 예배 시간에 은혜롭게 예배도 잘 드리고 선물도 주다니 하나님 땡큐 하고 이제 선물을 받았는데 그 선물이 이거였습니다. 제게 누굴까요? 접니다. 제가 순식간에 섭득했어요.이 청년이 설교 시간 내내 저를 반짝반짝 쳐다본 이유가 말씀을 열심히들은게 아니고에이 청년 좋은 청년입니다. 지금도 헌신적이고 해외 선교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에요. 근데이 청년이 자기 전공을 따라서 저를 주목한 거예요.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행동의 특징 그다음에 뭐 생김새 이런 것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걸 이제 그림에 옮기는 그런 이제 어 공부를 하는 청년이었는데 그가 보인 반응과 그의 주목이 그날 제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회개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이 시대에 무엇을 주목하고 있을까요? 내 마음이 호위적이다. 그것과 별개 문제입니다. 내 마음이 종교적이고 신앙적이고 교회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다라는 것과 내가 지금이 사회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뭘 주목하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인 거예요. 한 하나님의 사람이 굴 속에 있었습니다.이 이 성경에서 굴이라고 하는이 이미지는 죽음, 장사지냄, 도피처 뭐 이런 의미로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한 굴 안에 인간적으로도 거의 한 개 지혜 도다른 다른 80대에 이런 일은 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이 불타는 걸 봤습니다. 그냥 성전이 어렵다. 교회가 위기다. 뭐 이런 정도가 아니고 그냥 그대로 주지 않는 걸 봤습니다. 18에 이민을 왔습니다. 뭐 부모 따라 뭐 이렇게 유학이 보장된 이민이 아니라 부모 죽는 걸 본 기억을 가진 청년으로서 포로로 이민을 강제 이민을 당했습니다. 2주라고 표현한게 더 낫겠죠.

그리고 82 나이 될 때까지 정말 어렵게 어렵게 어느 날 새벽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의 현실은 좀 안정이 되고 뭔가 좀 이렇게 이민생활 60년 정도면 좀 이제 은행에 잔고도 좀 있고 자녀들도 좀 잘 돼서 이제 별 노후가 염려 없이 살만도 한데이 사람은이 나이 80 중반이 될 때까지 여전히 굴 같은 삶에 있었습니다. 굴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삶. 정치적이고 종교적으로 생존 경쟁에 노출되셨습니다.이 사람이 누굴까요? 우리가 종료 설교할 때 등장하는이 사람은 마치 18의 뜻을 정해서 청춘에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다니엘요 앞장에 있던 내용과 바로 얼마 있어 붙어 나오는이 사건이 워낙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에 어 뭐 젊은 날에 폐기로 사자굴에 던져줘도 믿음을 지키는 월핏 그렇게도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때 그의 나이는 80대 중반이었어. 이미 18에 포로로 잡혀와서 수십년 동안 그 삶에 애완이 쌓인 깊은 주름을 가진 그 노장 이제 좀 편하면 좋겠는데 다시 굴에 던져줬습니다.

아 주변에는 의도적인 살의 가득차 있었고 던져진 굴에는 외로움이나 죽음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 즉각적인 위협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곳의 홀로 굴 속에이 사람이 과연 굴이라고 하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이미지를 극복해 낼 만한 사람이었을까요?이 이 시대의 전반적인 팽배한 종교적이 패배감 혹은 무능력감 혹은 속상함 이런 것들을 극복해 낼 만한 믿음이 나의 80중반의 일은 나에게 있을까? 그거는 뭐 저 후배들, 저 젊은 목사들 해야 될 것 같은데 이을 보는 느낌이 굴 속에서 함께 지금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그런이 동지의 같은 느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이 노장,이 하나님의 사람을 무엇이라고 기록을 하냐면 성경에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놀랍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다니엘의 삶의 모습은 꼭 지금 저희 같은 모습이다라고 이해를 하고 접근을 했는데 하나님은 전혀 다르게 보고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굴 속에 있는 다니엘을 은총을 받았는데 크게 받은 사람. 그러면이 성경의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좀 저희가 이해해 볼 만한이 굴 속에 현실선 굴인데 하나님이 왜 이렇게 그의 삶을 성경에다가 기록을 하셨을까? 그러면 혹시 오늘의 나의 삶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이해를 가지고 보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았다라는게 뭘까? 성경에 다니엘을 하나님이 이렇게 정의를 하셨는데이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에 대한 다른 정의들이 몇 군데 이렇게 기록이 되 있습니다. 첫 번째는이 은총받은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정의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객관적인 타인이 다니엘을 부를 때 불렀던 이름입니다. 굴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살았는지 죽었는지이 생존을 확인하러 온 최고 지도자가이 사람을 부를 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 장수일까? 아니면 어떤이 세상이 흔히 말하는 복일까? 성경은 전혀 다른 표현을 합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80대를 살아가는 그 노장을 하나님은 은총을 크게 받았다. 또 다른 표현이 있습니다.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 은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귀가 있는 자가 아니었어요. 학귀를 무시하거나 표하는게 아닙니다. 추구하는 성향을 얘기하는 겁니다. 장수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여러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것이다. 실제 은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뭘까? 자녀들의 흥황함이다. 다 포함되는 얘기겠지만 성경은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 표현을 찾았습니다. 저는이 표현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아멘은 되는데 나는 그럴까?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 아멘은 되는데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세 번째는 진짜 아멘이 되더라고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80대 중반이 여전히 갈망하고 있었다. 아멘. 아멘. 아직 부족하지만 아직 하나님이 보실 때는 뭔가 목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이지만 나이 80대에도 그 열정이 어디에 지금 집중하고 있냐면 하나님에 대하여 목말음을 느끼고 있고 그 심장의 박동 박자 이건도 느려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하여 갈망을 가진 시대의 소망을 가진 어, 이런 사람이 은총을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끝났으며 냈는데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 아까 표현 어, 크게 은총을 받은 사람아라고 하나님의이 부르심을 그대로 전한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부르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너의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넌 은총받은 사람이다.이 말을 요즘 기독교적 말로 바꾸면 기도 은총을 받았다는 뜻은 기도가 응답되는 사람. 우리가이 새벽에 왜 기도하러 왔을까요?이 이 어려운 시대에 새벽잠이 없기 때문에 오신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이렇게 운동하러 기도하러 나가 보면 그이 라디오 들으시면서 새벽에 운동하시는 어른들 산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담을 들으시는 분도 계시고요. 아침 주수를 들으시는 분도 계시고 우스갯 소리를 들으시는 분도 계시는데 우리가 여기 와 있는 이유 기도가 들으신 바 된 사람.이 이 할아버지는 80대 중반에 하나님께 이런 평가를 받으셨어요.이 시간쯤에서 제가 이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한국에 가면이 설악 지구 설악 그 국립공원 안에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고 들어갈 수 있는 그 전문가들만 이게 크라이밍이 가능한 몽유 도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여러분 이렇게 딱 보시기에도 직벽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저게 끝이 아니고 올라가면 저런 직벽이 이렇게 요로 이렇게 이제 이어지는 그런 곳입니다. 울산바위 같은 스타일의 그 등산 코수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목사님하고 목회를 하고 있던 대학 근무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내일 가자. 이렇게 일정이 갑작스럽게 잡혔지만 그래도 뭐 이렇게 따라갔는데 한 2시쯤 출발해서 잠을 한 숨 자고 계속이 시간쯤 됐는데 눈을 딱 떠 보니까 저 앞힌 거예요. 야,이 산을 좋아하는 그분은 전문가시고 또 같이 간 후배 목사님도 전문가인데 저는 안 전문가였어요. 그냥 산에 간다 그러시길래 저는 그냥 일반적인 복장 그리고 유일한 등산화를 신고 따라붙은서 따라왔는데 딱 보니까 이거는이 전문 기능이 필요할뿐만 아니고 복장도 전문적 기능을 가진 신발이 필요한 곳이었어요. 이걸 리지 기능이라 그럽니다. 안벽을 탈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신발 리지화가 있었어야 되는 상황인데 저는 일반 등산화를 신고 있었어요.

이제 선배님이이 걸 올라갈 때는 제일 잘 타는 사람이 선등 제일 먼저 올라갑니다. 줄도 없이 그냥 올라가면서 줄을 박으면서 올라가요. 그리고 제 두 번째 실력 있는 사람은 제일 마지막에 올라갑니다.이 이 줄을 잡아 주고 이제 실력 없는 사람이 올라가다가 혹시 이렇게 떨어지면 이렇게 떨어지는 거를 중간에 줄을 이렇게 기술적으로 딱 잡아당기면 이렇게 대롱대롱 매달리게 멈출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있어요. 그걸 위해서 선등하는 사람이 제일 기술 좋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 올라오는 사람이 그다음 기술 좋은 사람. 그리고 초보자는 가운데 이렇게 올라가요. 저는 당연히 가운데였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선등하면서 올라가고 그다음에 후배가 밑에서 자일이 선을 줄을 잡고 있고 저는 이제 중간에 올라가는데 제가 보이십니까? 이제 저르고 올라가는 거예요. 아,이 올라가는데 너무너무 힘이 들어 가지고요. 처음에는 이제 기도하면서 올라갔습니다. 하나 올라가도 내려갔더니 또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여덟 개쯤 하고 나니까 온 몸에 힘이 빠져 가지고요.

바들바들 바들바들 떨리는 상태에서 그런데 이제 되돌아갈 수도 없어요. 가면 또 여덟 개 넘어가야 되니까. 앞으로 가을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고 중간에 끼어서 정말 정말 뭐 이런 목사님이 다 있나 이러면서 지금 따라가고 오셨습니다. 왜 선배들이 종종 이해 못하는 결정들을 하실 때가 있잖아요. 후배는 지켜보고 있죠. 선배는 막 가죠. 저는 능력이 없죠. 돌아갈 수도 없고 손을 놓을 수도 없어요. 떨어지면 실제로 그날 전 한번 떨어졌습니다. 이제 정말이 속에 별별 이제 이걸 겪으면서 이제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는 그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국가로부터 이렇게 신청을 받고 허가 받고 들어오는 곳인데 시간을 약 뭐 그 한시간 정도를 인터뷰를 두고 예약을 잡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밀리지 않도록 그런데 어느 순간에 뒤에 팀이 저희 뒤로 따라붙었어요. 저 때문에 제가 워낙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에 뒤팀이 한시안이라고 하는 거리를 따라잡아서 어느 이게이 바위 앞에 딱 갔는데 뒷이 한 열몇 명이 따라붙었는데이 팀은 월간산이라고 하는 한국의 잡지가 있습니다. 한 달 한 번씩 괜찮하는 산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그 잡지 편집 장 팀장인 전문가들 산악팀이었어요.

얘네들이 따라붙었는데 딱 보니까 앞에 완전히 개구리 같은 애가 하나 있는 거예요. 이렇게 딱 붙어 가지고 개구리처럼 아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습니까? 거기에 한 사모님 여사가 계셨습니다.이 여사님이 이제 제가 올라가는 걸 이렇게 보 지켜보고 이제 저희가 올라가야 자기들도 이제 루트를 따 하니까 지켜보고 있다가 올라가고 난 다음에 다음번에 전희들 이렇게 만났습니다. 저한테 묻는 겁니다. 선생님 당신 뭐 하는 사람입니까? 하고 저한테 묻더라고요. 아 그때 순간적으로 제가 목사다 가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대학에 근말할 때니까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러냐고 그 넘어갔습니다. 또 하나를 넘어갔어요. 그 그다음 이제 그 대기 이제 준비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 준비한 장소에서 그 사모님이 저한테 다시 오셨어요. 목사님 그러게요. 제가 너무 놀래 가지고 예 그랬더니 제가 목사님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랬더니 제 후배한테 물으셔 물어보신 거예요.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이냐고 그랬더니 아무 생각 없이 목사님이라고 아이고 참. 그러니까이 목사가 어떻게이 인생을 올라가는지를 가만히 지켜본 겁니다.이 사람 밑에서. 목사님 저는 어느 장의 권사입니다. 이렇게 이야. 그런데 저보 그러시는 거야. 목사님은 믿음이 없는 거 같습니다. 제가 지금 저 자세로 매달려 있는 것도 너무 속상한데 저보고 믿음이 없다. 이렇게 그럴 줄 알고 제가 가르친다 그랬거든요. 야, 누군가가 저에게 와서 믿음이 없다 이렇게 탁 심판을 하면 그렇지 않아도 죽을 마신데 사는게 저를 굴속으로 집어 던지는 예,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발로는 못 하고 실제 제 모습이니까요. 발로는 못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이렇게 여쭤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신발이 어디서 나셨습니까? 이렇게 물으셨어요. 이거요?이 저 선물 받은 건데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 목사님이 산 거 아니죠? 그래서 예.

그랬더니 목사님이 안벽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릎을 펴는 겁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안벽이 경사가 있으면 이제 신발을 신고할 때 무릎을 딱 펴서 몸을 이렇게 세워야 이제 힘들지 않게 이렇게 올라갈 수 있는 그래서 비교적이 경사가 이렇게 낮을 때는 그렇게 올라가 줘서 체력을 안배를 해야 정말 급할 때 이렇게 뭐 이렇게 저렇게 이제 계속 진행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근데 저는 어 신발도 문제가 있고 기술도 없고 해서 제가 일어서면 마치 떨어질까 봐 몸이 뒤로 쏠리면서 중심을 잃을까 봐 계속 저렇게 개구리처럼 붙어서 온 몸으로 재심으로이 산을 올랐던 거예요. 근데 이분이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이 신발 얘기를 하기를 그 제가 사모님한테 제가 이거 선물 받은 건데요. 제 여리지 이게 안 돼서 제가 지금 일반 등산하기 때문에 그랬더니 아니에요. 목사님. 목사님 신권이 신발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가장 좋은 등산합니다.

일반 등산 기능과 리지 기능이 합쳐진 예. 그랬더니 목사님 정말 좋은 신발을 심고 있는데 완전히 허접한 슬리퍼 쉬는 것처럼 등산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걸 주신 분의 사랑과 정성을 믿고 무릎을 펴세요. 그러니까요. 그 제가 그래 그래요. 그리고 올라가서 경사에서 이제 발을 온면을 뒤고 무릎을 폈더니 펴졌는데 안 밀리는 거예요. 제가 저기 걸어 올라갔다니깐요. 여덟 개, 아홉 개를 사지로 온 힘으로 올라가다가 그다음 봉우리 그다음 봉우리에서는 걸어 올라가면서 어느 순간 제가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멋있죠. 같은 날 같은 신발 쉬는 사진이에요. 올라갈 때 제 모습하고 전혀 다른 자신감과 그 제 아들한테 요것만 보여 주고 제가 그날 배운게 뭘까요? 여호와를 바라보아라.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를 신뢰하여라. 아멘. 저는 신분이 그리스도인이고 열심히 살았고 상황이 어떻든간에 적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내가 가진 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걸 믿지를 못해서 미친듯이 살 거 온갖 불평해 가면서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를 신뢰하여라. 굴 속의 영성. 지금 다니엘은 굴 속에 있었습니다. 현실. 현실은 성경 가지고 있는 이미지 그대로였어요. 그런데 그가 그 속에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의 젊은 날 뜻을 정했다. 이게 결국 그런 열매를 맺었을까? 굴 속에서도 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열매를 맺었을까 싶어서이 뜻을 정했다는 것에 대한 재해석을 다시 한번 정리했습니다. 그거를 하나님을 정말 좋아했던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 뜻을 정했다는 말은 이런 뜻이었다.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결의 이게 뜻을 정했다라는 말이 어 뉘앙스하고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결의 아주 구체적이지 않습니까?이 그런 결의를 한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같은 연관된이 그 이제 글들을 살펴봤더니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뜻을 정한다는게 내 삶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느냐?

불평하는 시간을 없앤다. 야, 이거 참. 그다음에 모든 사업을 명랑하고 신실하게 임한다. 그다음에 기도한이 내가 하나님 이렇게 할게요. 하라고 기도한 무화적 봉사를 뭐 한다? 실천한다. 그다음 참된 예배를 보전하려고 노력한다. 이런게 뜻을 정한 거다. 여러분 이제 뜻을 정한다는게 너무 이렇게 대명사처럼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가 정말 굴 속으로 던져줬을 때에도 그의 영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또 다른 표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훈련. 일시적인 것들을 넘어서 영원한 것들에게로 연결되는 교육을 다니엘은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연구, 기도, 관련된 다니엘 이렇게 채널이라는 프로그램에 검색을 해 보면 요렇게 뜹니다. 그는 나의 90이 다 돼서 예레미서를 깊이 연구하다가 아 보르 기간이 끝나고 돌아가면 이렇게 그렇게 해서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이 예언의 역사와 재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 80대 중반 90이 다 된 노장의 성경 연구를 통해서이 교회의 기초가 세워진 겁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전에 하던 대로 야 이거 정말 그러니까이 할아버지가 돼서 기도가 숙성한게 아니고 전에 하던 대로였어요. 그리고 상황은 감사할 조건이 없었지만 감사함으로 충실하게 끈기 있게 기도하는 일에 순종했다. 기도도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에 그를 한 기독교인 영성 있는 사람이 쓰기를 그는 지성인으로 보통 그리스도인 중에 아주 지혜롭고 공이하고 외국에 유아가서 1등한 그런 지성을 가진 탁월한 사람이었을뿐만 아니고 그는 영성을 가진 평신도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다니엘은 레위인이 아니에요. 평신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 그런 사람이 드릴 수 있는 기도가이 시대에 필요한 기도. 황폐된 성소를 돌아보옵소서. 아, 노할아버지가 그 계시 가운데 나타난 그 모든 인류의 역사와 메시아의 끊어짐까지 보시고 난 다음에 마치 메시아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는 장일 오랜 후에 일을 보았다 했습니다. 그가 본 인류사 그 계시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 포인트가 그의 영성은 이분을 본 것으로 기록합니다. 다니엘의 위대함은 세계사를 미리 본 아니 해석해 낸 꿈을 해몽한 그런 위대함도 있겠지만 기름부 받은 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노작 굴 속에 있지만 황폐된 성소를 지켜보는 눈물의 사람이었지만 그 노른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셨던 거예요. 그가 십자가 위에 매달리는 걸 보신 겁니다. 그의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어요. 예수를 발견하는 날. 다니엘의 기도의 특징들입니다. 그 다니엘의 기도 이렇게 하면 성경과 영암의 글에이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아 다니엘은 기도를 결심했다. 이렇게 기록되 있습니다. 어떨 경우에는 기도를 뭐 해야 되는 거예요? 결심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피곤할 때, 몸이 약할 때, 나 할만큼 했다는 생각 들 때, 결심, 금식. 야,이 할아버지가 한 끼만 안 먹어도 손이 떨릴 연세에 금식하시고 나의 구이 다 되셔서.

그리고 다니엘이 기도할 때 등장하는 또 다른 특징 영 하나님의 영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복종이라는 단가 등장합니다. 갈망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옹호하는듯한 하나님 앞에서는 백성들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그런 옹호하는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제가 이걸 굳이 왜 하나씩 나열했을까요? 다니엘의 기도에서는 이분을 보게 되는 겁니다. 다니엘과 기도 이렇게 검색하면 아까 그 특징들이 나온 것처럼 예수와 기도를 검색하면 같은 비슷한 특징들이 등장해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이런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그의 나이와 그의 현재 있는 위치나 삶에 상관없이 신실한 한 노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셨어요. 그가 그렇게 바라보고 사모하고 빛난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분 자기 삶이 그렇게 닮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오늘이 새벽에 이거 옷에 온 것도 그 중에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오히려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로 탄에 올라가셨 자리에 나도 모르게 예수님처럼 기도하러 모인 우리 한 분 한 분의 그리스도인 노장들을 여호와께서 생명의 복으로 복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좀 읽어 보실까요? 시작. 기도의 마디마디마다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갈망으로 펼쳐진 하늘나라를 보았다. 다니엘이 기도의 마디마디마다 하나님을 찾는 갈망으로 펼쳐진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굴 속의 다니엘 하나님이이 노어른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을까요?이 이 굴은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나이의 제한이 곧이 굴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엘리야처럼 혹은 죽어서 묻혀 들어간 그 믿음의 열조처럼 아니면 예수님 예수님도 굴 속에 그런데 다니엘은 그 굴 속에서 구원의 기다림 예수님의 부활의 기다림 님 아 하나님은 다니엘을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성령 전반에 걸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마치 안식일이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과 이사야서를 통해서 하늘나라까지 이게 일맥 관통하는 사상인 것처럼 언약이 중요한이 성경의이 가치관인 것처럼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이 놀라운 믿음도 모세로부터 사도 요한 사도 바울의 리기까지 성경 전체를 꿰뚫는 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둘 때 혹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수사된 하나님의 모습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었어요.

다니엘에게도 하나님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가 기도할 때는 나의 하나님이 이미 빨리 시작할 때이 단어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시간이 박자로 움직였는지를 표현합니다. 얼마나 하나님도 갈망하셨으면 다니엘이 기도를 하자마자 다니엘 하나님이 이미 빨리 기도 시작할 때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주의 자 사자가 이렇게 증언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씀에 보니 다니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은혜를 얻었다. 우리 이곳에 이민 오신지 그 긴 시간 어떤 분은 다니엘처럼 한 60년쯤 이곳에서 그래서 70 80 돼서 이제 나는 굴에 들어갈 때 다 됐다. 아니, 어떤 분은 거의 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시야가 막히고 몸이 쇠악해지고 주변에는 여러 어려운 형평들에 노출이 돼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평생 이곳에서 나와 함께 하셨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넉넉히 오늘 다시 경험하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전원하셨습니다. 그는 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마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이 같은 말 두 번 반복하는 거. 성경에서 의미 있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이 이 다니엘이 지금 나이가 강건해야 될 나이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평안하라는 한번 하셨는데 건강했으면 좋겠어. 다니엘아 조금만 더 건강을 지켜 줘. 살아 있어 줘. 야 참. 야. 제가 이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분이 비교적 젊을 때였습니다. 이분의 꿈은 나이 30까지 사는 거였어요. 어, 어릴 때는 정상였습니다. 그 뛰어다니고 축구하고 이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이분이 다음 날라치면은 이게 안 굽혀지고 그다음에는 다리가 안 굽혀지고 이분이 걸린 병은이 관절에 있는 연골이 이렇게 석화되어 가는 굳는 그런 병입니다. 이제 온몸이 굳어가는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래서 이분은 제가 만났을 때 휠처에 빳빳한 몸이 얹치는 일자로 이렇게 휘처에 앉는게 아니고 얹치는 그런 입장에서 이게 이제 굳어가는게이 위로 목으로 와서 기관지나 어딘가에서 이렇게 오면에 죽는 이분의 꿈은 30까지 사는 거였어. 예수님만큼만 살면 좋겠다.

근데 그 이유로도 계속 내다 찾아갔습니다.이 친하게 잘 지냈기 때문에 이분을 찾아가서 만나면 어 하루를 좀 잘 살아야 되겠다라고는 저도 모르는 삶의 어떤 교훈이 있기 때문에 힘들고이 어려울 때는 이분을 종종 찾아가서 같이 기도하고 돌아오고 이렇게 수없습니다. 제가 이제 또 어느 순간에 하던 일이 좀 복잡하고 기도가 필요해서 이분을 찾아갔습니다. 근데 계시는 그 요양원에 안 계셔요. 이분은 어린 나이의 가족들에게도 이렇게 좀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국가 기관에 이제 어 국가 보조로 사시는 그런 분이셨어요. 그런데도 우리 재림 교인으로 열심히 교회를 나오시는 근데 그원 아 그 요양원에 갔는데 그분이 안 계시는 거예요. 어디 갔냐 그랬더니 저기 갔다 그래서 제가 이제 카메라를 그날은 가져고 왔습니다. 이렇게 찍어서 학생들한테 강의 시간에 너희도 좀 열심히 살라 이거 이렇게 좀 샘플로 보여 주려고 카메라를 가지고 왔는데 그걸 가져가서 이제 저기라고 한 그 근처에 가서 카메라를 켰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큰 사거리에 실제 저쪽에 계셔요. 그니까 제가 이제 카메라를 온하고 이제 쭉 가면서 형님 저 왔어요 하고 이렇게 쭉 촬영하면서 다가갔습니다.

아 이분은 그때는 손가락 정도만 이렇게 움직이는 정도였어요. 고개도 이렇게 누워 있으면 뭐요 정도만 이렇게 틀질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아 김목사 이렇게 아 형님 뭐 하십니까? 보면 모르냐고. 저렇게 휠처 앞 위에다가 판을 얹어 놓고 그 위에 예언의 신들을 쭉 성 갖다 놓고 문서 전도하고 계시는 거예요. 근데 이분은 스스로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형님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랬더니 나 지금 전도하잖아. 그래. 아니이 상태로 뭘 어떻게 사고 팔고 돈도 이렇게 주고받고 이거 이게 어떻게 이렇게 여기는 어떻게 나왔냐 그랬더니 두 2인일실인데 룸메이트가 조금 이렇게 좀 이렇게 밀어서 모셔다 놓으면 저녁에 데리고 가고 형님 여기서 화장실 가고 싶으실 텐데 나는 전도하러 오는 날이면 전날부터 물을 마시지 않아. 혼자 화장실을 못 가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시금을 전패하는 겁니다. 그래요. 어, 이거 누가 책 그냥 들고 가면 어떡합니까? 그랬더니 못 쩔 수 없지.

어떤 애들은 와 가지고 장난 거는 애들도 있고요. 책 룩 뒤집고 가는 애도 있고요. 어떤 분은 책 들고 그냥 그냥가 버리고 그럼 그 그 돈은 이제 개인이 감당해야 되고 이제 이렇게 하면서도 보고 점심은 어떻게 합니까? 했더니 돌아가서 저녁에 돌아가서 이제 먹는다 이렇게 그러냐고. 근데 이분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음. 어느 날 한 사모님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제이 책 얼마냐고 이렇게 물어보더래요. 그래서 얼마입니다? 그랬더니 지갑을 꺼내고 돈을 꺼내면서 내가 지금 돈이 큰 돈밖에 없는데이 잔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랬더니 여러분 이분이 잔돈을 어떻게 거슬러 줄까요? 요즘이야 뭐 말로만 해도 휴대폰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계좌에 차하고 뭐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때는 뭐 그럴 때가 아니었습니다. 현금 거래할 때데이 사모님이이 책한 곳 이렇게 큰 돈을이 주니 저도 물었죠. 이거 어떻게 잔돈 남겨 주셨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사모님 저를 뒤집으세요.

이분은 혼자서이 이거 몸도 뒤지 못해요. 그러니까 사모님이이 빳빳한이 사람을 책 뒤집듯이 이렇게 뒤집으니까 그 엉덩이 밑에 지갑이 있는 거예요. 그 지갑 꺼내서 사모님 돈 넣고 잔돈 챙겨 가세요. 그게 책파는 방식이에요. 근데이 사모님이 뒤집고 돈을 바꿔 주다가 눈물이 터졌어요. 그 사모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저는이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저 가게 주인입니다. 사장입니다. 저는 장로교에서 평생 집사로 산 집사입니다. 내가 당신을 1년이 넘도록 지켜봤다고. 그 사거리 건너편에 한 장애우가 와서 아 요즘 장애자라 그러죠. 그 장애인이라 그러나요? 와서 이렇게 문서 전도하는이 모습을 1년 전부터 지켜봤는데 그래서 내가 오늘은 직접 왔다고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고 싶다. 온갖 수모당하는 걸 이분이 다 지켜본 거예요. 1년 동안 아이들이 와서 장난치고 가고 책 훔쳐 도망가고 뭐 별별 일이다. 그럼 눈이 오고 비가 오고이 모든 상황을 건네편에 한 그리스도인이 지켜보고 있다가 1년 만에 와서 나도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믿고 싶다.

이분은 그 인생이 완전히 제한된 굴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의 삶 속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은혜들. 이분이 처음에는 그렇게 별 소문 없이 이렇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교회 매스컴 이게 지금 재림 신문에 올라온 기사입니다. 이건 이건 몇 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노원구 인구보다 더 많은 책을 이분이 전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분이 나중에 어디로 갔냐면 서울에 청양리라는 곳으로 갔어요. 그래서 이분이 노원에 노원구 말고 청양리는 동네구라는 곳이에요. 그곳에 있는 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숫자를 책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분의 꿈이 뭐냐면 서울 시민 전부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천만 그렇게 보고 어느 날 갔다가 다시 찾아갔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갔는데 이분이 저를 반가워 하셨습니다. 김목사 내가 얼마 전에 죽을 뻔했다. 어 죽다 살았으니 제가 반갑습니까?

하고 제가 농담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가만히 저를 보더니 너도 한번 죽어 봐. 내가 지금 젊어 가지고 이분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아 여러분 입 입이 벌어지는게 얼마나 은혜인지 아십니까?이 이 관절,이 턱관절에 병이 온 거예요. 그래서 밤새이 병이 와서 악화가 돼서 아침에 일어나서 입을 벌리는데 입이 안 벌어지는 겁니다. 이렇게이 상태에서 문제가 뭐냐? 먹지를 못하는 거예요. 근데 이분이 그 이분이 계시는 곳에서 안식일 교회 이분 혼잡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손가락질를 많이 했어요. 존경도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붙일 수 있나? 이게 이제 일반적인 사람들 생각이었나 봐요. 근데 이제는 이것도 안 돼서 먹지 못해서 굶어 죽을 상황이 되니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두려워 가지고 사람들한테 말을 못 하는 거예요. 내가 입이 안 벌어진다는 거를. 그래서 며칠을 굶었대요. 하나님에게 욕 돌릴까 봐.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돌아다니고 그러다가 이제 이분이 견디다 견디다가 하나님 이제 데려가시지요. 이렇게 기도를 하셨나 봅니다. 근데 기도 응답이 어떻게 왔냐면 통증으로 왔습니다. 치통. 아니, 지금 입이 안 벌어져서 먹지를 못해서 지금 굶어 주고 가는데 치통이 웬 말입니까? 치통이 오는데 너무 고통스러운데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래요. 아 이게 뭐 이렇게 해서 뭐 오늘 뭐 이렇게 후유증인가 보다만 생각하고 한 2, 3일을 견디다가 어느 날 새벽에 이제 하나님께 제발 이렇게 기도가 됐대요. 근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룸메이트가 이번은 정신 지체를 가지고 있는 분이에요. 근데 이번에 오더니 갑자기 거울을 주더랍니다. 거울을 봤더니 이렇게 치하에 앞에 큰 두 치아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구멍이 뻥 뚫렸더래요. 벌레가 며칠 동안 이거기를 파먹었는데 얼마나 심하게 파먹고 급속이 파먹었는지 이렇게 구멍이 뻥 뚫렸더래요. 그걸이 사람이 이렇게 보여 주더래요. 그러면서 후다닥 가더니 정신 지체를 가진 분인데도 불구하고 후다닥 가더니 밥을 어 밥 국찬 다 넣고 믹서에다 돌리더니 이만큼을 빨대를 스트로를 가져와서 꽂아 가지고 자격이다 꽂아 주더래요.

그래서 며칠 만에 고기를 빨아서 먹었답니다. 김목사, 내가 아직 살아야 될 이유가 있나 봐. 내가 데려가시라고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오히려 내이 그 치아를 망가뜨리시면서 여유를 틈을 내셔서 그 굴 속으로 또 다른 굴 굴 속으로 고기 요만큼을 주셨는데 그게 내가 자네를 만난 오늘의 은혜네. 지금 나이가 70이 다 돼 갑니다. 30까지 사는게 꿈이었는데 70 될 때까지 살아야 되는 이유가 있었어요. 저 상태로 아직도 그분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인생 자체가 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던져 놓은 굴. 그런데 그의 굴은 믿음의 굴, 희망의 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굴,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노는 굴 천국이었던 거야. 하늘에서만 사자들가 오는게 아니고 오난 내 일상에서도 그의 인생을 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 강한 손을 가진 사람,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에요. 굴 속에 있을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내가 있는이 자리가 굴 속이라도 만날 기회임으로 주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저희도 믿음의 열조처럼 무릎을 꿇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