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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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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월요일 · PM 7:00 · 저녁말씀 | 김상래 목사 (7.20월)

저녁말씀: 내일을 위한 오늘 (김상래 목사)

YouTube 자동 생성 자막을 문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명, 성경 구절 및 전문 용어에는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말 더 올려 주세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올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의 찾내 주님은 위대하심 님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숲속이나 부르른 [환호] 깊은 산에 지적이는 저새 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신물은 주님의 솜신 노래하도다 [울음] 주님의 님의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는 주님의 놓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비명] 나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비명]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주님의고 위대하심을하심 내 영혼이 내 영혼이 찬양하네. 찬양하네. 주님의 없고 위대하심을하심 내 영혼이 [비명] 찬양 [비명] 하네. [비명] 아멘. 여러분을 모시고 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아멘.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나의 가장 어여쁜 자야. 겨울도 가고 비그쳤으니 일어나러가자.

동산에는 예쁜 꽃 피곤 작은 새들 노래 부르니 나의 사랑 어여본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멘 주님 힘주시는 아름다운 곳루 우리 모두 함께 가자. 여러분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멘. 하늘나라는 혼자 가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가는 나라입니다. 아멘. 그래서 옆 사람과 손을 잡고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론 맺은 형제이 고난이 오고 시험 닥쳐도 손잡고 함께 가자. 아멘. 우리 주님 우리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셨으니 우리 서로 사랑하면 손을 잡고 함께 가자. 돌아갈 고향. 음. 주님 계신 곳루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주님 계시는음 아름다운 곳. 우리 모두 함께 가자. 우리 모두 함께 가자. 아멘. 아멘. 저는 환호성이 터질 줄 알았어요. 우리 모두 함께 하늘로 돌아갈 때 너무 행복해서 환호성이 터질 줄 알았어요. 한번 해 볼까요? [비명] 이제 천국으로 진짜 들어갑니다. 아름다운 교회 홀의 걸러오니 사랑하는 주님 홀날의 걸러오니 즐거운 찬양과 홀레이 홀로우리 아름다운 말씀 홀로 우리 홀로 우리 홀로우리 홀로우리 홀로우리 홀로우리 홀로우리 리얼라리 리얼라리라리 홀로우리 홀로 홀로우리 러리라 우리 어둠을 열면 잘난빛 아름다운 곳 평화로운 재림교회 꿈이 있다네 평화로운 태우시의 꿈이 있다네 ლე띠 레이랄라리 우리 모두 즐겁게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손의 손을 잡고서 별나라 여행을 떠나세우리라 H

함께 춤을 추겠습니다.요 좀 올려 좀 더 크게 해 주세요. 요레티어레이띠에 레이 하늘 에덴 동산 유리바 생명강가에 벌카춤을 주면 어래하는 멋진 성도들 하늘 천사들도 손을 잡고 춤을 주면서 모두 요레 요레띠 하나 둘 셋 넷 다같이 둘 둘 셋 하나둘 내 우리 모두 즐거운 폴카 푸른 수부어진 에덴동산 작은 마을은 모두 행겹게 손을 잡고 춤을 주는데 멀리 저산 넘어 들려오는 메아리 소리 멋지레 어디 둘 셋 내 요레 둘 둘 셋 내 요레둘 내 요레 우린 모두 즐거운 포카 하나 둘 셋 넷레 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우리 모두 즐거 볼까 요에온에 하니 어느 좋은 날 아침에 난 가리라. 주가 예비하신 그곳에 난 가리라. 가리라. 오 영광 난 가리라. 왕자나 할렐루야. 그때에 난 가리라. 난 가리라. 내 삶 슬픔 고칠 때 가리라. 자유 찾은 기쁜 새처럼 난 가리라. 난 가리라. 오 영광 난 가리라. 멀잖아. 할렐루야. 그때에 난 가리라. 세상 모든 어려움 내 마음속에 있지만 주의 약속하신 축복의 딱 받으며 가리.

주의 나를 구원하시니 주의 뜻을 따라 나는 가리라. 다같이 성도명하실 때에 성도명하실 때에 성도명하실 때에 나도 거기 가서 참여하겠네. 성도들이 행진할 때 성도들 행진할 때에 오주여 나와 함께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난 가리라. 오 영광 난 가리라. 멀잖아. 할렐루야. 그때에 난 가리라. 나는 [비명] 가리로 나를 하리라. [비명] [비명] H 몸을 움직여 보세요. You you are my you are no but you nobody under the I want I always know 라라 레라 로리 울리 레라 라 주 우리 나의 참 사랑 나를 위한 사랑을 버리고 오신 영원한 주의 사랑 나 알 수 있죠 나를 구원하심사 사랑 없어요. 주님 영원한 나의 친구 홍리 홍하로 우리 홍리 로리 우리 리 로리 우여 홍리 로리 하늘 여우 여우 여우 우리 주 다 같이 이셔서 주제가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힘차게 신나게 부르겠습니다. 습니다.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랑이로다. 그 생명 내 마음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갑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 변한다. 새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밤새하느리로다. 맛보면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아멘.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들을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하고 쓸데없는 저희들을 구원해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예수님의 사랑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아멘. 저희들의 믿음이 연약하고 식을 때에 붙들어 주시기 위해서 저희들 이곳에 모였습니다. 잘 준비된 찬양과 말씀으로 은혜 충만케 하여 주시고 저희들의 믿음 더욱 공곡히 공곡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님의 말씀 저희들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하여 주시고이 세상 나가서 살 때 저희들이 만나는 형제들과 이웃들 앞에서이 말씀들이 생각나게 하여 주시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목사님 나와서 말씀 주실 때 은혜 충만케 하여 주시고 사단이 일절 틈타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께서만 함께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리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안녕하십니까? 예. 예.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어 2026년 우리 43회 서부 야영회를 맞아서이 저녁 시간에 말씀 안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도록 또 섭리하시고 준비하시고 계획해 주신 우리 야영이원회 위원장님과 모든 임원들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또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섭리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어 야영 위원회로부터 어 금년에 설정한 주제가 내일을 위한 오늘이라고 하는 연락을 받으면서 어 말씀에 대한 부탁을 받을 때 그 주제를 듣는 순간 아이 주제는 나를 위한 주제구나 내가 전해야 하는 주제구나 이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니다. 왜냐하면 1975년 아 1974년 어 5월 10 1일 그날 이후로 소위 세상 사람들이 안식 교회라고 부르는이 교회 출석하기 시작했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안식교라는 이름 대신 제가 정확한 연도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재림 교회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공식 명칭을 약칭을 그렇게

바꾸기 시작한 이후로 그 이름의 변화 그대로 저는 안식일 신앙에서 안식일 변증 관심에서 재림 소망에 대한 관심으로 끊임없이 바뀌면서 공동체 안에서 재림을 준비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준비해야 되겠 구나라는 생각보다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많이 해 왔기 때문입니다. 예. 그러면서 말씀 안에서 성경이 주는 진정한 재림 준비는 뭘까? 한 해 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 중에 이런 주제를 설정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자고 부탁을 주시기 때문에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제 인생의 관심사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우리 삶의 과제에이 주제를 집약해서 어쩌면 제 인생을 집약해서이 저녁 말씀을 준비했고 부탁을 받은 이후로 지난 1년 동안 매일매일 끊임없이 묵상하고 생각하면서이 말씀을 함께 준비해 왔습니다. 여러분, 지구상에 오로지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사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랬으면 좋겠지요.

혹시 프레플 족이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the prers이 pr스라고 하는 사람들은 prepare prepare라는 동사 자체가 pr라고 하는 접두어에다가 접두사에다가 파레라고 하는 라틴어를 합한 영어 단어지요. 하는 단어에다가 사람을 나타내는 전미사이를 붙여서 만든 신조옵니다. 프족 얼마 전 가장 중적인 과학 잡지인 내셔널 제그라픽에서 프레퍼족에 대한 집중적 소개를 했습니다. 프래퍼족 사람들 중에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지요. 미국 남자 배우 중에서 인기 탑원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하는 탐 크루즈가 바로이 프레퍼족입니다.이 이 프레퍼족 한 사람인 크루즈의 미국 LA people 대저택 치하에가 보면 보시는 것처럼 벙커가 있고 또 침실이 두 개가 있고 운동장이 있고 세탁실 뭐 이렇게 일상 생활이 가능한 모든 시설을 갖추 놓고 있다고 소개를 해 줍니다. 톰크루즈가 왜 이런 저택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지구 종말을 대비한 시설입니다.

2012년 5월 26일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호리라고 하는 사람이 초호화 대피 시설을 마련하고 이름하여 survival 콘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차피 지구는 끝나게 되어 있고 어 지구가 끝날 때 살아남을 콘도를 마련하고 이름하 surv바이벌 콘을 마련하고 분양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53m에 14층 건물을 짓고 각종 편의 시설을 마련하고 입주 비용이 200만 달러입니다. 예.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훨씬 좋겠죠. 여기에 20년치 식량이 비축되 있고 무기와 특수 컨테이너가 있고 천종의 종이 씨앗이 있고 모든 종류의 항생제가 있고 필터링 임시 병원이 있습니다. 서바이버 콘도 분양을 시작한지 한 날 만에 매진이 됐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다 미국 이야기입니다. 어 지금 멸망에 대비하라. 미국의 프레프적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답니다. 두 배가 증가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고액이 느는 처음 크루즈 같은 사람이 만드는 프레커 프레프족의 벙커 시설도 있는가 하면 콜로라도즈의 라일리 쿡이라고 하는 사람의 가족을 소개했는데 그들도 역시 인류 멸망의 나를 대비해서 이미 지금 벙커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정말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거지요. 이런 프레퍼족이 미국에만 있는게 아니고 국내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언론은 이렇게 소개하지요. 프레퍼족 아세요? 국내에도 1만 명이 있죠. 이들은 생존 배낭을 매고 24시간을 삽니다. 여러분들은 뭘 준비하고 있습니까? 종교와 신앙과 아무 상관 없이도 살아남으려고 이렇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우리는 지금 뭘 준비하고 있나요? 유튜브에 뭐 종말 이런 단어를 키워드로 쳐 보면 이런 기사들이 많이 뜹니다. 제가 그냥 화면만 캡처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30년 가장 과학적인 지구 종말 시나리오 100만 명유 이상 봤다고 해서 이렇게 금에 상패가 붙어 있는 과학자들의 경고 인류 멸망 시나리오 뭐 이런 거 유튜브에 쳐보면 그 뭐 무시로 나옵니다. 예. 그래서 설교자들도 이런 제목의 설교 많이 유튜브에 띄웁니다. 종말로 가는 길 누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종말 어떻게 준비할까? 종말을 준비하는 삶. 우리는 어떻게 종말을 준비해야 하나?

유튜브만 쳐보면 이런 제목들이 무시로 설교 제목이 나옵니다. 이런 시대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종말과 재림은 다릅니다.이 이 사람들이 프레프로족들이 이렇게 준비하고 있지만은 그들이 생각하는 종말 시대하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재림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 종말은 약속이 없습니다. 재림은 약속이 있습니다. 종말은 끝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재림은 시작을 바라보는 관점이지요.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기본 관 동기는 공포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본 동기가 소망이지요. 종말의 동기는 재난 사건에서 살아남는 것이 동기라면 재림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는 것이 기본 동기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준비하는 사람들 정말 사람들을 정말 논자라 그러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뵙기 위해 소망을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재림 성도라고 부릅니다. 종말론자들이 재림 성도가 아닙니다. 재림면 성도가 정말론이 아니에요. 당연히 준비하는 동기도 다르고 준비해야 하는 내용도 다릅니다.

동기도 다르고 내용도 달라요. 종말론자들스 종말론자들은이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으려고 공포에 의해 준비하는 사람들이고요. 재림 성도들은 새로운 세상을 맡기 위해 소망을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재림 준비를 종말 준비의 수준으로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요즘 이곳 저곳에 집회 초청을 받아서 이렇게 말씀을 섬기게 되면 어 이제는 한국 목회자들의 뭐 거의 95%가 제 수업을들은 제자들입니다. 이제 벌써 제가 은퇴 4년차가 되다 보니까 이저 은퇴 한 2, 은퇴 한 2, 3년 정도 남아 남겨 놓은 저희 후배 목사님들 외에는 목회자들 외에는 다 제자들이에요. 그래서 이제 초종을 받아서가 집회를 하게 되면 안식일 오부 집회를 부탁합니다. 여러분. 그런데이 안식일 오부 집회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게에 예를 들어 뭐 홍길동이라 합시다. 홍목사 안식일로 오는 피차 시험 받는데 꼭 해야 되겠어. 이거 뭐 밥 먹고 졸린데 앉아서 듣기 위해 이분들이 뭐이 졸음을 이기면서 저를 저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졸 졸졸리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면 그 눈빛이 거의 저를 잡아 먹을 듯이 쳐다보는 눈빛입니다. 휴 쳐다봅니다.

제가 한 15년 전에 미국에 왔다가 어떤 제자 목회자가 어 안식일 오후 집표를 하자 그래서 제가 그 별 생각 없이 그러지 말고 요즘 뭐 어떤 스님 유명한 스님 그 공개 상담도 하고 그러는데 내 한번 오픈에 그야말로 이렇게 증문 즉답하는 그런에 시간을 좀 가져보자 그랬더니까 좋습니다 그랬어요. 그 안식일 오후 2시에 시작했는데 여러분 그날 저녁 먹고 7시까지 이어졌어요. 저 혼자 설교하는게 아니고 묻고 대답하고 하니까 아무도 안 자요. 힘들어 하지도지 않고. 그래서 가는 것마다 안식일 오부 집회는 제가 그렇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경상도는 지역에 가서 한 지역 연합 주말 집회가 있었고에 그 안식일 후에 또 역시 그런 시간을 가졌습니다.에 거기는 대부분 소위에 입산한 성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때 한 분이 일어나셨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40년 전에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지난 10년 동안 교회 지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 여러분 사실 그분이 벌써 딱 일어서데 그 포스가이 어 기세가 어 이렇게 뭐 이렇게 나와요. 이렇게 그럴 때 제가 좀 긴장이 되지요.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신 분이서 있으셔 가지고 내가 지난 10년 동안 교회 지남을 살펴봤고는데 문제입니다. 딱 그래요. 그래 장로님 말씀하시지요. 그랬더니 목사님도 교회 지도자시죠? 그래요? 아예 전 뭐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면네 뭐 이게 일단 말씀을 좀 하시지요. 내가 지난 10년 동안 교회 지남을 살펴봤는데 단 한 번도 환난에 대한 기사가 나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40년 전에 야곱의 환난, 큰 환난, 작은 환난 많이 배워서 지금이 들어왔는데 지금 지난 10년 동안 교회 지남에 환난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네. 왜 교회가 환난을 준비시키지 않습니까? 예. 장로님, 제가 어떻게 말씀을 드리면 좋겠습니까? 아, 그러니까 내가 묻는 것 아닙니까?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면 사고하세요. [콧방귀] 굉장히 공격적이세요. 제가 예, 장로님 많이 노아셨군요. 어, 제가 죄송합니다. 말씀드려서 장로님이 노하심이 조금이라도 풀어지실 수 있다면 제가 100번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교회 지도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려서 장로님의 마음이 부드러워지신다면 제가 열번이라도 사과드리죠. 아이 뭐 목사님 보고 그런 건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그런데 그렇게 말씀드린 다음에 그 장로님께 이렇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장로님 그런데 왜 환난을 피하려 하십니까? 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그래요. 환난은 당연히 피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다시 이어 주었습니다. 장로님, 환난을 피하면 반드시 주님을 뵙습니까? 환난 피했는데 주님을 못 만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환난을 피하는게 목적인가요? 주님을 밟는게 목적인가요, 장로님? 환난을 피해 들어오셨다 그랬는데 들어오신 다음에 주님을 뵙기 위한 준비는 뭘 하셨습니까? 여러분, 제가 준비한 대답이 아닙니다. 근데 그렇게 역으로 제가 질문을 드리면서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느낌을 제가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아,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장로님께 드렸 분위기가이 뒤집히는 느낌이 들었지요. 환난을 피했는데 재림하시는 주님을 뵙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환난을 피하기 위해 산 산골에 들어가든 시골에 들어가든 그렇게 시골에 들어간 다음에 눈물 때문에 옆집 아저씨하고 싸우고 비료 때문에 옆집 할아버지하고 싸우면 거기 시골 들어와서 환난 피한다고 들어와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환난을 피하러 거기 들어가서 주님을 뵙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출애굽 공동체를 구성한 무리가 세 부류가 있었다고 왕이 우리들에게 말해 줍니다. 부주와 선지자 281쪽에 보면 그 출애굽에 동참한 무리들을 세 부류로 분류해서 와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이 무리들 중에는 1.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나온 사람들도 있었을뿐만 아니라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삶 흥군과 호기심으로 덩달아서 이동하는 군중 군중을 따라 나온 숫자도 상당히 많았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이 뭐야 하고 덩달아 우하고 따라나온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는 거죠. 출애굽 공동체에 출애굽기 12장 37절에 보면 그들을 가리켜 수많은 잡 한국과 번역이 조금 조금 뉘앙스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 말에 잡자가 들어가면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잖아요. 수많은 잡족 이렇게 표현했는데이 수많은 잡족 사실은 종족이에요. 레브라고 하는 히브리어가이 수많은 잡족이라고 번역된이 단어를 민수기 11장 4절에 가면 성경 전권에서 딱 한 번밖에 안 쓰이는 단어로 이들을 표현합니다.

그들을 한국말로 번역할 때 뭐라고 번역했는가면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 이렇게 번역했는데 이게 길게 번역했어요. 근데이 말에 대한 히브리어 원어가 아숲이라고 합니다. 아수프. 근데이 아수프 발음만 들어도 뭔가 언어 유의가 들 느껴지시죠? 아프숲프. 저요 아프스프라고 하는 한 번밖에 안 쓰이는이 단어를 한국말로 가장 잘 번역한 성경이 제가 보기에는 가톨릭 성경인 것 같아요.이 가톨릭 성경이이 아숲수프라고 하는 성경에 한 번밖에 안 나오는이 단어를 뭐라고 번역했는가면 어중이 떠중이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숲프 수프 아슈프 수프 이렇게 발음의 그 언어 유를 살려서 중이 중이 해가지고 어중이 떠이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여러분 재앙을 피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 흥분과 호기심으로 덩달아 이동하는 군중을 따라나온 수자 그들을 가르쳐 성경은 아스프라고 번역합니다. 우리의 재림 준비. 다시 말해 내일을 위한 우리의 오늘은 플래프 쪽에 생존 전략과는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출애굽 대열에 참여했던 아수숲프 즉 어중이 떠중이들처럼 단지 재난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말에 재난을 피할 준비에서부터 재림의 주님을 맞을 준비로 그 근본적 동기와 본질을 바로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재림 교회의 내일을 위한 오늘 메시지가 프레포족의 생존 전력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다시 와서이 말씀하신 이후로 성경은 재림에 대해 영광의 소망이라고 표현하고 의의 소망이라 표현하고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표현합니다. 재림 준비.이 영광스럽고 복스럽고 의로운이 재림 준비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독교 공동체 중에 그들의 이름 자체를 재림 성도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들이 재림 준비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 금년 우리 야용의 총 제목처럼 내일을 위해 오늘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재림의 약속을 허락하신 주님께서는 그 약속에 곧바로이어서 재림 준비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지요.이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나타나 있는 재림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예수님의 교훈 우리가 더 너무 잘합니다. 밭에 있는 두 사람 혹은 집에서 몇돌을 가는 두 여자, 두 여인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지요. 운명이 결정되기 직전까지 두 사람이 있던 장소가 똑같았습니다. 남자가 두 남자가 있던 곳, 두 여자가 있던 것 똑같은 곳에서 운명이 갈라졌죠. 다시 말해 데려감을 당한 사람은 교회에서 야용의 집회 참석하다가 거룩하게 변화되어 데려감을 당한게 아니고 똑같이 몇 돌 돌리다가 한 여인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여인은 버려둠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장소는 야영장이 아니고 교회가 아니고 신옷입고 기도하는 곳이 아니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은 늘 살아가는 현장이라고 하는 교훈을 바로 말씀해 주시는 거죠. 두 번째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 악한 종 시간이 내일 있다고 연대에 따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고 언제든지 주인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종종 종은 충성된 종이고 늦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 때리는 종은 악한 종이지요. 와이슨은 말합니다. 조금 있다 살펴보겠지만

제 이름이 5년 내에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재림 성도들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분명하지요. 그릇에 기름이 있느냐? 등잔의 기름은 열처녀가 공통점입니다. 차이점은 그릇에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에 대한 신학적 설명. 그릇이 기름은 성령이다. 이런 신학적 설명 말고 구체적 의미가 뭐예요? 등잔에 있는 기름과 그릇에 있는 기름. 저는 그것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등잔에 있는 기름은 김상래가 목사로서,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성경 보는 것은 그 기름 등잔에 기름이 있는 거예요. 근데 그릇에 기름이 없어요. 목사가 설교하기 위해서 성경만 보면 그건 그릇에 기름이 없는 거지요. 장로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도 외에 자기가 만나는 하나님이 없 기도가 없어요. 그릇에 기름이 없는 거지요. 준비가 뭔지를 선명하게 말씀하시는 거지요. 달란트 남긴 자와 묻어둔 자입니다.

한마디로 교훈이 뭐예요? 마지막까지 다 재림 준비가 뭐냐? 마지막까지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 그게 재림을 준비하는 거라고 말씀하신 거죠. 마지막 끝으로 뭘 위해서 그 그 달란트를 어디다 쓰냐? 지극히 작은 자를 영접한 자와 영접하지 않은 자.이 이 말씀들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다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그런데이 본문들에 대해 너무 중요하고 깊이 묵상해야 할 본문들이지만이 본문들을 넘어 신약 [콧방귀] 성경에 있는 임박한 재림을 언급하는 다른 여섯 개의 구절들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재림이 명시적으로, 문자적으로,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당연히 구약이 아니고 신약이죠요. 신약 성경에 보면 재림이 가깝다라고 성경 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하는 그 시대에 이미 가깝다.라는 표현을 쓴 본문이 정확히 여섯 개가 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여섯 번 말씀을 섬기라고 성경 본문이 그렇게 여섯 개가 딱 나옵니다.

그 첫 번째가 로마서 13장 11절에 구원이 가까우니 빛의 옷을 입으라. 두 번째가 빌립보 4장 5절에 주께서 가까우시니 관용을 알게 하라.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여라. 히브리 10장 25절.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원망하지 말라. 야고보 5장 9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우니 뜨겁게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장 7절. 때가 가까우니 예언을 인봉하지 말라. 계시록 1장 3절과 22장 10절. 와우. 여기 가깝다라고 번역된요 단어가 헬라 원어로 보면 거의 모두 다 앵구스 혹은 앵기조마이이라고 하는이 가깝다라고 하는 공통 단어의 파생 어들로 똑같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이 앵스 혹은 앵구스라고 하는요 단어 주변에 가까우면 여러분 여섯 개 절이 모두 다 주어가 달라요. 하나는 구원이 가깝다. 주께서 가깝다. 주의 강림이 가깝다. 그날이 가깝다. 때가 가깝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깝다.요 주어가 각각 다른 것도 의미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이번 주간에 저는 각각의 다른 주어에 대해서는 말씀을 나누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깝다고 한 다음에 그 전후 문장 속에서 성경 자체가 가까우면 어떻게 살아라?라고 라고 말하는 그 본문들의 기별만 집중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이 여섯 개 본문의 첫 번째 순서로로 성경 순서대로 기록 성경책 순서대로 로마서 13장 1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구원이 가까우니 빛의 옷을 입으라라는 제목으로 그 첫 번째 본문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로마서 13장 11절로 14절입니다. 또한 너희가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같은 개념의 단어가 반복되면 얼른 우리가 주의 집중을 놓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사실 여기에도 묘한 저자의 강조점이 있습니다. 조금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종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나의 섹션으로이 문단으로 구성되고 있는이 로마서 13장 11절 14절의 본문을 둘로 나누면 이렇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11절부터 12절 전반부까지 그다음에 12절 하반에서부터 14절까지이 내용을 둘러 나누면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첫째 11절부터 12절 전반부까지는 가깝다고 인식하게 되는 근거가 나오고요. 12절 하단에서부터 14절까지는 가까우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권면이 나옵니다. 그시기 인식의 첫 번째 근거 본문을 읽어 보지요.이 시기를 알거니와이 때를 안다는 거죠.이 이 시대가 어떤 상황이 어떤지를 시기를 안다는 거지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본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또 하나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 공통점은 영적 준비가 시기를 파악했으면 이때가 어떤 때인지를 알았으면 옷을 입자. 근데 옷을 입자는 말이 은유 비유예요. 그 옷을 입자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바울이 옷 입으라 했을 때 구체적으로 뭐 그리스도 옷 입자 뭐 어떻게 하는 거예요? 빛의 갑옷을 입자 뭐 뭐 어떻게 살아야 돼? 그 빛의 갑옷을 입자는 말,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 어떻게 살으라는 말인지를 말씀 속에서 찾아내야 하는 거지요. 이제 그 내용들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죠. 첫째는 시기에 대한 파악이고 두 번째는 영적 준비에 대한 권면입니다.

먼저 바울이 우리의 구원이 가깝다.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깝다라고 생각한 그시기 인식 혹은시기 파악의 근거가 뭘까요? 그는 말합니다. 너희가이 시기를 알거니와 그 시기를 어떻게 알아요? 본문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움이라 그랬습니다. 맞아요. 우리 모두가 다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가깝지요. 제가 처음 1975년 처음 교회 나올 때 그 시대 야영에 모이면 그 당시 대회장님들이셨던 엄기홍 목사님 혹은 뭐 김 김상 김상 도목도 목사님 아니신데 예 그 대회장님들이 소중한 대회장님 동한 대회장님들이 마지막에 탁 나오셔 가지고 뭐라 말씀하시는가면 내년 야용회는 하늘에서 우리가 다 따라부르던 구어였습니다. 예.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가깝지요. 두 번째 뭐라 그러나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여러분 여기서 우리 간단하게 말해서 바울이 구원이 가깝다고 인식한 그 근거가 뭐예요? 여기 보면 바울이 가깝다고 생각한 것은 전혀 연대 계산에 근거한게 아니지요.

아무런 연대 계산의 근거가 본문 자체에 없어요. 단지 바울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가깝다라고 생각한 것은 전적으로 그 영적 각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기록하던 그 시대 성경 저자들도 자기 시대에 구원이 가깝다고 이미 인식했습니다. 그 일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주신 일로 역사적으로 그분이 오실 때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은이 말씀에 의하면 다 자기가 살아 있는 시대에 주님이 오신다는 영적 각성으로 살아야 되는 거죠. 바울이 말했잖아요.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 그랬는데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 이렇게 말해 놓고 로마서 본문에서는 시기를 알거니와 이렇게 말하거든요.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쓸 것이 없다고 한 바울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말할 때 그 시기는 연대 계산은 아닌 것임이 분명하잖아요. 주님께서도 이미 우리가 너무도 상식적으로 아는 것처럼 어느 날에 주의 주가이 말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랬잖아요.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오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날과 그 신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이 이런 맥락에서 이런 권면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신다든지 혹은 오시지 않는다는 등 시기를 정하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참된 기별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그리스도의 강림이 5년 혹은 10년 혹은 20년 동안 지체될 것이라고 말할 권한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라. 재림이 5년밖에 안 남았다라고 말하면 굉장히 인박한 거지요. 이거 사업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결혼을 시켜야 말아야 되냐 애를 낳아야 되냐 말아야 되냐 온갖 결정이 5년밖에 안 남았다 그러면 다 영향을 끼칠 겁니다. 그런데 와이트은 뭐라고 말해요? 5년 혹은 10년 거꾸로 말하면 20년 10년 5년 남았다고도 말하지 말라. 이건 절대로 참된 기별이 아니라는 거예요. 연대에 근거하여 인박함을 깨닫고 느끼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이 보낸 기별이 아니라는 거지요. 이러므로 너희도 예배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다음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기별이며 공중에 나는 새 천사가 접하고 있는 그 기별이다. 여러분 세 천사의 기별이 뭐예요?이 이이 구절에 의하면 연대 설정에 의해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우리라는 생각으로 오늘의 삶을 재림의 삶으로 살아가는 삶이 새 천사의 기별이다.라고 하는 의미인 거지요.

바울은 이렇게시기 인식을 언급한 다음에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그 영적 법면이 [콧방귀] 빛의 갑옷을 입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 아라는 두 공통된 문장으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신다고 하는 사실, 지금이라도 오실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영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첫째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 합니다. 여기 12절에 갑옷을 입자 14절에 그리스도로 옷 입자 여기 이렇게 옷 입자 입자 입자가 번역된 어이요 단어가 제가 헬라를 쓰는 걸 좀 용서하십시오. 우리 정확한 이회를 성경적 이해를 위해서 가끔 요런 그냥 원어를 인용만 하겠습니다. 여기 입자 입자라고 번역된요 단어가 헬라어로 앤듀오라고 합니다. 그 원어가. 근데이 앤듀오라고 하는이 헬러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바울 서신에서 우리의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개념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이 앤두오라고 하는 단어를 갈라디아 3장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이렇게 표현하고 할할 때도 여전히 앤듀오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 제가 어이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오디었다 하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붙여 놓은이 두 개의 두 아이의 침례 사진은 우리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예. 아들과 딸을 제가 직접 침내를 그저 우리 반내원 목사님께서 정복리에서 그때 우리에 신앙생활을 위해 살았던 그 정복리 침내탕에 가서 제가 두 아이들 침내 주는 사진인데요.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옷입다는게 뭐죠? 여러분 가까우면 그리스도를 옷 입고 빛의 갑옷을 입자 그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야 재림을 준비하지요. 그렇죠? 성경에서 말하는 재림을 준비하려면 구원이 가까우면 빛의 갑옷을 입자 그리스도로 옷입자 뭐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침례 받는 것도 그리스도로 옷입었다고 그러게 무슨 옷입었다는게 무슨 말이에요?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입기 전에 벗자는 말을 먼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자 하면서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고 쌍을 이루죠. 방탕 술취함, 난 호색, 다툼 시기.요 각각 쌍을 이룬 여섯 개의 다른 단어들이 나옵니다. 굉장히 도덕적이고 윤리적 언급들이지요. 뒤에 나오는 문장에서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종력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여섯 가지 방탕, 술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가 뒷문장에서는 육신의 일이라고 본문 자체가 표현하고 있지요.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빛의 갑옷을 입자 이렇게 표현하는데이 은유적인 의미 쓰지요. 와은이 은유적인 의미, 비유적인이 의미를 써서 에덴의 삶을 이렇게 설명합니다.이 무구한 부분은 아무런 인조 의복을 입지 않았으며 그들은 천사들처럼 빛과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이 빛의 두루마귀가 계속 그들을 둘렀다. 에덴동선에서는 뭐 이런 옷 양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깐요. [콧방귀] 빛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지요. 근데 빛의 옷이라는게 도대체 뭐죠? 놀랍게도 성경은 신성을 묘사할 때 빛을 입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니엘 7장 9절에 보면 옛적부터 항상 계시니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라고 말합니다. 여기 바울이 어 화이 에덴 동산을 말하면서 사람이 죄짓기 전에 입었던 옷이 빛의 옷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옷을 다니엘이 묘사하면서 옷이 희기가 눈 같다 하얀 옷이다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빛색은 신성의 색이고 그 신성의 색을 우리 인간들에게 설명할 때는 흰흰흰색으로 묘사하지요.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0절에 천사들을 가리켜 흰옷입은 두 사람. 계시록 3장 5절에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켜 흰옷을 입을 것. 7장 9절에 흰옷입은 큰 물이 계시록 19장 14절에 희고 깨끗한 새마포 옷 그렇게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말하는 흰 색은 색깔이 아니고 빛 깔인 거지요. 예. 성경에서 거룩을 묘사하기 위해 신성한 존재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히다라는 묘사는 색이 아니고 빛입니다. 물리 세계에서도이 물리 세계에서도 소위 빛의 삼원색이라고 하는 RGB 옛날 우리가이 우전에서 RGB는 다 레드 그린 블루 할 때이 RGB는 빛의 사원색이잖아요. 예. 빛의 삼원색이 모아지면 가운데가 희지요. 그래서 그야말로 빛깔입니다. 그런데 빛의 사온색이 있는 것처럼 세계 사원색이 있지요.이 자홍 총록 노랑 색이 삼온색이 다 모이면 가운데는 검어지죠. 예. 그래서 왜 교회 직원회가 모이기만 하면 싸움이 생길까? 직원들이 빛을 분명히 하지 않고 색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지요. 각자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점점 더 시큼해지기만 하는 환해지지 않고 검어지잖아요. 신성의 색을 말할 때 늘 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빛을 묘사하는 인간 세계이 인간계 인간계의 빛을 묘사하기 위해 색으로 표현한 것이 흰색이지요.

흰색의 옷을 입는데 그냥 입지 않고 갑옷을 입으라고 말합니다.이 이 갑옷을 입으라는 말은 에베소 6장 11절에 전신 갑주를 우리에게 연상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렇게 말합니다. 그 빛의 갑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옷입는게 구체적으로 뭐예요? 그 다음 구절을 살펴보면이 개념의이 빛의 갑옷을 입자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요. 빛의 갑옷을 입자. 그다음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그랬습니다. 여기 단정히 행하고라고 하는요 말요 단정히라는요 말요 말이 똑같은 헬라오 단어가 고린도전서 14장 39절에서는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이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라고 말할 때 그 품이 있게가 단정히 행하고 가빛의 갑옷을 입자 빛의 갑옷을 입는게 뭐예요? 단정이 행하는 거예요. 단정이 행하는게 뭐예요? 품이 있게 행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내용을 한번 종합해 보겠습니다.

어둠의 일을 벗자는 말은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은 방탕하고 술취하지 말아야 하고 음란하고 호색하지 말아야 하고 다투고 시기하지 말아야 돼요. 아 이거 이야기할 땐 어 다 그 다 우리 다 안 하는 건데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소극적인 준비예요. 당연히 안 해야 하는 것들이에요. 예.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돼요. 방탕하고 술취하지 말아야 돼요. 음란하고 호색하지 말아야 돼요. 다투고 시기하지 말아야 돼요. 소극적인 준비예요. 우리 다 하고 있는 건데. 그런데 이제는 적극적인 준비지요. 바로 그게 빛의 갑옷을 입자예요. 벗자는게 있고 입자는게 있어요. 입자는게 뭐예요? 빛의 갑옷을 입자. 다른 말로 그리스도로 옷입자. 그리스도로 옷입자는 말이 뭐예요? 단정이 행하자. 단정이 행하자는게 뭐예요? 품이 있게 행하자.이 여러분 구원이 가까우면 뭘 준비해야 되죠?

콘도를 준비해야 되나요? 구원이 가까우면 프레프족처럼 무슨 surv바이벌 배낭을 매야 되나요? 생존 배낭을 매고 24시간 살 거예요. 우리는 뭘 준비해야 되지요? 바울이 우리들에게 말하잖아요. 구원이 가깝다. 빛의 갑옷을 입자, 그리스도로 옷입자, 단정이 행하자 말해 주고 있잖아요. 이거 우리 어떻게 준비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품이게 행하는게 구체적으로 무엇이죠? 다시 성경이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본문 속에서 찾아보시자고요. 아까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말할 때와 그리스도로 옷 입자라고 말할 때 똑같은 헬라어 동사가 쓰였다는 말씀드렸지요. 앤두워. 우리가 침내받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를 옷입었다라고 말할 때 앤듀오 그 헬라어 단어가 쓰였다고 말씀드렸지요. 그 앤듀오라는 단어가 또 한 번 쓰인 곳이 에베소 4장 24절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랬습니다. 앤어 입으라 그랬습니다.

그럼 입는게 뭐냐? 에베소 4장을 읽어 보면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갑옷을 옷 입고 새 사람을 옷 입었으면 그 결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본문 속에서 이어집니다. 성경을 그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 측합니다. 여기 그런 측이라고 하는 니오라고 하는이 헬라어 접속사는 논리적 상관 관계 혹은 인과 관계를 말해 줍니다. 나란이 나란이 설명되어 있는 상관보다는 이러니 이렇게 살아. 이게 원인이면 이렇게 살아라.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건 하나님의 은혜예요. 그다음에 그런즉 하면 이게 원인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그런즉 이렇게 살아라가 그다음에 나오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그래서이 구절은 세 번역을 이렇게 말하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 읽으시다가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나오면 차리고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앞에 내용이 뭔지 그다음에 뒤에 말하는게 뭔지 요건 반드시 연결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문을 한번 보십시다.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 내지 말고 어직 덕을 세우는 소형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보리고 새 사람을 앤듀어 입으라. 구원이 가까우면 빛의 갑옷을 입으라. 구원이 가까우면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입으라. 그 입으라는게 뭐예요? 단정히 행하라. 품미 있게 행하라. 그 품미를 뭘 뭐 어떻게 품미 있게 행하지요? 여기 또 엔듀오 하라. 그다음 엔듀오 다음에 그런즉 그러므로 계속 반복되는 핵심 개념이 뭡니까? 말입니다. 재림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뭘 고쳐야 하나요? 뭘 바꾸어야 하나요? 새 사람을 입으라 엔디오 한 다음에 그런즉 뛰오 살아라고 말할 때 가장 많이 반복되는 개념이 뭐죠? 말 제대로 하라 그럽니다.

무슨 준비를 할 겁니까? 재림을 위해 콘도를 살 겁니까? 서바이벌 배낭을 준비해야 할까요? 뭘 준비해야 됩니까? 참된 것을 말하라. 더러운 말은 입밖에 내지 말라.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라.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라. 비방하는 것을 버리라. 참된 것. 이게 진리입니다. 알레세이야. 진리입니다. 진리를 말하 선한 말 아가소스라는이 단어는 못된 것은 버리고 할 때 그 썩 썩은 과일을 말할 때 바로 그게 그것과 반대되는 말이지요. 비방하지 말라 할 때 비방이 블레스미이 신성 모독 하나님께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 뜻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6장 45절에 보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우리 동양 사람들이 좀 생각해 봐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싸운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싸운 악에서 악을 내나니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싸운 선에서 선을 댄다. 여러분 스님들이 공양 받을 때 한 푼 주세요. 그럽니까? 적선 한푼 합시오. 그러죠.이 무슨 뜻이에요?

날 도와주지 마시고 당신을 위해 선을 쌓으세요. 그게 적선입니다. 적선 한 푼. 날 돕지 마시고 당신을 위해서 뭔가 하나 좋은 걸 쌓으세요. 그 말입니다. 여러분, 여기 본문 누가복음 6장 40 45절에 보면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이 쌓은 선을 한자로 표현하면 적선이잖아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적선을 해야 돼요? 그리스도인들이 앤듀오 새 사람을 입었을 때 해야 하는 적선. 싸운 선에서 좋은 말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말 적선 제대로 해야 하는 거지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하라. 제가 우리 신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종종하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윗과 의사들은 손으로 사람을 살리고 죽여. 우리는 말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어. 의대생들이 수술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죽이기 위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신학도들이야.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저는 재림 준비를 위해 어떤 말 조심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다시 살펴봅니다. 제가 온전해서이 말씀을 전하는게 아니고 또 실수했구나 알아차릴 수 있도록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면서이 말씀이 기별을 함께 나누는 것이죠. 우리는 말을 통해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 들어내게 된다. 우리의 마음과 입의 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날에 각인은 말한 것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 자신을 살펴보면서 누구 누가에 대해 어떤 일에 대해 덕담하는 것 이외에는 악한 말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 결심하고 실천하는게 재림 준비예요. 말은 그 사람의 품성이 어떠함을 나타내 줄뿐 아니라 품성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다. 상호적인 거죠. 내가 말하면서 내 품성이 형성되고 내 품성이 내 말을 그대로 들어낸다는 거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개를 저으면 자기도 모르게 노노 이래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예수 예수 하면 잘 안 돼요, 여러분. 예. 이렇게 하면 어 그렇지.

말이 행동을 움직이고 행동이 말을 만들어요. 상호적이. 전에 우리 성경이 성경은이 아래 이렇게 써 있었잖아요. 전 지금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때 우리 선교사가 36자에 와서 우리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보더니 아 한국 성경이 굉장히 은혜롭다. 왜? 위로 읽으면서 아멘 아멘 하게 돼 있는이 영어 성경은 이게 쓸 수가 없잖아요. 다 노하게 돼 있다고 그랬어. 말이 우리 품성을 나타내고 말이 우리 품성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 또다시 리벤드 1904년에 쓴 와이세의 권면 중에 교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어려움의 10분의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말을 하는데 있다. 재림 성도인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구원이 가깝기 때문에 그 구원을 준비하는 우리들이 가지고 갈 것은 품성밖에 없다고 교회 들어오는 그 그 첫 달부터 그 이야기를 듣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르러 왔는데 저를 봐도 누굴 봐도 우리 다 함께 부족함을 처절하게 느끼는 삶을 살아가면서 이거 준비해야 되겠다 이렇게 다시 해야 되는 시간이 아닐까요?

본문은 다시 말합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그러므로 한 다음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노함과 분냄을 버리라 그럽니다. 두 번째 세 사람을 앤듀오 한 다음에 다루어야 할 두 번째 준비해야 할 내용으로 분을 이야기합니다. 감정의 문제죠. 여러분, 재림 준비할 때 뭘 준비해야 돼요? 자기의 분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다투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들을 매일매일 드려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우리 피차 서로의 기분 맞추기, 눈치 보기에 급급한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함께 자기를 이기기 위해 싸워 싸워 나가는 그 영적 공동체 모습에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우리 구성원들이 되도록 자신들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지혜자가 말했잖아요. 분을 쉽게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아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16장 32절. 노아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낮고 준비하면서 이런 모습들이 하나씩 하나씩 변해 가는 모습들을 빛으로 나타내 보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흥분된 성질과 날카로운 비난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도 못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지도 못한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고요함과 안정됨을 갖추게 된다. 시기와 다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준비하는 공동체가 돼야죠. 품성의 힘은 두 가지 곧 의지력과 자재력으로 구성된다. 많은 청년들이 강하고 분방한 격정을 품성의 힘으로 오해하나 사실은 자신의 격정의 지배를 받는 자는 연약한 사람이다. 그다음 아주 아름다운 표현이 나오지요. 사람의 진정한 위대함과 고귀함은 그가 집배받는 감정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게 그가 집에 하는 감정의 힘에 의해 측량된다. 가장 강한 사람은 모욕을 느끼면서도 격정을 억제하고 그의 원수를 용서하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들에게 깊은 도전으로 던지고 어떻게 하루하루 준비할까 기도하면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 도전 아닌가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는 반드시 마귀에게 틈을 준다는 거지요. 현대 성경은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여러분이 화를 내면 악마에 발붙일 기회를 주기 쉽습니다. 분노는 반드시 시험을 가져온다는 거지요. 지금 보시는 사진이 한국의 어떤 거리 사진인 것 같습니까? 우리 지방에 사시는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어 대학 근교에 사시는 분들은 아실 수 있어요.이 사진은 36대학에서 퇴교원으로 가다가 그 다리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는 퇴원 사거리 사진입니다. 에, 제가 느닷없이이 사진을 보여 드리는 이유는 어, 지금부터 40년 전인에 1985년도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 목회를 나가서 반포 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에, 태경훈 교회를 제 친구가 섬기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친구에게 전화가 봤습니다. 친구야, 태교원 사거리에 이런 플랫 카드가 붙었다. 교단 검증 공개 강좌 친구가 그 자리에 함께 와줬으면 좋겠다. 아이 렇습니다만 그때도 어이 소리 들으니까 제가 시간 내서 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

안식교 이단 검증 공개 강좌 이랬습니다. 제 그날 그 시간에에 태계원에 있는 어느 한 계신 교회 그때만 해도 조그만 한 교회였습니다. 예. 갔습니다. 갔더니 그 얼마 안 되는 교회 그자에 사람들이 꽉 찾는데 제가 보니까 3분은 우리 교 교훈님들이세요. 우리 36대학의 장로님들도 오시고 근데 벌써 뭐 표정들이 흉가해요. 제가 들어가서 제일 앞자리요 자리 딱 강대상 앞에 첫 번째 자리 여기 제일 앞에 제가 앉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도 제가 젊다고 생각하는데 40년 절이니까 제가 얼마나 젊었겠습니까? 그렇죠? 예뻤습니다. 제가 아, 이분이 두시간 넘게 강년을 하는데 아, 정말 못 견디겠어요. 얼마나 무래한지. 그때 강연을 하신 분의 얼굴을 가리고 그분을 공개합니다. 이분이십니다. 이분이 그때 강연을 하시는데 우리가 내용이 아주 선명하고 분명하더라도 표현과 단어는 어양은 정중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근데 막 막 막 우리를 막 끌고 다녀요. 그러면 안식교인들이 이게 투유의 그 억양과 목소리 방식하는 거. 그때 제가 들었던 말 중에 제일에 그 평생 잊지 못한다는 단어가 여러분 안식 교인들 만나면 말이 꽉꽉 막히지.

그 사람들요. 제식해서 머리는 좋아요. 그래. 와 제식해서 머리는 좋아요. 하는데 어 저양반 사람들이 다 웃어요. 예. 그다음에 하는 말이 머리는 좋아 가지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우리가 얼마나 죄된지는 살피지 않고 남들이 뭘 잘못하고 있나 그렇게만 살피고 있어요. 어 근데 저 그 말 듣고 제가 도전이 됐습니다. 어 저분이 저렇게 생각하게 만든 건 그가 반 오해했다 하더라도 반은 우리가 그런 인상을 준 거니까. 아 그렇게 해서 두시간 넘게 강여를 한 다음에 이분이 질문하십시오. 이제 공개 질문하십시오. 근데 제가 아주 화가 막 이렇게 차올라요. 얼마나 화가 나는데. 내가 기도를 많이 했으면 앞자리 앉아서 딱 기도하고는 질문하라 그러는데 제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 딱 일어나서 목사님 오늘 우리 재림 교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몇 시간 몇 분 몇 초 동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한 다음에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린 다음에 돌아섰습니다. 돌아서 청중을 탁 보니까 모두가 다 처를 쳐다봐요.

제가 지금 보니까 우리 재림 교회 성도님들 많이 오셨습니다. 여러분 목사님께서 지금 질문하라고 하셨는데 질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 저도 지금 굉장히 가슴을 제어하기가 힘들만큼 화가 나는데 우리 모든 재림 성도님들이 그러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우리가 믿는 바가 옳다는 사실을 화가난이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비진리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청중을 향해 제가 딱 일어서 이야기한 다음에 되돌아서서 목사님을 보면서 목사님 지금 몇 시간 몇 분 몇 초 동안 말씀을 하셨으니 우리가 의논해서 날짜가 정해지면 우리 우리이 태원 우리 재림 교회에서 똑같은 시간 분량만큼 우리가 집회를 할 테니 그때 오십시오. 그게 회열하지 않겠습? 그게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그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 예. 지금 생각해 봐도요. 그때 젊어 40년 전 젊었을 때 제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릅니다.이 정말 그 정말 참 잘한 거 같아요. 그때 그 노를 가라앉치면서 꾹꾹 누르고 제가 실수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장면 생각하면 정말 젊었을 때 제가 기특합니다. 여러분 다스려야 합니다. 야고보 3장에서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관용하고 용납하고 양순하며 친절하며 그러잖아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비진리적인 대도를 나타나면 써왓 애들 말로 무슨 일가 있어요?

분을 다스리라는 거죠. 진정한 위대함은 내가 나타내는 감정의 크기가 아니고 큰 감정을 다스리는 정도의 나의 진정한 위대함이 있다는와의 권면도 있잖아요. 이거 준비해야 됩니다. 안 됩니다. 세 번째 와이 뭐라 말하나요?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 즉 가난한 자에게 구제가 되고 선한 일을 하고 서로 친절하게 하고 서로 용서하라. 다시 말해. 첫째 준비 말 준비하고 둘째 뭐 화분 분 화다 다스리게 준비하고 셋째 뭐지요? 일 가난한 자를 꾸지하고 선한 일을 하고 서로 친절하고 서로 용서하라 와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즉시 작은 자가 누구예요? 재물, 지위, 학력, 영향력 그 어떤 것에 있어서 무로 봐도 나보다는 못한 자가 지극히 작은 자예요.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예요. 학생들이 선생이 점수를 줄 때는 선생한테 잘해요. 왜? 내가 자기보다 높으니까.

그런데 진짜 학생이 선생을 좋아하는지는 내가 자기에게 아무 영향지 않을 때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진짜 관계를 놔. 우리가 누군가에게 할 때 나에게 뭔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투자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나에게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 그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겁니다. 사도는 옷을 입으라고 말했지요. 옷은 가리기 위해 입습니다. 뭘 가리기 위해 건가요? 벌거벗은 것을. 옷은 왜 입나요? 나타내기 위해 있습니다. 옷은 우리의 모습과 삶과 우리의 양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거지요. 아까 그 집회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96년 4월 2일 오후 2시 한국 기독교 연합 회관에서 있었던 공개 토론에는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큰 도전이었고 잊지 못할 인생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두 개의 주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말미암 구원에 대해 안금영 목사님이 그리고 재림 교회의 재림 신앙에 대해 제가 그때 30대 후반에 젊은 교수였던 제가 재림 교회를 대표해서이 토론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같은 주제를 다루기로 했한 맞은편 강사님이 제가 지금 화면 처리한 이분이십니다. 여러분 그때 1996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그때 그 토론에서 우리가 피차 약속한게 있었습니다. 강사들끼리는 절대로 서로 묻지 않는다. 신사적으로 한다. 근데 여러분 지금도 유튜브에 다 떠 있습니다만 이분이 이미 이분의 얼굴이 다 유튜브에 공개되 있습니다만 이젠 돌아가셨습니다. 근데 그래도 저는 화면 처리했습니다. 그때 이분이 우리의 그 재림 신앙에 대해서 나름 연구에서 평가하면서 계속해서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근거한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면 71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닥사스다 왕을 이분이 계속 아다닥스다라고 발음을 합니다. 여러분 아닥사스다 왕을 아다스다라 발음하기 때문에 이분이 먼저 발제하고 난 다음 재순자가 되었을 때 다른 말 할 거 없습니다. 여러분 아닥 사스다가 성경에 있지 아다 탁스다 왕입니까?

제가 이렇게 하면 분위기 한 순간에 다 넘어가고 뭐 한 순간 제쪽으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죠. 제가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강력히 일어났습니다. 근데 계속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제가 제 순서가 되었을 때 박사님 시카고에서 목회하셨다고 그러시는데 감사합니다. 저도 잠시 시카고에 살았습니다. 재림교회 깊은 관심을 보여 주셔서 정말 감사 감사합니다. 인생의 선배님께 제가 정말 예우를 갖추고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고 그분이 제가 말씀을 쭉 드렸습니다. 그리고 끝났습니다. 끝나고 났는데 오 반응이 뭐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제 연구실로 돌아가는데 벌써 지금처럼 이렇게 유튜브 시대가 아닌데 딱 그때 복사해서 보던 시대인데 사람들이 벌써 그걸 보고 막 전화하기 시작했습니다.네 김창입니다. 야 목사님이 수고했습니다. 막 교수님이 감사합니다. 그 다음 날이 됐습니다. 어떤 분이 전화했는데 김상례입니다.

받으니까 김상례 교수님이십니까?네 네. 김상례입니다. 여기는 막 대급입니다. 그래요. 어떤 일이십니까? 막 내 그 비디오 봤습니다. 그래요. 그 아 오늘 교회 나가세요. 나 교회 안 나갑니다. 그래요. 어 근데 어떻게 전화하셨습니까? 아마 우리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우리 집사람이 일반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6개월 전에 재림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분이 고의 공무원입니다. 주변에 있는 분들이 당신 와이프가 안식 교회를 나가게 돼서 애들 교육도 망치게 됐고 가정이 위험해졌다고 스트레스를 많이 줬는데 아내가 그걸 보라 그래서 봤다는 거예요. 아 선생님 그런데 교회 다 안 나가시는데 보시니까 이해가 되세요? 막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아 근데 왜 전화하셨나요?이 이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요. 막 무슨 말 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은 막 그 36대학 안식교 교 목사님들 그 교수님들이 같이 도론하는 그 태도와 부디기를 보니 막 너무 멋지고 우리 젊은 교수님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무 자랑스러워서 내 그 교수님한테 그 얘기 하고 싶어 내 전화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그 전화 끊고 속으로 얼마나 얼마나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제가 만약 그때 나와서 아닥 쌌다도 몰라서 아다 딱 쓰다가 뭡니까? 제가 그랬었더라면 이분이 보기에는 다 도진 개질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진리를 말하기 위해 진리 태도가 진리답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그런데 이제 공개합니다. 30년 동안 얘기하지 않았던이 이야기 저와 함께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했던이 맞은편 박사님 이분이 그 전화를 받은 그날 오후에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3육대학을 오겠다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박사님 어 일이십니까? 오십시오. 오셨습니다. 만나서 제가 대접을 해 드렸습니다. 이분이 뭐라 그런지 아세요? 김교수님 제가 이번에 주제를 다루기 위해 공부 좀 했습니다만 제가 사실 안식교회 잘 모릅니다.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니 자료 좀 다 주십시오. 제가 온갖 자료를 다 모아 드렸습니다. 36대 도서관 앞에 그 솔파에서 만나서 끝나고 식사하고 가시려고 그러는데 가시기 전에 이분이 저한테 이렇게 말해요. 교수님 제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뭡니까? 나에게 정말 내가 사랑하는 손자놈이 한 명 있습니다.

이놈을 제대로 공부시키고 싶어 36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싶은데 36학교 고등학교 들어갈 수 있도록 교수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이분의 손자가 한국 36고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만약 그때 재순에 나와 가지고 아 딱 쓰다가 뭡니까? 했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그때 제가 박사님 감사합니다. 시카고 계셨다는데 말 아름답게 하고자 최선을 다 했고 분 눌렀고 따뜻하게 대접해 드리는 일 했더니 말 다스리고 분 다스리고 일 따뜻하게 했더니 이분이 그런 일을 해 선택을 한 겁니다. 뭐가 재림 준비입니까? 혼도를 사고 생존 배낭을 준비하는게 재림 준비입니까? 우리는 종만의 공포에서 살아남기를 준비하는 프레퍼족이 아닙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으려는 소망의 재림 성도들입니다. 빛의 갑옷, 그리스도, 그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단정하고 품미 있게 행해야 합니다. 선한 말을 하고 분을 다스리고 지극히 작은 자를 살리는 선한 일을 하는게 가까운 구원을 준비하라고 바울이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권면해 주시는 구체적인 권면입니다.

준비합시다. 아멘.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신 말씀 우리들의 삶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열매로 나타날 수 있도록 다시 제대로 준비해야 되겠다 살피는 결심의 시간, 성령의 감동의 시간 되도록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입니다. เ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