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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화요일 · AM 6:00 · 새벽말씀 | 김정곤 목사 (7.21화)

새벽말씀: 기쁨을 회복하는 신앙 (김정곤 목사)

YouTube 자동 생성 자막을 문단으로 정리했습니다. 인명, 성경 구절 및 전문 용어에는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เฮ เฮ เฮ เฮ เฮ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들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미명의 저희들을 이곳에 불러모으시고 말씀의 잔치를 풍족히 내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세속에 젖어서 주님을 잊어버릴 만한 때 또 이런 장막 집회를 열어 열어서 저희들을 불러모으시고 저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더욱 갈급하는 마음을 소승케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들에게 내린 그 축복으로 인하여서 저희가 저희의 심령에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옵니다. 또한 특별히 주님께 간고하는 것은 저희들의 자녀 다음 제너레이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번에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자녀들을 손을 잡고 이곳에 모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희 마음이 벅찼습니다. 우리들이 점점 소진하여 갈 때 우리의 자녀들이 더욱 소생하여 강성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녀들에게 주님을 가르킬 수 있는 기회에 참석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들이 상상 못할 기쁨이었습니다. 그곳에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가 함께하여 주셔서 정말 마지막 때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영혼들을 멸망케 하려고 다닐 때 우리 자녀들이 이곳에 모여서 하늘의 풍성한 축복으로 성령의 그 놀라우신 은총으로 주님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와 어렵고 힘든 가정 속에서도 주님을 기억할 수 있는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그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정말 강성하여 줘서 어렵고 힘들 때도 주님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님 특별히 그곳에 당신의 크신 은혜가 늦은비 성령이 쏟아짐 같이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서 마지막 때에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하늘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생애를 살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이 더 강관하여지도록 완전히 주님께 신뢰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시고 순종하는 마음과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그 썰반 종의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시켜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또 이곳에 불러 주신 당신의 귀한 종들로 강사진 모든 강사진들의 하루를 지켜 주시고 그 육체를 강건케 하여 주시옵시고 그 심령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성령의 그 놀라우신 능력으로 우리 마음에 다득 당신의 말씀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시종을 오직 성령께서만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당신의 임지함을 느끼며 우리가 기쁨으로 또 오늘 하루를 말씀 속에 완전히 잠길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옵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참 어지럽고 복잡하고 마음이 아픈 시대에 주의이 성경이 저희와 저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리대로 이루어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숨] 시편 63편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옵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다. 새벽에 주의 말씀. 어이 말씀 한 절에는 기쁘다 즐겁다라고 하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내가 새벽에 주의 말씀 앞에 있을 때에 기쁘다, 감사하다, 즐겁다, 찬송한다. 이런 말들이 한 성경 기자를 통해 저희들에게 진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이 새벽에 어떤 마음으로이 자리에 나와 있을까요? 혹시 새벽에 좀 지겹다. 질린다. 지친다. 심심하다. 지루하다. 혹시 이런 느낌 가지고 오늘 아침을 맞은 분 계십니까? 이거 사는 거 지친다.

의외로 젊은 아이들로부터 나이만은 어린애기까지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분들이 꽤 많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일상적인 삶과 내 신앙에 있어서 어떤 느낌을 받고이 순간 혹은 하루를 살고 있을까요? 교회 갈 때 어떤 느낌이십니까? 말씀드릴 때, 기도할 때에 어 제가 이제 춘천에서 강원도 춘천이라는 곳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아이들도 어리고 한창 젊은 그런 때였는데 일요일 아침만 되면 반가운 전화가 왔습니다.이 서울이나 인근에 계시는 분들이 전화를 하셔서 아 김목사 오늘 시간 어떠냐? 어, 괜찮습니다. 우리가 내려갈 테니이 라이드 좀 해 달라. 뭘 말씀하실까? 기차 타고 오시는 분도 계시고 뭐 이래저래 오십니다. 모시고 가면 어떤 분은 서울에서 당시에는 교통편이 좀 어 그 길이 많지 않을 때여서 서울서 강원도 춘천까지 오려면 정상적으로 올 때는 1한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일요일 아침이나 토요일 오후나이 오갈 때는 4시간 1요일 오후에 서울을 갈 때는 8시간씩 걸릴 때였습니다.

그런데 오시는 거예요. 이유가 뭔지 혹시 아십니까? 뭘 드시러 오셔요? 강원도 춘천에 유명한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혹시 춘천 고양이신 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 닭갈비. 닭을 요렇게 저렇게 예쁘게 잘라서 이렇게 맛있게 먹는 닭갈비도 있지만 또 유명한게 하나 막국수라는게 있습니다. 이게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유명한 한 집이 있어요. 어, 인터넷에 찾아보십시오. 유포리 막국서라는 곳이 있어요. 제가 갔을 때 이미 수십년 전통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먹었을 때 정말 맛이 지질이도 없었습니다. 야, 이런 걸 왜 돈 주고 먹지? 이런 맛이었어요. 너무 밋밋하고 뭐라 그럴까요? 하여튼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이걸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오시면 이걸 한 거릇 딱 드시고 나면이야 [신음] 뭐 화폐장님 뭐 연합회장님 근데 어느 날은 전화를 하시고 난 다음에 몇 시간이 이렇게 약수 시간 늦쳐서 오셨어. 어떻게 오셨냐 했더니 중간에 어디 사고가 나셨나 봐. 나서 밀리는 바람에 이분들이 오셔 가지고 어 오후 2시 3시쯤 막국수 한 그릇을 드시고 다시 8시간을 올라가셨습니다.

내려오는 거 4시간 올라가는 거 8시간 그때 마구 상거릇 값이 3,500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에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이걸 먹으러 이걸 왜 오실까? 그런데 이게 이제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까 어느 날 아침 일요일 아침에 전화를 제가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오늘 안 오나? 오면 어쨌든 모시고 가면 아이들하고 저희들하고 이렇게 일주일 한번 외식을 하는 순간인 거예요. 교회 건축을 할 때 뭐 힘들 때이 시간은 행복한 아이들이 가면이 이걸 맛있는게 먹 이렇게 먹는 걸 보면 부모로서 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7년을 해 보십시오. 어느 순간에 전화길 꺼두고 싶은 처음에는 맛을 모르다가 맛을 배우고 난 다음에 행복했다가 마치 우리가 저 밖에서 진리를 처음 듣고 와 하고는 들어와서 침내받고 뜨겁고 새벽 기도하고 교회 모든 봉사 다 맡아서 하고 그러다가 1년 2년 어떨 때는 이렇게 찔림도 받고 어떨 땐 침뱉틈도 받고 어떨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몇 년 반복하고 난 다음에는 목사님 저 안교장 그만하겠습니다. 목사님 저 다른 교회 가겠습니다.

어 제가 그러더라니깐요. 그 맛있는 마국수가 지치는 거예요. 사람 만나는 것도 지치고 그냥 잠만 좀 잤으면 좋겠다 이러 기쁨도 지치더라. 하나님 믿는 것도 지루회하고 지치는 삶이 저만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예레미야 15장 16절과 에가서 5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이 이 대단한 예레미야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람 주의 이름으로 불림을 일컬음을 받는 사람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싸오니 새벽 기도도 오고 아침 9시부터 그다음에 10시 반까지 10시 반부터 12시까지 오후에 또 간증 그리고 저녁 말씀까지 이렇게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을 내게 기쁨과 내 마음에 즐거움 이오나이 영분으로 하면 그다음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어 제가이 말씀을 딱 읽고 난 다음에 이상한 양가 감정에 빠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고 어 나만 이런게 아니었구나. 안심이 됨과 동시에 한편으로론 예레미야라고 같은 목사님이 말씀에 대한 기쁨이 사라진 시대가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언제였을까요? 유다가 멸망할 때였습니다. 그때 시대를 기록한 다른 목사님의 기록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성전에 충만한 기쁨이 끊어졌나이다. 여전히 안식을 지키고 여전히 내가 뭘 먹고 안 먹고 장막해도 하고 종교적으로 살아가는데 기록에 남기기를 성전의 충만한 기쁨이 끊어진 시대.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뭔가 호전해서 예배가 마치고 집을 가야 되는데 못 가겠는 거예요. 뭔가 좀 잘못됐어진 시대가 성경에 있더라는 거예요. 마치이 시대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기쁨이 사라지는이 이유가 뭐였을까를 찾았습니다. 찾았더니 역대아 36장에 세 가지로 이유를 요약해 뒀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당시 최고 지도자가 성경 표현에 의하면 회개하지 않았다.

어 어느 한 나라가 망하고 교회가 힘들어지고 기쁨이 사라진다라고 하는이 수사석 표현이 적용되는 시대에 첫 번째 원인을 하나님이 뭐라고 기록했냐면 그 집안의 어른 혹은 그 교회의 최고 터주대감 같으신 분이 교회를 개척했어 뭐 이런 분 혹은 나라의 지도자가 회개하지 않을 때 제가이 표현을 여러 번 생각을 했습니다. 입니다. 죄를 인지하지 못할 때가 아니고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너무나 태어나고 뻔뻔하게 신앙하는 거. 어, 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 왜 성도들이 혹은 내 아이들이 아침 예배 드릴 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가? 두 번째는 이방을 본받는 제사장들이이라고 표현이 나옵니다. 목사님들이 존재는 했는데 그 목사님들의 연구 레퍼런스가 이방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근데 그거를 교회 발전, 교회 선교, 새로운, 개혁, 혁명 뭐 이런 단어들을 수식해 가면서 이방에서 하는 것들을 적용하는 그래서 심할 경우에는 TV 오락 프로그램을 안교 시간에 적용해서 어, 제가이 얘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당황을 하셔 가지고 저한테 쫓아오셨어요.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돼 있다. 들어다 망했다. 세 번째는 말씀을 멸시하는 백성들.이 첫 번째는 최상위 그룹. 두 번째는 어 성직자거나 교회에서 신앙이 있는 사람 혹은 신앙의 모본이 돼야 될 사람들. 세 번째 그룹은 그들을 지켜보며 그냥 이렇게 교회 초보 혹은 세신자들 혹은 지금 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독교 그들이 볼 때 말씀을 멸시했다. 오늘날과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근데 말씀을 멸시한 이유가 뭐냐? 영감의 결과 본교 주석에서는 저 사람 우리의 최고 지도자인데 죄가 있는 걸 아는데 회개하지 않는 걸 보고 굳이 내가 회개할 필요가 있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장, 목사님들, 장로님들, 집사님들이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보고 섞인 것을 보고 거룩함과 속됨이 섞인 것을 보고 하나님 말씀 능력 없구나라고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목사와 제사장과 말씀을 멸시했다라고 기록이 돼 있더라고요.

아, 그게 어 역사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였고 영적으로 말하면 기쁨이 사라진 이유였다. 우리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기쁨이 사라진 그 시대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 그는 영적 쇠퇴와 멸망을 지켜봐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몇 년을 지켜봤냐? 말씀에 보면 그는 그 시대에 가장 오래 교회를 다닌 목회를 한 지도자요 섬기는 자였습니다. 60년을 여러 왕을 거치고 어떨 땐 아주 젊은 왕 어떨 땐 경험 많지만 이런저런 정치적 영향을 받는 왕 어떨 때는 유력한 장로들에 의해서 뽑혔지만 그 마음에 개혁의 의지가 없는 왕 별별 왕들의 영역을 쳐다보면서 60년 동안 교회 신앙을 했는데 할아버지가 돼서 그의 삶에 고백이 뭐냐면 내가 이제 뭘 먹어도 맛도 없고 교회 와서 앉아 있어도 기쁨 난 누가 물어보면 내가이 미국에 와서이 교회에서 60년을 지낸 80대의 어른인데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분인데 현재 상황을 보면 그냥 뭘 해도 다 들었던 얘기예요. 그 내가 다 안다.

내 옛날에 다 그렇게 했어. 가만히 예레미야가 그랬다. 그래서이 오늘은 보여 드릴 수 없지만 예레미야라고 이렇게 검색을 하면 나오는 사전에 보면 이렇게 하고이 성도들 좌절하고 무너져 있는 교회들과 성도들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 모습이 사파로 그려진 모양에 이렇게 대표적으로 뜹니다. 그럼 이럴 때 아버지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실까요? 저희들에게 현실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 뭐 그것도 지혜로운 그리고 필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은 그때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이렇게 불러모으셨을까? 그리고 어떤 삶의 기회를 한 번 더 주고자 원하셨을까? 그걸 찾아가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의 새벽이고 예배이고 신앙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예레미야서를 꽤 긴 성경책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다 보면 특이한 한 반복되는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라는 라는 표현이 간접적인 비슷한 혹은 어 이런저런 표현 빼고 정확하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는 표현이 30여회 기록이 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를 제가 구약 전체를 살펴봤더니 구약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이런 표현이 123회가 기록이 돼 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30여회가 한 사람 한 시대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는 겁니다. 그때가 언제냐? 사람들이 말씀을 멸시하던 시대, 새벽 기도 같은 거 안 하는 시대, 사람들이 교회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라고 어떤 목사가 15분 동안 설명한 그 시대에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라는 말씀이 전체 기록에서 1분의 집중적으로 그 사람에게 표현되고 있었다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피곤하고 힘들지만 우리가이 새벽 주의 말씀 앞에 있는 이유가 뭘까요?이 이 수많은 목사님들이 기도하며 금식하며이 집회를 준비하고 그리고 여기에 나아와서 우리가 함께 여호와의 말씀을 펴는이 하나님의 마음 그 표현의 진심이 뭘까요? 이런 때일수록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고 오전 9시에 임하고 10시 반에 임하고 목사님을 바꿔 가면서 해외에 선교하는 그 귀중한 분들의 시간을 희생해 가면서 하나님이 나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말씀이 임하도록 허락하시는이 놀라운 은혜.

야, 예레미야가 그걸 경험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데 그 말씀의 내용이 뭔지를 제가 살펴봤더니 예레미야 32장 41절에 이렇게 기록되 있습니다. 내가 기쁨으로 복을 주겠다. 기쁨이 사라진 시대. 성전에서 기쁨이 끊어진 시대라고 어떤 사람이 성경에다 기록을 했는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라고 하는 80이 다 된 나라의 멸망을 지켜보고 있고 성전이 불타는 걸 보고 있는이 기쁨이 끊어진 할아버지에게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 텐데 그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할 텐데 내가 기쁨으로 복을 주겠다. 내가 너희 자식들을 잘되게서 복을 주겠다. 내가 돈으로 복을 주겠다. 내가 장수로 복을 주겠다.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거. 내가 오늘 끝, 오늘 내 심장이 멋을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회복하고 싶은 성령의 열매가 희락이라는 것이 뭔지를 내 자녀들에게 가감없이 보여 줄 수 있는 할아버지. 예야.

내가 60년을 하나님을 믿었거든 나 마음이 너무 기쁘다.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할머니. 그래서 손주들이 그 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가 밖에서 술도 먹어 보고 게임도 밤새 해보고 하나도 안 기뻐요. 어떻게 하면 좋죠? 저 이제 살 의미가 없을까요? 했을 때 아니야. 교회에서 기쁨이 사라진 것 같고 영적 생명력이 약해져 가는 이때에라도 아니야. 내가 60년을 하나님을 믿었는데 오늘도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기쁨으로 복을 주겠다고 하셨다. 야, 하나님 참 좋으신 분입니다. 나라가 망할만큼 교회에서 기쁨이 사라졌다고 그렇게 성경에 기록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있는 한 할아버지 늙은이에게 그의 미래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차라리 젊은 다니엘도 아니고 할아버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에게 기쁨으로 복을 주겠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서이 아침에 우리 어르신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복 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어, 제가 한이 교수님들께서 이렇게 차를 마시게 됐습니다. 옛날 말로 다라고 하죠. 차를 마시는 예절을 제가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교수님 네분 저하고 또 뭐 같이 가신 분 계서 차를 마셨는데 다 정말 차잔이 예쁜 것들이었어요. 요즘 차잔 좋은 것들은 아주 뭐 고가에 뭐 이렇게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아, 근데 제가 보여 드릴 순 없는데 제 차자는 이렇게 사발 비슷하게 생긴 금이적 가서 그 안에 때가 낀 그런 거를 제 앞에 놓으신 거예요. 그 저는 이제 그걸 보고 처음에는 제가 제일 어리고 젊고 나이가 [콧방귀] 좀 그 연배가 낮고 그다음에 뭐 목사니까 겸손을 배우라고 하셨나 보다 정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는 이제 갔는데 이분이이 그 이제 호스트 되시는이 교수님이 차를 [콧방귀] 따라 주시는데 여러분 이렇게 차를 다들 아시겠죠? 이렇게 부으면 이렇게 흘러 넘치도록 부어 주세요. 그러면 이제 그걸 마십니다.

한 잔을 마셨습니다. 주시는 거니까 마실 다 마셨습니다. 내려놓으니까 이번이 아 차를 좋아하시는 거 같더니 또 흘러넘치도록 부으셨어요. 이게 이만큼이 대접이거든요. 예. 부셨어요. 제가 또 별 생각 없이 그또 이게 보위차라고 저기 어디 가서 그 저기 주도 밑에서 구해 오신 거라고 좋은 거니 좋은 몸에 약되기 싶어도 또 다 마셨습니다. 호 하셔들이 또 쭉 부셨어요. 제가 한네 잔인가 다섯 잔인가 마셨습니다. 여러분 대접으로 차를 다섯 자서 마시면 아무리 보이라도 교수님 제가 더 이상 못 마시겠습니다. 했더니 허 하시더니 [콧방귀] 목사님 차를 예의 있게 거절하시면 차잔을 뒤집어 놓으시면 됩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전 그걸 몰라 가지고 계속 마신 거예요. 예의 갖춰서 그만 마시겠습니다 하려면 차잔을 살짝 이렇게 뒤집어 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럼 이제 더 안 부 테니까. 근데 전 그걸 몰라 가지고 계속 주는 대로 먹으면서 속으로 별 생각 다 하는 거예요.

그 2천에 가면 한 길거리 파는 거 한 1,000원 2,000원 하는 실패한 질그릇 같은 금 짝짝하고 이런 거에다가 사발로 계속 제가 이제 어이 없어서이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교수님이 씨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속상하셨죠? 왜요? 그랬더니 저희는 다 이렇게 좋은 차잔으로 마시고 목사님은 이렇게 참 그 제가 씨웃으면서 아주 경건한 척 제가 오늘 겸손을 배웠습니다.에 말씀하시기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목사님이 지금 들고 있는 거 보기는 그래도 2천만 원짜리입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여러분 2천만 원짜리 잔에서 차하셔 보셨습니까? 저는 그날이 처비자 마지막이었어요. 예. 하라고 물었습니다. 음. 근데 왜 이렇게 금이가 있고 시커해 이렇게 사진에 보면 이렇게 시커케 때까지 묻어 있는 금이 한 개가 아니고 쭉쫙쫙쪽 다 이렇게 갈라져 있는 이거 도대체 뭡니까? 가 이렇게 했더니 목사님 이거는 어 한 지혜로운 토기쟁이가 이제 흙으로 빚어서 이제 차잔 뭐 이렇게 토기를 만들고 난 다음에 유약을 오래 쓰여서 유약을 바르고 이제 감마에 넣으면 불가에 넣으면 얘가 이제 벌겁게 이렇게 이제 타 익으면서 다 굳고 그릇이 됩니다. 이걸 꺼내서 이제 뭐 문제 있으면 깨고 없으면 이제 이제 상품으로 쓰는 건데 꺼내서 이게 식어 가는 동안에 그 토 흘기 식는 속도와 발른 유약이 식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보통은 저절로 금이 갈라집니다.

없는게 또 싸구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갈라지게 돼 있는데 그 갈라진 것을 어느 한 주인이 참 마음에 들어서 샀습니다. 마치 제가 이걸 사는 것처럼 이렇게 구하면 거기다 차를 이렇게 따르면 차가 이렇게 담겨 있는 동안에 차 안에 물 안에 섞여 있는 입자들 차입자들이 떠돌다가 그 금에가 있는 유약이 갈라져 있는 틈으로 가서 흙 자체에 가서 박히는 거예요. 그게 한 번, 두 번 세 번 1년 2년 3년 이분은이 차잔을 한 30년쯤 쓰신 건데 30년쯤 되면 마치 때처럼 고게 그 갈라진 틈에 차 입세가 들어가서 저렇게 총 박혀서 얼핏 보면 까만 이렇게 그 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차 입자들이 이렇게 박혀 있는 거야. 그래서 30년쯤 되면 어느 순간에 차 물 아무것도 없는 빈 그릇이어도 그것에서 뭐가 난다? 향이 납니다. 처음에 그가 불가에 들어가서 인생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아플 때는 토기쟁이 자기 주인에게 좀 섭섭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왜 내 아이가 이렇게 아파야 합니까? 왜 내 남편이 이런 사고를 겪어야 합니까?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긴 기쁨이 끊어지는 애가 끓는 애가 예레미야 애가 어 그런데 더기가 막힌 건 다음날 아침에 주인이 다시 그 갈라진 심장에다가 뜨거운 물을 뒤 붙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내가 아파 죽겠는데 계속 말씀이 들어오고 어떨 때 목사님의 설교에서 어떨 때 기도하다가 계속 삶의 경험해서 뜨거움을 아뜨거 아뜨거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1년 5년 10년 되고 나면 어느 순간에 그걸 견딘 사람은 그 주인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가진 향기를내는 그릇이 된다는 거예.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견이에요. 목사님 얘가 보기는 이렇게 생겼어도 저에겐 친구입니다. 목사님이 2천만 원 가져도 저거 팔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목사님을 그렇게 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시더라고요. 목사님이 이제 목사가 아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앞으로 살아가려면 그 교수님은 은퇴하시고 이렇게 아주 연로하신 대선배 인생의 선배셨어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그러나 그 순간순간을 견뎌내고 이겨낸 남이 봐서는 별 볼품 없는 질그릇 같은 인생이어도 주름도 깊이 패이고 몸에서 냄새도 나고 그래도 하나님은 목사님을 어느 순간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는 내 것이라 예레미야가 그걸 겪고 있지 않았을까? 이걸 어려운 한자로 차심이라고 부릅니다. 금가 있는 거. 우리 인생에 종종 어느 날 아침 어느 날 교회에서 내 신앙이 금이 쪽가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조금씩 조금씩 빈틈이 벌어지더니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기회고 그 마음을 다 담고 싶은 하나님의 정성의 순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9절과 13절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라. 내가 너희에게 기쁨을 얻게 할 것이라. 예레미야가 지금 얻고 싶은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나라가 망하는데 나라 좀 다시 재건해 주십시오. 성전이 불탔는데 성전을 다시 세워 주십시오.

내 아이들이 교회를 떠났는데 되도록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많은 기도 제목이 있었겠습니까? 잡혀간 다니엘, 에스겔 좀 되도록 해 주십시오. 수많은 기도 제목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 깊이 있는 한 개인, 하나님 앞에서 한 어린 양으로서의 예레미야의 삶을 깊이 있게 터치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의 아버지고 이스라엘의 아버지인데 먼저 너의 손주 자녀들 전에 교회 전에 먼저 네가 할아버지고 내 인생이 고통스러웠을지라도 내가 너를 기쁨을 얻게 해 주고 싶다. 집안의 어른이 하나님과의 기쁨을 회복하는 날.이 교회의 어른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회복하는 날. 건물 성전 불타는 것쯤이야.이 세상의 타락을 보는 것쯤이야.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그 희락의 순간을 우리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들께서 교회 어른들께서 잔잔한 미소로 그래서 시편 37편 4절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여호와 안에서 너희 기쁨을 찾아라.

오늘 아침에이 새벽 주의 말씀 안에서 무엇을 찾으시겠습니까? 다른 기도 제목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 더 깊이 있는 그 인생의 힘든 80년을 보셨어요. 그 지루함을 보셨습니다. 여호와 안에서 너희 기쁨을 찾아라. 만약 우리 가운데 그 기쁨을 가지고 계셔서이 아침에 기쁨으로 주 앞에 나오신 분이 계시다면 더더욱 그 기쁨이 흥황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험되어지는 기쁨. 어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라고 하는 말씀의 표현이 30여에 기록되 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의 삶을 즉 이스라엘의 마지막 멸망사를 기록한 역대아 36장에 보면 예레미야 언급이 두 번 나옵니다. 36장이 꽤 짧아요. 이스라엘이 멸망하는데 중요한 말들을 다 놓는데 그 와중에 그 시대에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에 에스겔도 젊었고 다니엘도 당시에 어 이방이 살려서 데려갈만큼 좋은 제목이었는데 하나님이 한 나라의 역사에 마무리해서 예레미야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근데 근데 뭐라고 언급을 하냐면 이렇게 돼 있어요. 여호와께서 [콧방귀]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여더라.

불필 드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라는 것과 임한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일 수 있다는 거예요. 제이 와서 말씀을 듣는 것과 그 말씀이이 장막에서 우리가들은 말씀이 일상의 오늘의 삶과 내 삶에 돌아가서 겪게 될 내 일상의 삶에서 응하는 것과는 성경은 별개로 나누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쁨의 근원은 한 가지가 아니고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말씀이 사라지고 멸시받던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절대적인 능력으로 임했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임하고 난 다음에 그 말씀이 내 삶에서 경험되어지는 응해지는 그 떨리는 감동. 내가들은 말씀이 야 나는 내 인생의 기쁨이 다 끝난 것 같은 그런 나이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람 그가 예레미야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기쁨의 구체적인 예가 뭘까를 제가 찾아봤습니다.

또 예레미야 같은 할아버지가 감정적인 어떤 이게 터치였을까? 아니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뭐 큰 어떤 헌신을 하신 걸까? 모였을까? 살펴봤더니 [콧방귀] 예레미야가 그 고통 가운데서도 이렇게 예배를 드렸을 때 그중에 혹시 여기 지금 아침에 50대 이하 있 오신 분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오, 이렇게 많이 오셨습니까? 아, 목사님도 50대 이해하셨습니까? 오,이 이렇게 많이 오셨습니까? 어, 감사합니다. 제가 아침에 말씀 전하고 저녁에는 이제 젊은 영성이라는 분들 모이시는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거든요. 어제 가서 제가 너무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강의실 하나를 빌려 하는데 꽉 차 오셨어요. 근데 제가 좀 실수를 한게 한게 한국에서는 젊다 젊은 영성이라 그러니까 저는 3040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말씀 이거를 이만큼 눈높이를 낮췄는데 가서 보니까 3040으로 보이는 분도 있고 4050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할 때 지금처럼 예레미야 나이돌에 나이 많은 분들만 있었던게 아니고 그중에 누가 있었냐면 에스겔이 있었어요.

에스겔이 에스겔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 에스겔서 보면 첫 장부터 뭐가 나오? 에스겔 굉장히 고생한 선지자거든요. 자기 잡혀가서 엄청 고생한 선지자인데 그의 에스겔서 1장 1절부터 뭐가 나오냐면 나는 하나님을 보았다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그의 인생을 마치는 할아버지가 돼서 쓴 자전적 계시에서 그는 나는 하나님을 봤다라고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젊었을 때 설교단이 누가 있었냐면 예레미야가 있었어요.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너에게 기쁨을 주겠다고 하신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증거 중에 하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임한 말씀을 전했을 때 그 가운데 누군가가 에스겔처럼 그때 당시에는 젊은이었지만 그의 삶이 평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삶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야 예레가 그걸 느꼈을 때 얼마나 감동이었을까요? 두 번째는 다니엘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끊어 보면 다니엘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우리 교회의 모토라고 해도 아쉽지 않을 그 계시 하나님이 황폐된 성서를 보소서. 그러고 난 다음에 응답으로 받은 그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그 계시를 보는이 전에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그가 포로 기간이 끝날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만약 예레미야가 없었다면 다니엘은 포로 기간이 끝날 것을 계산하지 못했을 거고 다니엘이 한장 없었다면 재림 교회가 어떻게 됐을까요? 예레미야는 그의 삶에 결과론적으로 볼 수 없었을지 몰라도 그의 삶의 기록과 흔적이 응하여졌다는 그 삶이 다니엘과 여러분과 제 삶에서 응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여러분과 저는 예레미야의 삶에 응함의 증거들이 될 거예요. 또 다른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교 주석과 여러 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시간이 나실 때마다 예레미야서를 연구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즐겨 보시던 성경책.

그것이 60년 목회하신 80년을 신실이 그러나 모든 인간의 고난을 견뎌낸 그 한 노장 그 어른의 인내와 그 어른다운 여유로운 기쁨과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사람 젊은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성숙하고 연세가 들어가실수록 하나님을 향한 깊은 충성과 사랑을 가져. 그래서 우리 교단에 한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잠재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객관적인 진리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뭐 안식일이 진리입니다. 세천사의 기별이 진립니다. 이런 거에는 관심이 없다. 저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객관적 진리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마음의 문을 연다. 하나님과의 실제적 경험으로서의 진리. 재림 교회는 경험으로 이끄는 진리의 해석자로서 그 위치를 제조해야 한다. 선포되어지고 논쟁되어지고 가르쳐지는 진리 이제는 유튜버가 다 합니다.이 객이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은 그건 관심이 없고 우리의 삶에서 응해지는 진리 실제로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기쁨 경험으로 이끄는 진리의 해석자로서 우리의 삶이 성화되어 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하나님의 재단에 나아가 한 시편 기자가 그렇게 썼습니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내가 하나님께 나가는 이유가 뭔지를 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쓴 것입니다. 하나님 이걸 얻지 못해서 세상에서 기쁨을 얻어 보려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여행도 가보고 돈도 모아보고 아파트도 좀 투자해 보고 주식 시장 가서 좀 이렇게 좀 빨간색 파란색도 좀 보고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내가이 새벽 주의 말씀 안에서 나의 큰 기쁨의 의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큰 기쁨의 하나님 앞에 이르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 한없는 기쁨, 우리 평생의 기쁨, 하늘의 기쁨. 어, 화요일 저녁에 이렇게 예배를 좀 드리고 있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이다 보니 모인 분들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공부하는 동안에 맡겨 주신 좀 작은 교회임에도 화율 전정 더 작은 한 열몇 명 모여서 이렇게 이제 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예배 중에 갑자기 뒷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시컷한 한 어른께서 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조용히 뒤에 앉으시더니 이제 제 설교를 들으시고 이렇게 끄떡끄떡도 하시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인 아닌 분이셨어요. 교인 숫자가 작으니까 영혼 한 명이 굉장히 귀한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대화를이 나눴더니 이런 분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저기 어 남쪽 지방 어디에선가 학생방에서 침내를 받고 그리고 그때 당시 이제 너무나 어 나라가 어렵고 가정이 어려울 때니까 진학을 높은 그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하고 바로 직업 전손으로 뛰어들어서 뭘 하시는 분이냐면 도배 장판하시는 분이요. 도배 장판을 이제 젊은 나이 때부터 따라다니면서 배우면서 평생을 그 일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자수 성가하셔서 빌딩도 가지고 계시고 뭐 하여튼 잘 살게 되신 분이에요. 그리고 이제 자기 이제 기업처럼 커진 회사를 이렇게 물려주고 이분은 이제 이렇게 은퇴를 하시고 어느 날 성경을 이렇게 이제 주의 말씀을 읽는데 갑자기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눈에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셨어요. 이분은 어 그 어린 나이의 침내는 우리 재림계서 받았지만 그 이후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토요일 날 교회를 갈 수가 없으니까 옛날에는 우리 한국도 6일 근무할 때니까 뭘 했냐면 1월마다 천주교회를 가셨어요.

그리고 이분은 50년 동안 천주 교인 아주 골수 진실한 천주교인입니다. 일요일마다 성당 나갈뿐만 아니고 일주일에 뭐 하루 이틀이 시안을 내서 수녀님들하고 자원 봉사하고 남들을 섬기는 일에 50년을 봉사하신 그런 분이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어느 날 은퇴하고 성경 읽다가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이렇게 눈에 밟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당 가서 신부님한테 여쭤웠어요. 신부님 성경에 안식일이 이렇게 나오는데 왜 우리는 안식일 날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신부님이 기도하러 가라고 부르시더래요. 그래서 기도하러 갔대요. 근데 이게 답을 얻지를 못해서 일요일마다 같이 또 뭐 주중에 같이 봉사하는 이제 수석 수녀님한테 수녀님 봉사 이렇게 하면서 수녀님 우리는 왜 성경에이 안식일이라는이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있는데 왜 안식일을 이렇게 지키지 않고 이렇게 살죠? 나 봉사하는 건 좋지만 이게 자꾸 성경에 보여요. 그랬더니 이분이 뭐라 그러셨냐면 안식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봉사만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면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은 예배로 받으십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 주셨대요. 그 이분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더래요. 봉사하는게 예배라고. 그것도 예배는 맞지만 성경에 십계명에 아니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나오는 이거를 봉사가 대체한다고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는 이분이 그 답을 얻으려고 인터넷에서 당신이 계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안식일 교회를 검색을 하셨어요. 그리고 발견된 교회가 바로 제가 예배드리고 있던 그 조그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바로 찾아오신 거예요. 그리고 문 열고 들어와서 열몇 명 앉아 가지고 예배드리고 있는 곧 작은 교회에서 이제 이분이 그 얘기를 하시면서 목사님 왜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것들이 자꾸 내 마음에 이게 호소하시는지에 대해서 답을 주십시오. 그로 시작해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시고 결국 우리 재림 교인이 다시 되셨어요. 아, 근데 이분이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제가 진짜 겪을 것 다 겪었고 벌어볼만큼 벌어봤고 아이들 지금 다 잘됐고 그런데 왜이 나이에 하나님이 나한테 인생을 이렇게 다 뒤집으라고 하시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도 뭔가를 해야 되는 사명이라는게 있을까요라고 묻더라고요.

그 제가 뭘 답을 해야 될지를 잘 몰라서 가만히 섰더니 그래도 목사님은 좀 낫네요. 뭐라고 주줄줄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침묵이라도 하시니 그러더니까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죠? 이게 아 모르는 것도 은혜구나라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 이렇게 설교를 제가 하고 있는데 어 기도 마치고 이렇게 눈을 떴던 이분이 사라지셨어요. 어디 가셨지하고 [콧방귀] 이제 나가서 밖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분이 저쪽 골목 끝에서 오시다가 저를 보더니 흠칫 놀라지더니 제가 이렇게 악수하고 그분하고도 악수하 오른손을 이렇게 내밀니까 이분이 오른손을 내밀다가 집어넣으셨더니 왼손을 갑자기 내미시는 거예요. 그 얼떨길에 왼손으로 악수를 했습니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콧방귀] 술 담배에 인이 박혀 가지고 어린 나이에 혼자 고생하면서 유일한 낙 기쁨이 술 담배여 가지고 어릴 때부터 골초 그다음에 만 땅술이었대요. 술 한번 먹으면 그냥 미친 듯이 이렇게 마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내가 교회 올 때는 담배를 피면 안 될 거 같아서이 담배를 절대로 안 가지고 오는데 오늘은 제가 실수로 담배가 안 주어내 있는 옷을 하필 갈아입고 교회로 오신 거예요. 근데 교회로 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이렇게 휴대폰이 빅비빅 울리더랍니다. 이분은 교회할 때 휴대폰도 안 가져오셔요. 휴대폰은 사단이 나를 말씀으로부터 방해하는 거야. 그래서 안 가져오시는 분인데 그날은 또 휴대폰도 주문이 있었던 거예요. 이분이 안 받으셨어요. 이건 시험이다. 이거는 사단이 나를 말씀으로부터 끊으려고 하는거다 하고 계속 했는데 말씀 설교 끝나고 참미 부를 때 또 두두두 하더래요. 별 생각 없이 이제 이거는 뭐 급한 일인나 보다. 이제 말씀 끝났으니까 하고 밖에 나가서 전화를 딱 받았더니 광고 전화드래요. 에이씨. 아차 싶은 거예요. 이분 말씀이 뭐냐면 교회만 들어오면 담배 생각이 안 나 가지고 어 교회를 한 시간 예배 한시간 전에 오셔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제가 문 들면 후다닥 들어가 앉아 계셔요.

그리고 한시간 이후에 예배 한시간 그다음에 한시간 후에 제가 뭐 정리하고 다하고 난 다음에 문 잠을 때까지 안 가고 계시는 거예요. 그 제가 이제 그 유학 공부할 때였으니까 대학원 공부할 때였으니까 가서 빨리 숙저돼야 되고 애들 학교도 보내야 되고 저기 이제 가셔야죠. 그러면 목사가 성도를 교회에서 쫓아내도 됩니까? 아 뭐 이렇게 급 얼떨게 옆에 앉아서 같이 성경 보고 이러는 분야의 이유가 뭐였냐면 교회만 들어오면 담배 생각이 안 나니까 교회 안에 어떻게든 있으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날은 휴대폰에 속아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한대 피고 아차 싶어서 빨리 끄고 오다 보니까 딱 목사가 교회 앞에 딱 지키고 있는 거야. 걸렸다. 오더니 오른손을 내밀다. 왼손을 내밀니까 목사님 정말 미안하다고이 얘기를 다 하고 난 다음에 담배 얘기를 하고 난 다음에 [한숨][헉 소리] 제가 담배 핀 죄전 손으로 어떻게 거룩한 목사님을 만집니까? 그 왼손으로 막 후에 재림 여성으로 기도하러 오실 때는 초보일 때는 목사님 제가 하 연수안에서 금식 기도하려고 저 밑에서 염소탕 먹고 올라왔습니다.

2박 3일 금식 교단 올라오시면서 힘 딸릴까 봐 밑에서 염소탕 사먹고 올라오 그 저한테 이러는 그러니까 이게 지금 내 몸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이 막 뒤섞여 있는 이런 분이었어요. 이분이 매일매일 한해가 갈수록 하나님 말씀 안에서 그 삶이 변화가 나이는 들어가시는데 그 삶에는 기쁨이 꽃이 피는 나 맛있는 거 많이 먹어 봤고요. 목사님 돈도 쓸만큼 써 봤고 좋은 차도 다 봤고요. 봉사도 진짜 평생 근데 요즘처럼 이렇게 아이고 아 근데 이제 어느 날 안식일이었는데 이분이 교회를 안 오셨습니다. 저 설교를 하고 있으면서 계속 부담이 됐어요. 근데 좀 있다 보니까 이분이 들어오시는 거예요. 뒤에 보니까 한 부부가 따라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그 교회를 발령받았을 때 전임자가 전임 공부하시던 분이 목사님 공부하니까 집 방문하는 쉽지 않으니까요 집들은 방문하시는데이 집은 우리 집사님이신데 남편이 우리 교인이었다가 이렇게 요즘 안 나오시는데 어 큰 병이 있으신데 그 살날을 한 달라면 시안부가 한 분 계셨어요. 이분은 어 병원에 일주일에 한두 번 가셔서 그냥 이렇게 발타 체크하시고 기도해 주시고 오시면 됩니다. 이렇게 제가 인수계 받은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그분들은 교회 안 오는게 정상이고 사모님은 어쩌다 교회 오면 설교 시간 내도로 오셨어요. 제가 어떤 설교라도 오시는 거예요. 기쁜 설교라면 남편은 지금 죽을 날 받고 있는데 나 혼자서

기쁜 설교 들어서 우시고 제가 조금만 마음을 건드는 설교하면 그냥 펑펑 통곡을 하시고 근데 교인들이 다 모른 척해요. 상황을 아니까. 근데이 천주교인의이 어른은 교회 와서 보니까 예배드릴 때마다 울 우 우는 한 여집사님을 눈 여겨 본 겁니다.이 사람이 도대체 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슬퍼할까? 왜 교인들은 다 이거이 슬픔을 그냥 던져 놓고 있을까? 이분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나중에이 물어봤더니 이제 그 상황을 알게 된 겁니다. 남편이 여기 이렇게 이렇게 그러면서이 집사님한테 무슨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는 이분은 은퇴하면서 건강을 위해서 자전거 사면서 차까지 다 정리하고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검소한 분인데 아들한테 차를 빌려 가지고 안에 차를 가지고 병원으로 가서 다임 목사가 포기한 그 시안부 집사님의 남편을 태워 가지고 그날 교회로 오신 거예요. 예배가 중단이 됐어요. 교인들이 우르 모였습니다.이 여집사님이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우리 남편이 죽기 전에 교회 한번 오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저의 몇 년 동안의 기도였습니다.

근데 그 기도를 오늘 이분이 들어 주셨습니다. 목사도 포기한 교인들도 그냥 그러려니 한 근데 율법적으로 말하면 아직 여전히 죄인인 아직 술을 끊지 못하고 아직이 삶이 균형이 맞춰지지 않은 이분이 그 한 그리스도인의 눈물을 놓치자는 거예요. 그날 모시고 온 거예요. 날리 갈았습니다. 그 뒤에 두 부부가 앉고 이분이 뒤에 앉았는데 [콧방귀] 인자하게 그 두 분을 바라보면서 미소리 짓는데 제가 마지막 남은 설교를 하는 내내 그분의 표적을 잊실 수가 없어요. 그 하나님 앞에 거룩한 기쁨, 한 영혼의 아픔과 고통과 마지막 기도를 들어 준 아 그때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해서 마음을 이해했어요. 행복하셨겠다. 왜 내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신다는 기도를 하셨는지 어 그 마음이 어 참 좋았습니다. 은혜롭게 예배가 마치고 난 다음에 [콧방귀] 이제 다 이렇게 끝나고 이분이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네. 제가 부탁이 있다고이 천주견이 찾아오셨어요. 예. 무슨 부탁이십니까?

어 저분들 부부가 너무 고생하며 사느라고 부부리 여행을 한 번도 못가 본 거 같다고 신혼 여행도 못 갔다고 하더라고. 옛날에 우리 한국의 어른들 신혼 유행 같은 거 못 가고 사시는 분들 많으셨지 않습니까? 먹고 사는가? 바빠서. 저 사람들 그렇는데 [콧방귀] 우리 교회가 저분들 죽기 전에 신흥을 좀 보내 주면 어떻겠냐 그러시더라고. 저는 생각도 못 한 생각이었어요. 그 제가 뭐라고 대답을 했을 것 같습니까? 그럽시다 이랬을 것 같습니까? 저희 교회 장고가 43만 원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때 그 교회가 장고가 몇십만 원밖에 없었어요. 참 이런 목사. 아이고 참. 돈 액수. 제가 그렇게 답뺐더니 저 이렇게 보시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교회 모양새가 보니까. 그리스도들이 봉탄날턱 내놓으시는 거예요. 이만큼 뭡니까? 그랬더니 5만 원짜리가 이만큼 들어 있는 거야.이 뭐예요? 그랬더니 교회가 그럴 거 같아서 내가 돈 챙겨왔다고 이걸로 말하지 말고 보내자고. 근데 돈이 왜 이렇게 많아요?

그랬더니 아, 저 사람들 내가 얘기해 보니까 자존심이 좀 있는 거 같다. 그러니이 가난한 교회가 저 둘만 보내 준다면 저 사람들이 가겠냐? 우리 교인들 다 갑시다. 가면서 끼워서 저 사람들 마음 안 다치게 야 그래 가지고요. 그 교회가 개척된 일에 처음으로 전 교인이 제주도로 비 그분들 비행기 처음 타시고 갔어요. 방을 세 개를 구했습니다. 큰 방 하나 남자들 다 함께 자는 방. 큰 방 하나 여자들 다 함께 자는 방. 그리고 가운데 작은 방 신혼방. 그래서 그 두 분 그곳에 제가 축하 세레머니하고 자 신혼이에요. 들어가세요. 그리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요. 다 앞을 보고 찍는데 그 여집사님은 옆을 보고 찍었어요. 남편 등을 쓰다듬으면서 내 남편이 하나님 앞에 왔다. 아 그때 저는이 하나님 앞에 있는 기쁨 한 인생을 살만큼 살고 세상을 다 알고 있는 이분이 하나님을 만나가면서 그 삶에 이르러오는 그 거룩한이 기쁨에 어쩔지 몰라 하는 그 기쁨을 나눠 주면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은 비록 가파르지만 하나같이 피곤한 자들에게 생기를 주는 기쁨의 샘이 있다.

[콧방귀] 우리 인생의 길이 가파르고 험란하지만 생기를 주는 기쁨의 샘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는 기쁨을 얻게 할 것이라. 나는 아버지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 인생의 슬픔 돌이켜 즐겁게 하고 우리를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는 나와 내 가족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왜냐? 내가 아버지다. 그 하나님께서이 [콧방귀] 새벽에 우리의 아버지심을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합시다. 아멘. 우리 함께이 새벽 주의 말씀을 기뻐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각자 조용히 기쁨의 재단으로 나가겠습니다. 습니다.